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어구가 백혼무인에게 활 솜씨를 보여주었다. 화살촉이 활에 닿을 정도로 줄을 잡아당기고 가득 채운 물 잔을 팔꿈치에 올려놓고 계속하여 활을 쏘아도 물 잔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활을 쏘는 열어구의 모습은 마치 움직임이 없는 인형과 같았다. 백혼무인이 열어구에게 말했다.
“이것은 화살을 가지고 쏘는 궁술이지 화살을 가지지 않고 쏘는 궁술은 아니다. 내가 너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서 높이 솟은 바위를 발로 딛고, 그 아래 백 길이나 되는 연못을 내려다볼 때도 네가 활을 제대로 쏠 수 있는지 한번 보자.”
백혼무인은 열어구를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그를 우뚝 솟은 바위 위에 서게 하고 그 아래 백 길이나 되는 연못을 내려다보면서 활을 쏘게 하였다. 그러자 열어구는 무서워서 몸을 구부정하게 하고 움츠리며 발은 반이나 허공에 내딛어져 있었다. 백혼무인이 열어구에게 한 걸음 더 나아가라고 하자 열어구는 그만 땅에 엎드려 발뒤꿈치까지 식은땀을 흘렸다. 백혼무인이 열어구에게 말했다.
“도에 지극한 사람은 위로는 끝없는 하늘을 엿보고, 아래로는 바닥이 없는 황천을 내려다보면서 상하사방을 두루 다녀도 얼굴빛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너는 무서워 떨면서 눈이 휘둥그레지고 식을 땀을 흘리고 있다. 이래서야 어떻게 활을 제대로 쏠 수 있겠느냐?”
가파도로 내려와 인터넷이 깔리고 이제야 편안하게 줌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고양시에 있을 때 2년 동안 장자와 노자에 대한 강의를 집중적으로 할 수 있었고, 그 결과물로 3권의 책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가파도로 내려와 《노자》, 《장자》와 더불어 도가 삼서 중의 한 권인 《열자》를 강의하게 되었다. 노자, 장자와 다른 열자의 매력을 말하자면, 노자와 장자가 완성형 인간인 것처럼 서술되었다면, 열자는 실수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삶의 모습을 바꾸는 성장형 혹은 성찰형 인간으로 서술되었다는 점이다. 노자와 장자가 비록 매력적일지라도 그들의 삶이 완전하여 나와 동떨어진 느낌이라면, 열자는 왠지 나와 유사한 불완전한 인간처럼 느껴진다. 훨씬 더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고 할까.
《열자》의 핵심 사상은 '비움[虛]'이다. 나는 노자에게서 '아낌'을, 장자에게서 '즐김'을 배웠다. 이제 가파도로 내려와 '비움'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열자는 - 고양이와 더불어 - 가파도에서 내가 스승으로 사귈만한 인물이다. 내 삶이 나를 가파도로 이끌었고, 가파도는 나를 열자로 이끌었다. 이제 열자는 나를 어디로 이끌지 사뭇 궁금하다. 나와 함께 열자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열자를 통해 어디로 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