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채우는 단정한 자세
기다리는 순간을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정확히는 기다리는 순간의 나의 모습 말입니다. 떠올려 보면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다리는 순간을 마주합니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거나 약속 장소에 먼저 가 앉아 있거나 대화하다 잠시 자리를 비운 친구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럴 때,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얼마 전 회사에 한 여성 분이 면접을 보러 왔습니다. 1층 카페의 소파에 앉아 기다리는 그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회의가 길어져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은 방금까지 긴장했던 자세를 조금 풀고 습관처럼 휴대폰을 꺼내 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몇 분이 지나도 다른 일을 하지 않고 그저 주변을 여유롭게 살펴볼 뿐, 여전히 바른 자세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분을 보며 기다리는 순간이란 잠시 일시정지된 순간이 아니라, 여전히 재생되고 있는 어엿한 일상의 한 순간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다리는 순간에도 나는 누군가의 일상의 풍경 속에 놓여 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는 잠시 멈춘 시간일지 몰라도, 같은 장소에 있는 다른 사람의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정상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잊고 우리는 자주 방심한 자세를 취하고 맙니다. 짝다리를 짚은 불량한 자세로 버스를 기다리거나, 목과 등을 구부리고 하염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봅니다. 그 순간 내 모습은 마치 핑킹가위로 잘라 덧붙인 장식처럼 어색하고 투박해집니다. 기다리는 자세를 아름답게 유지하는 것은 나의 반경을 보다 넓게 의식해야 하기에 무척 사려가 필요한 일입니다.
며칠 전 인쇄소에 견적을 받으러 찾아갔을 때, 잠시 테이블로 안내받아 기다린 적이 있습니다. 스케쥴러를 뒤적거리거나 휴대폰을 하며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내어주신 차를 홀짝이며 차분하고 단정한 태도로 기다렸습니다. 상상해 봅시다. 만약 휴대폰을 들어 무표정으로 카톡을 하거나 릴스를 보다가 상대가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는 순간 허겁지겁 휴대폰을 내려놓고 인사를 한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기다리는 자세에 유의한다는 것은 방심하지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내가 살필 수 없는 뒷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순간이란 쉬는 순간이 아니라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흐트러지지 않은 좋은 모습으로 나의 시간을 다시 흘러가게 할 수 있도록 대기하는 시간 말입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중요한 일과 일 사이에 ‘구멍 난’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시간 또한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어엿한 하나의 시간입니다. 무(無)와 공(空)은 다릅니다. 무는 없는 것이지만, 공은 ‘빈 것으로 채워진’ 것입니다. 말하자면 기다리는 순간이란 후자의 순간인 것입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바로바로 진행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어 일상 속에는 종종 ‘기다림’의 순간이 생깁니다. 일상의 굴곡 속에 우연히 팝업되는 기다림의 시간이란, 어쩌면 일상이 부드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틈틈이 자세를 가다듬으라는 작은 선물이 아닐까요?
카페에서 즐겁게 수다를 떨다 친구가 화장실을 가 잠시 자리를 비우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 가끔은 기다렸다는 듯이 휴대폰을 꺼내드는 대신 방금까지 했던 대화의 내용을 곱씹거나 카페의 인테리어를 둘러봅시다. 버스를 기다릴 땐 고개를 푹 숙이고 유튜브 영상을 보는 대신, 음악을 들으며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는 건 어떨까요? 불쑥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산뜻한 얼굴과 아름다운 자세로 무언가를 기다려 봅시다. 기다리는 자세가 아름다운 사람에게는 여유로움이 깃드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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