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우유가 마시고 싶다면
melt 05
Topˏˋ coffeeˏ cacao podˏ bitter
Midˋˏ dried fruitsˏ vanila
Baseˏˋ tonka bean
그에게는 '엄마' 하면 떠오르는 어떤 향기가 있다. 그 향은 엘*스틴 사의 헤어제품에서 나는 향, 혹은 장미가 그려진 촌스러운 유리병의 샤워코롱에서 나는 냄새와 유사하다. 이와 같은 향은 일상 속에서 어쩌다 스치게 될 때면, 수만 가지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아주 어릴 적, 잠 못 드는 밤이면 엄마가 내어주던 따뜻하게 데운 머그잔에 담긴 우유의 향 또한 어딘가 끼어 있을 것이다.
"아들, 자니?"
그녀는 불빛이 스며 나오는 방 문을 조심스레 열고 아들을 불렀다. 학교에서의 첫 날을 마치고 돌아온 밤, 아이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잠들기 위해 두 눈을 꼭 감으려고 하면 할수록 눈꺼풀이 점점 더 가벼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녁식사 후 방 안에서 야금야금 먹어 치운 쿠키며 머핀의 부스러기가 아직도 책상 위에 널려있었다. 그녀는 머그잔을 받친 쟁반을 이부자리 옆 협탁 위에 올려놓고 아이의 책상 위에 있는 빵 부스러기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두꺼운 이불에 누워, 요를 가슴까지 끌어올린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아이는 몸을 뒤척여 그녀가 서 있는 쪽으로 돌아 누웠다. 그녀는 군데군데 구김이 간 얇은 파자마를 걸치고 아들의 책상 위에 어지러이 놓인 그림책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부엌에서 딸려 온 어떤 것들의 향기가 공중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방 안에 흩뿌려지는 향기는 여러 가지 음식 냄새가 뒤섞인 불쾌한 종류의 것은 아니었고, 고소한 커피의 향과 무언가를 갓 구워낸 오븐에서 날 법한 종류의 것이었다.
아이는 몸을 일으켜 협탁 위에 놓인 우유 잔을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따뜻하게 데워진 머그잔에서는 단순히 데운 우유의 향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설명이 조금 부족한 온기가 느껴졌다. 머그잔에 묻어 있는 온기는 일종의 배려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배려는 너무도 일상적이라 받으면서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따뜻하게 데운 머그잔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이와 같은 배려를 학습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었다. 아마도 아이가 이런 류의 배려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날에는 다른 누군가의 잔을 데워줘야 하는 위치에 서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는 '따뜻한 우유가 마시고 싶다면, 네 잔부터 데워라'고 말하던 할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데워진 우유 위에 얇은 유막이 생겼다. 스푼으로 휘휘 저으니 얇은 막이 회오리 지며 뭉쳐 녹아내렸다.
Noteˏ
넛 / 바닐라 / 포근한 / 안락한 / 데운 우유
오후 4시 즈음, 출출함이 스멀스멀 사무실을 기어오를 때 향수를 뿌렸더니, 건너편 책상에 앉은 동료가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라고요. 저와 눈이 마주치길래 향수를 뿌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누군가 간식을 사 온 줄 알고 설레었다고 말하더군요.
고소한 너티와 은은한 바닐라가 잘 어우러진 향이에요. 잘 찾아보기 힘든 구르망 계열이라, 사실 사람보다는 먹음직한 디저트에서 날법한 향인데요. 그런데 이게 또 공간에 은은하게 퍼지니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이 납니다. 여름보다는 한겨울 퇴근 후 집에서 난다면 심신의 안정이 될 것 같은 향이에요. 겨울에 꼭 다시 한번 뿌려보고 싶네요.
*이 글은 paffem의 'melt 05. 너티크림 초코라떼'향수를 테마로 작성된 단편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