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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세상을 바꾸려면 발가락부터 꼼지락거려라

by 류이람

그런 날이 있다. 왠지 모르게 묘한 날.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날. 종일 부리로 껍질을 쪼는, 그래서 느리지만 끝끝내 알을 가르고 나오는 새처럼 나도 작지만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고 싶은 날. 그날이 바로 2월 27일이었다. 나는 아직도 종종 회고한다. 그때 내가 침대 밖으로 나오지 않았더라면, 내 삶은 여전히 정체되어 있을 거라는 것.


엄마는 더 이상 말을 얹지 않았다. 나도 알고 있다. 그건 자유보다 방임에 가까웠고, 무관심보다 포기와 닮아 있었다. 내가 몇 시에 잠에 들고, 몇 시에 일어나서 무엇을 하며 무슨 음식을 먹는지에 대해 어떠한 관심도 두지 않았다. 처음엔 마냥 좋기만 했다. 원래대로라면 8시에 칼같이 방문을 벌컥 열고 이불을 걷어제꼈을 엄마가 내게 눈길 한 번 안 주고 출근 준비를 하다니. 중간중간 부엌에서 들리는 덜그럭거리는 소리에 종종 깨지만 이내 다시 눈꺼풀이 감기고, 오후 한 시쯤 느지막이 일어나 부엌 찬장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 라면 하나를 꺼내먹는다. 야무지게 계란까지 톡 까서 올리고 방 안으로 가져와 핸드폰을 보면서 먹는다. 낮에는 주로 유튜브를 본다. 추천 탭에 뜨는 의미 없는 짤막한 동영상들을 보며 깔깔거리면 어느새 저녁이 되고 엄마가 퇴근한다. 또다시 부엌에서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데, 내 방문은 열리지 않는다. 유람아, 저녁 먹으러 거실로 나와. 이런 소리를 은근히 기대하지만 멀리서 들리는 건 희미한 텔레비전 소리뿐이다. 몰래 시킨 배달음식을 먹어 치우면 또다시 외로운 새벽이 되고, 나는 오늘도 누워서 인스타그램을 켠다. 검색창에 하나하나 익숙한 이름들을 쳐본다. 최지연, 백수빈, 김강석, 정태현… 며칠 전에도 봤던 게시물이지만, 또다시 본다. 사진 속 행복하게 웃고 있는 얼굴들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본다. 그러다 문득 찾아오는 속 쓰림에, 핸드폰을 저 멀리 던져버린다. 이것 또한 내 처지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의미 없는 행동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역시 나만 그대로구나, 몸은 스물아홉 살인데 머리는 스물세 살이네…


코로나19의 범세계적 유행은 대다수에겐 끔찍한 재앙이었지만, 나에게는 마냥 싫기만 한 사태는 아니었다. 모든 것이 비대면 방식으로 바뀌었고, 평상시 면대면으로 사람을 마주하는 것이 고통스러웠던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리 없었다. 유일하게 우리 집에 매달 찾아오는 가스 검침원의 방문일이면 10분 전에 미리 방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다 요의를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방에서 나오다가 그를 마주치면, 죄인처럼 재빨리 고개를 푹 숙이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경영학과 재학 시절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자격증, 대외활동, 인턴 모두 닥치는 대로 했다. 해보지 않은 알바가 없었다. 취준생에게 휴일이란 사치라고 생각했기에 잠을 줄이는 날이 다반사였다. 성적 장학금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커피를 들이키며 시험장에 입실하기 전에 한 글자라도 더 보려고 애썼다, 누군가 나에게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지 모르겠다. 나도 20대 초반의 나 자신을 알 수 없다. 누구를 위해 그렇게 건강까지 망쳐가며 버텼는지, 무엇을 얻으려고 이렇게 극한으로 치달아 버렸는지.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열여덟 살 겨울방학 때 관리비 고지서를 들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본 것이 계기였던 것 같다. 엄마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면서 이번 달 가계부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나중에 몰래 그 가계부를 펼쳐 보았을 때 난 알았다. 엄마는 내가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먹고 싶은 것을, 사고 싶은 것을 한 번도 사본 적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결심했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필코 성공하자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딸이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서울에 있는 사립 대학교를 온다는 거, 그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어엿한 성인인 나도 잘 아니까.


첫 번째 불합격 통지를 받아 들었을 때는 무덤덤했다. 엄청 슬플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취업이 사막에서 바늘 찾기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열심히 찾아 헤매다 보면 바늘 비스무리한 탐침이라도 찾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다음 불합격 때도 괜찮았다. 세상에 회사가 두 군데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세 번째 불합격 문자가 날아왔고, 네 번째 불합격. 다섯 번째, 그리고 다음, 그다음, 다시 또 다음…

안녕하세요 하유람님, CY EGS 신입채용팀입니다.

먼저 2026년 신입사원 공개채용에 지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혹시 서류지원 접수 과정 중 저희가 의도치 않게 불편을 드린 점은 없었는지 여러모로 마음이 쓰입니다.

