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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임 May 13. 2024

철학 전공과 후회

철학과에 진학하기로 한 순간부터, 나를 향한 끊임없는 질문과 의심을 받아야만 했다. 가족, 친구, 친척은 물론이고, 평소에 나에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던 사람들까지도 내 결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철학과를 왜 가?" 그들의 눈빛은 마치 "철학과? 그것은 너에게 너무나도 큰 도전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기대했던 나로서는, 주변의 반응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반응에 한편으로는 오히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는 내가 철학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교수님께서는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제가 철학과에 진학한다고 말했을 때, 주변 어른들은 마치 제가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려는 것처럼 걱정을 하셨습니다." 교수님의 이야기에 학생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 속에는 '알죠, 알죠, 우리 모두가 그런 걸요'라는 공감이 담겨 있었다.


(철학과가 정말로 에베레스트 등반만큼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른들의 걱정이 무리는 아니다. 철학은 추상적이고 난해한 개념을 다루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수님의 표정이 곧 진지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저는 에베레스트 등반보다 철학과 덜 위험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죠.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고요." 신기하게도 곧 교실은 진지한 분위기로 가라앉았다. 교수님의 말은 표면적으로는 가벼운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훨씬 더 깊고 심오했다. 이는 단순히 생계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가 선택한 학문의 길이 어떠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학이라는 학문은 그 자체로 많은 도전과 난관을 안고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불확실하고 위험한 삶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격려의 메시지였다.




철학을 전공한다는 것은 때로는 외로운 길을 걷는 일과 같다.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철학이라는 타이틀은 종종 무시당하거나, 공상주의자로 치부되기도 한다. 취업 시장에서는 전공이 실용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 순간들 속에서, 솔직하게  내 선택을 이따금씩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나는 내 삶의 고난이 전적으로 철학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고통받는 이유가 철학 때문인가?"라고 자문했을 때, 철학은 오히려 어둠 속을 헤쳐 나가는 빛이 되어 주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 삶 속에서 철학을 놓아버리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앞으로도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키워드는 단연코 "철학"이 될 것이다.

나는 철학과를 선택한 내 결정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지면을 빌려 철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응원과 격려의 마음을 전한다. 모든 선택의 과정에서 두려움이나 걱정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선택을 믿고 묵묵히 나아가다 보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내면에서 찾게 될 것이다.)




철학은 단순히 책 속에만 존재하는 학문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순간에 철학은 숨 쉬고 있다.

일할 때, 누군가와 만날 때,

혹은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

연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

그 모든 순간에 우리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들이 단어와 문장에 의미를 불어넣어 철학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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