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정임 Apr 29. 2024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 사이에서

“철학이 삶에 무슨 도움이 되나요?”


어김없이 사람들이 던지는 이 악의 없는 질문은 철학도들의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왜냐하면 질문의 내용이 철학의 유래나 주제, 방법도 아닌 ‘철학이 자신의 삶 속에서 무슨 목적을 가지고 어떤 수단이 될 것인가’를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진실과 거짓,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등 다른 학문이 전제하는 가치나 그 논의를 뒷받침하는 논리가 정말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를 다룬다. 이를 일상생활로 끌어와보자. 철학은 평범한 우리가 획득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획득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자문해 보는 것이지 획득 방법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철학의 문제는 사람들의 의문과는 다른 차원에서 설정되어 있다.


따라서, 철학도는 고작 ‘당신이 의문을 갖는 것에 스스로 납득할 만한 방법으로 답하기 위해 말의 의미나 사용법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철학은 당신이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명확히 하고, 그것들을 어떻게 추구해야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와 같이 적당히 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쓴웃음을 지으며 침묵한다. 속으로는 '역시 철학도도 철학의 쓸모를 말하지 못하는군.'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철학도는 철학도대로  ‘또 괴짜라는 말을 듣겠군’ 하고 혼잣말을 하게 된다.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


나는 종종 철학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단순히 지식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사상, 신념, 그리고 경험들을 더 깊고 넓은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이미 형성된 선입견과 편견,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낸 좁은 시야는 우리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이 되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구축된 벽을 허무는 일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우리는 종종 안락함과 익숙함 속에서의 생활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그 안에서만 살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세상을 넓은 시야로 바라보고자 한다면, 이러한 안락함에서 벗어나 익숙하지 않은 영역으로 발을 내디뎌야 한다. 이 과정은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서, 때때로는 자신의 과거 행동이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순간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럼 누군가는 질문할 것이다. "꼭 철학을 통해 자신의 시야를 넓히려고 고통받아야만 하느냐?"  물론, 배부른 돼지로 죽을 때까지 살 수 있다면 그것이 꼭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솔직히 가능하다면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그러나 배부른 돼지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배부른 돼지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해야 한다. 배부른 돼지인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는 순간 불행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나와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그런 운명을 갖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배부른 돼지는 이런 글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기에. 


자기반성은 뼈아프고 피하고만 싶은 일이다. 철학을 모르고 사는 삶이 더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배부른 돼지임을 깨닫고 변화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배고플지라도 소크라테스인 자기 자신에게 만족할 것이다. 그게 인간이 철학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이며, 인간이 인간 되는 까닭이다. 





모두들 철학에서 어떤 것을 기대한다. 

나는 믿는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힘이 철학에 있다는 것을.

이전 09화 철학을 하려면 머리가 좋아야 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