하유람님께는 안타깝게도 이번 2026년 신입사원 공개채용에서는 서류전형 합격의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귀하의 뛰어난 역량과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모집인원으로 인해 이번 채용에서는 귀하와 함께할 수 없게 되어 매우 아쉽게 생각합니다.

신중한 심사 결과, 아쉽게도 이번 채용에서는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번 공채에서는 귀하를 모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쉽게도,

정말 송구스럽게도,


향후 또 다른 경로로 여러분을 다시 만나 뵐 수 있기를 희망하며.

앞으로 더 좋은 기회로 인연이 닿기를 바라며.

본 결과는 역량 순이 아니라, 당사의 인재상과 조금 다른 부분에 대한 판단의 결과이오니,


더 좋은 기회에서 청운의 꿈을 마음껏 펼치실 거라 확신합니다.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나 뵙길 희망합니다.

앞으로 펼쳐질 삶에 행복이 깃드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만 보고 싶은 문구들.


대체 내 기회는

경로는.

꿈은.

인연은.

행복은,

언제 찾아오는 거지?

애꿎은 노트북만 세게 덮어버렸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나의 마지막 ‘사회적 활동’이다.



어릴 적 내가 가장 싫어하던 동화는 피터팬이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후크 선장이 천하의 나쁜 놈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피터팬과 피 터지게 싸워대며 결국 배 밖으로 던져져서 악어 뱃속으로 사라지는 끔찍한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난 매번 아빠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아빠, 왜 후크 선장은 악어한테 먹혀서 죽어?”

“악당이잖아.”

“근데 아빠도 선장이잖아. 그럼 아빠도 악당이야?”

“아빠 아직 선장 아니야. 부선장이야. 그리고 후크 선장은 해적선 선장이고, 아빠는 화물선을 타잖니.”

“아빠가 배 운전하는 거야?”

“가끔 하지.”


그럴 때마다 내 머릿속에선 후크 선장의 잘린 팔이 매번 복기되었다. 무 자르듯 깔끔하게 댕강 잘려버린 후크 선장의 아래팔을 바다 밑 악어가 기다렸다는 듯이 우적우적 씹어먹는 상상. 피터팬과 싸우다가 선미 난간 끝까지 몰려 발을 헛디디면서 뒤로 풍덩, 하고 빠지는 생각. 그렇게 악어의 단단한 이빨에 갈기갈기 찢기고 뜯겨 사체 조각조차 찾을 수 없게, 영원히 망망대해에서 잠드는 최후. 나는 꼭 그 사람이 아빠 같았고, 우리 아빠도 후크 선장처럼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거라는 불안감에 매번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빠, 선장 안 하면 안 돼?”


그러면 아빠는 늘 다정한 눈빛으로 내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묻는다.


“왜?”

“아빠가 악어한테 먹힐까 봐 무서워. 피터팬 같은 사람하고 싸워서 바다에 떨어질 것 같아.”


그리고 아빠가 반년 넘게 바다에 나가 있는 것도 싫어. 뒤에 말은 목 뒤로 삼키기만 했다. 수십 번도 넘게 똑같은 말을 들은 아빠는 매번 내 유약한 두 볼을 쫘악 늘리며 답했다.


“유람아, 아빠 안 죽어. 아빠는 악어랑 싸워서 우리 유람이 지켜낼 만큼 강한 사람이야. 그리고, 아빠는 죽더라도 배에서는 안 죽을 거야.”


그 말대로 정말 아빠는 배에서 죽지 않았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죽었다.

“유람아.”


출근 전 난데없이 엄마가 방문을 열었다. 너무 오랜만인지라 가족임에도 낯설게 들리는 목소리에 놀라 잠이 확 달아나버렸다.


“날이 좀 풀렸던데.”


그러면서 엄마의 시선이 물끄러미 잠이 덜 깨 비몽사몽한 내 얼굴로 향했다. 머리맡에 간밤에 먹다 남은 과자와 젤리 봉지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할 말을 잃었는지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난장판이 된 내 방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잠시 숨 막힐 듯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 고요함을 깨고 나는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훔쳤다. 자잘한 소금 알갱이가 묻어 나왔다.


“밖에도 좀 나가봐.”


그 한 마디를 남기고 엄마는 다시 방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멀리서 현관문이 닫히는 전자음이 들렸다.

어림짐작으로 반년 만의 대화인 것 같다. 엄마와의 마지막 대화는 작년 초여름 때였다.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아마 밥 먹어, 세수 좀 해 같은 잔소리였던 것 같다. 물론 지키진 않았지만. 세수는 일주일에 한 번, 샤워는 이주에 한 번 했다. 엄마가 제발 좀 씻으라며 면박을 주면 방문을 닫고 들어가 손톱으로 두피를 벅벅 긁었다. 이따금씩 몸이 간지러우면 이렇게 세게 긁어주면 금세 사그라든다.


