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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Apr 11. 2020

금강경 명상 10 :莊嚴淨土分  

10장. 깨끗한 땅을 장엄케 하라

1.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네 뜻에 어떠하뇨? 여래가 옛날에 연등부처님의 곳에서, 법에 얻은 바가 있느냐? 있지 아니하냐? 

2.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연등부처님의 곳에서 법에 얻은 바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3.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보살이 불토를 장엄하게 한다는 말이 되느냐? 아니 되느냐? 

4. 아니되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이오니이까? 불토를 장엄하게 한다 하는 것은 장엄하게 함이 없기 때문에, 비로소 장엄하다 이름하는 것이오이다. 

5. 그러므로, 수보리야! 뭇보살과 마하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내어야 한다. 마땅히 색에 머물어 그 마음을 내지 말 것이며, 성향미촉법에 머물어 그 마음을 내지 말 것이다. 반드시 머무는 곳이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6. 수보리야! 비유컨대, 그 몸이 수미산처럼 큰 사람이 여기 있다고 하자. 네 뜻에 어떠하뇨? 이 몸이 크다 할 것이냐? 크지 않다 할 것이냐? 

7. 수보리가 사뢰었다. 정말 큽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그러하오니이까> 부처님께서 그 몸은 몸이 아니라 말씀하시기 때문에 비로소 이를 큰 몸이라 이름할 수 있습니다.     

 

* 연등부처님 : 고타마 싯다르타가 부처가 되기 이전에 윤회과정에서 만난 부처. 이때 싯다르타는 수메다(sumedha, 善慧)로 태어나 연등부처에게 지나가는 진흙길을 머리를 풀어 덮었고, 일곱자루의 연꽃을 헌화했다. 이를 산화해발(散花解髮)이라 한다.


    佛告須菩堤。 於意云何, 如來昔在然燈佛所, 於法有所得不? 不也, 世尊。 如來在然燈佛所, 於法實無所得。 須菩堤。 於意云何, 菩薩莊嚴佛土不? 不也, 世尊。 何以故, 莊嚴佛土者, 則非莊嚴, 是名莊嚴。 是故須菩堤。 諸菩薩摩訶薩應如是生淸淨心,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而生其心。 須菩堤。 譬如有人身如須彌山王, 於意云何, 是身爲大不? 須菩堤言, 甚大, 世尊。何以故, 佛說非身, 是名大身。                 

짧은 생각

Buddha said: Subhuti, what do you think? In the remote past when the Tathagatg was with Dipankara Buddha, did he have any degree of attainment in the Good Law? 

No, World-honoured One. When the Tathagata was with Dipankara Buddha he had no degree of attainment in the Good Law.

Subhuti, what do you think? Does a Bodhisattva set forth any majestic Buddha-lands?

No, World-honoured One. Wherefore? Because setting forth majestic Buddha-lands

is not a majestic setting forth; this is merely name.

〔Then Buddha continued:〕Therefore, Subhuti, all Bodhisattvas, lesser and great, should develop a pure, lucid mind, not depending upon sound, flavour, touch, odour or any quality. A Bodhisattva should develop a mind which alights upon no thing whatsoever; and so should he establish it.

Subhuti, this may be likened to a human frame as large as the mighty Mount Sumeru. What do you think? Would such a body be great?

Subhuti replied: Great indeed, World-honoured One. This is because Buddha has explained that no body is called a great body.


<짧은 명상>

“불교를 장엄하다고 하는 것은 장엄하게 함이 없기 때문에, 비로소 장엄하다 이름하는 것이오이다.” 긍정의 진술은 부정을 그 안에 안고 있어야 한다. 니체는 이를 ‘거룩한 긍정’이라 말했다. 아이들이 쌓아놓은 블록을 부수는 것은 다시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다. 불교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불교를 세우기 위해서다. 그때 부정할 불교는 무엇이고, 다시 세울 불교는 무엇인가? 자기를 의식하는 불교를 부정하고, 자신을 해체하는 불교를 세우는 것이다. 결국 모든 종교의 궁극적 목표는 자기 해탈이다. 자기에 머무는 한, 자기를 벗어나지 않는 한, 결코 자기가 될 수 없다. 계란이 병아리가 되기 위해서는 껍질을 깨야한다. 정교한 교리, 웅장한 건물, 원대한 천국의 비전, 이 모든 것이 껍질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 땅의 종교는 이 껍질의 두께를 더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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