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철학을 하려면 머리가 좋아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이에 대한 답변은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확실한 점은, 철학함이 기본적으로 외국어 능력과 사회문화적 배경 지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철학을 전공함으로써, 우리는 각 학문 분과별로 특화된 언어를 배워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예컨대, 영어는 기본이 되며, 동양 철학을 공부할 경우 한문을, 서양 고대 철학을 공부할 경우는 그리스어를, 독일 철학이나 러시아 철학을 공부할 경우 해당 언어를 통해 원문을 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수한 번역본도 많이 존재하지만, 남이 소화시켜 준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과 자신이 직접 지식을 체화하는 과정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에, 철학은 다양한 언어를 기반으로, 그것을 통해 풍부한 사상과 이론을 직접 탐구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또한, 철학을 전공함에 있어 다양한 배경 지식의 축적은 필수적이다. 한 인물의 철학은 반드시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게 되는데, 그에 따라 문화, 사회, 정치와 관련하여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이는 철학이 단순히 추상적인 개념이나 논리적인 추론에만 그치지 않고, 그것들이 실제 세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탐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철학은 역사적 사건, 과학적 발견, 예술 작품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지식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 지식들을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외국어 능력과 사회문화적 배경 지식이 중요하다는 것이 반드시 철학 공부를 위해 머리가 뛰어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철학은 깊은 호기심, 열린 마음, 그리고 다양한 관점을 탐구하려는 의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철학 공부를 시작하기 전의 내가 철학도를 만났다면 분명 나 역시 그들을 무척이나 대단한 사람이라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철학 공부를 해보니, 철학이 꼭 천재들만의 영역이 아님을 깨달았다. (당연히 나도 천재는 아니다.) 누구나, 일정한 노력만 기울이면 깊은 사유에 이를 수 있다. 복잡해 보이는 논문과 난해한 철학적 개념들이 처음에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그 껍질을 한 겹 벗겨내고 나니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 같다. 너무나도 복잡하고, 오직 천재들만이 다룰 수 있는 분야로 여겨져 '내가?'라는 의문이 절로 드는 것. 하지만 철학자들도 태어날 때부터 철학자가 아니었으며, 그들 역시 평범한 인간들에 불과하다. 철학자라고 해서 모두 소크라테스나 니체가 아니며, 그들도 차근차근 사유를 깊게 해오며 그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다.
더 근원적으로 들어가서, 본인이 철학적 사고가 그렇게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사실 나 역시도 철학적 사고가 매우 뛰어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할 때 개념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사상가들의 복잡한 이론을 따라잡는 속도가 느릴 때가 많았다.
반면에 더 빠르게 이해하고, 나보다 더 깊은 통찰력을 보이는 친구들이 있었다. 사람인지라 그런 친구들을 보며 질투심이 생기고, 나도 그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질투심이나 조급함은 내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들이었다. 철학을 공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침착하게, 깊이 있는 사고를 통해'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다.
너무 빨리 이해하려 하면 오히려 본질을 놓칠 수 있다. 그리고 자신만의 속도에 맞춰 깊이 있는 이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이 빨리 이해했다고 해서 그 속도가 나의 속도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그 이론을 이해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깊고, 철저하게' 그 이론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다.
철학 공부에는 'Side Effect'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이론을 깊게 파고들면 들수록, 연관된 사상이나 개념들이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한다. 한 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더니,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문제를 서두르게 해결하려고 하면,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러므로, 문제에 접근할 때는 어떤 사상 하나를 고찰하더라도 천천히, 침착하게 바라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지능과는 별개의 문제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더 많이 공부하고 사유하면 되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문제에 부딪혀 답답해도 인내심을 갖고 계속 고민해 보는 태도를 기른다면, 누구나 훌륭한 철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어려우니까 감히 손대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과감하게 손대지 않으니까 어려워지는 것이다.
–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