그런데 오늘은, 2월 27일은, 하필 아직 패딩을 껴입어야 할 칼바람이 날리는 2월의 추위에는, 지독하게도 미웠던 엄마의 쓴소리가 여름 초파리마냥 내 몸 위에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 것이다. 이유 없이 전신이 간지러웠고, 창문을 활짝 열고 살갗이 패일 듯이 온몸에 십자가를 새겼지만 이 찝찝함은 가시지 않았다. 주의를 환기하고자 유튜브에 들어갔다. 그리고 제일 먼저 내 눈에 들어온 추천 동영상은 이런 것들이었다. 「집에서 나가지 않는 2030 청년…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 「3포 세대? 5포 세대? 인생까지 포기한 ‘완포 세대’」, 「취업·알바 거부하는 캥거루족, 고통받는 부모들」. 괜스레 내 심장을 찔러대는 제목들이었다. 클릭을 유도하기 위한 적나라하고 무자비한 단어 선택에 눈살을 찌푸렸다. 영 내키는 제목은 아니지만 불결하고 더러운 것들에 자꾸 눈길이 가는 것처럼, 나도 정확히 기자의 의도대로 맨 마지막 동영상을 재생했다.

아유, 말도 마세요…. 부모 마음이 제일 아파요. 원래 그런 애가 아니었는데, 언젠가부터 방에 콕 틀어박혀서 나오지도 않고…. 그냥 요 동네 앞에서 아르바이트 하나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취직은 바라지도 않고. 뭘 하든, 자식이 행복했으면 하는 게 부모 바람이죠. 근데 저러고 있으면서 울상에다가 건강 안 좋아지는 게 눈이 보이니까, 밖에 나가서 뭐라도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건데-“

더 보지 않고 동영상을 꺼 버렸다.

몸을 일으켜 불을 키니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잡동사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했는데, 문득 이렇게 보니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다시 불을 끄고 눈을 감으려는데,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들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도 분명하게 보이는 긴 더듬이.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더 큰 갈색 형상. 저것은 틀림없이….


태어나서 처음 보는 그 무시무시한 형상에 나는 꼼짝없이 얼어붙었다. 그 사이 벌레는 재빠르게 내 방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었다. 방 한구석에 굴러다니고 있는 바퀴벌레 살충제를 낚아채 사정없이 뿌렸다. 바퀴벌레는 하얀 약을 뒤집어쓰고 이리저리 버둥대다가 이내 숨통이 끊겼다. 어떻게라도 살아보려는 그 애잔한 모습에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5년 전 마지막으로 들어갔던 알바 구인 어플을 켰다. 한 시간을 내리 스크롤만 내렸지만, 그곳에 내가 할 만한 일은 딱히 없어 보였다. 졸업 직후 마지막으로 일했던 패스트푸드점에서 사사건건 트집을 잡던 직원이 생각났다. 손이 왜 그렇게 느리냐며, 어떻게 뽑혀서 왔냐고 질문 아닌 질문을 했었다. 매니저에게 대체 저 사람을 왜 뽑았냐고 항의했을 때, 그럴 법한 말들로 직원을 타이르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다. 얼른 이 상황을 끝내버리고 싶다는 신호. 매니저가 보내는 암묵적인 시그널에 떠밀려 나는 내 발로 가게를 걸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손이 빨라야 하는 일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거르고 거르다 보니 남는 건 수상한 공고 하나뿐이었다.

[크리스탈 월드 데스크 아르바이트 모집]

근무 기간 : 6개월~1년

근무 요일 : 월~금

근무 시간 : 11시~21시 (저녁시간 : 5~6시)

[지원 조건]

학력 : 학력무관

성별 : 성별무관

흡사 놀이공원을 연상케 하는 그 이름을 보고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봐도 미심쩍었다. 뉴스에서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를 가장한 사이비 종교 포교 방식이 성행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대체 저런 속이 다 보이는 수법에 누가 넘어가나 싶었는데, 나처럼 절박한 청년들의 여린 마음을 이용하나 보다. 그러나 난 어느새 이 꺼림칙한 일자리에 구미가 당기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최상단에 적힌 소개글 때문이었다.

저희 크리스탈 월드는 6호선 녹사평역에 위치한 심리상담센터로, 주 업무는 간단한 음료 제조와 손님 응대입니다. 쉬운 업무이기에 관련 지식이 없으신 분들도 누구나 하실 수 있으며, 심리상담 예약이 없는 시간에는 업무나 공부 등 자유롭게 할 일 하시면 됩니다.

이런 걸 꿀알바라고 하던가. 위치를 찍어보니 해방촌 꼭대기에 위치한 한 구옥 주택이 나왔다. 벽면 페인트칠이 다 벗겨져서 얼핏 보면 폐건물 같기도 했다. 이런 구석지고 가파른 곳에 있는 상담센터에 구태여 자기 이야기를 하러 오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그냥 적당히 핸드폰 하고, 빈둥대다가 퇴근하면 되는 거 아니야?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얄팍한 몇 문장의 포부를 적어 나와 있는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몇 분 후에 답신이 왔고, 오늘 오후 6시에 면접을 위해 방문할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주저 없이 가능하다는 문자를 보낸 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엄지발가락으로 이불 끄트머리를 걸어 하반신을 휘감고 있던 이불을 걷어냈다. 2월 말미의 매서운 겨울바람이 추웠다. 근 3년 만의 자발적 외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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