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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시 Jan 14. 2024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의 의미

한 사람을 상상합니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 종종 한 사람의 깊이와 다정함은 이로부터 온다는 생각이 듭니다. 1인 출판사의 대표이자 한 브랜드의 기획자로 일하면서 점차 만나야 할 사람들이 늘어가는 요즘입니다. 대표님, 사장님, 실장님, 작가님, 차장님... 그 사람의 직업이나 직함에 맞게 호칭을 다르게 써 가며 연락을 드립니다. 그때마다 꼭 염두에 두는 것은 ‘상대의 이름을 꼭 불러주자‘는 마음가짐입니다. 메일이나 카톡으로 연락을 드릴 때, 꼭 직함 앞에 ’OO 대표님‘, ’OO 실장님‘하고 성함을 붙입니다.


우리는 모든 대표님께 ’안녕하세요, 대표님‘이라는 첫인사를 건넬 수 있습니다. 모든 작가 분께 ’감사합니다, 작가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인사들은 그 사람에게 건네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여도 상관없었을 익명의 상대에게 던지는 말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 우리는 사람과 마주하는 일 없이 모니터 너머의 사람들과 관계 맺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얼굴도 모르고 때로는 목소리도 모르는 상대와 소통하면서, 우리는 일일이 한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고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표’, ‘실장’, ‘작가’라는 직함은 추상적인 이미지, 그뿐입니다. 그 너머에는 ‘사람‘이 존재합니다. 그 사람을 상상해 보려는 노력 없이 그저 직함만을 부르는 것은 무심하고 피상적인 소통이 되기 십상입니다. 우리는 이름을 부르지 않게 되면서 ’한 사람‘과 마주하는 방법을 잊어버렸습니다.


며칠 전, 업무 차 한 포토그래퍼 분과 만났습니다. 저는 그분을 기획자 대 사진작가로 처음 안 것이 아닌, 지인을 통해 ‘지우님’으로 소개를 받았던 터라 연락이 닿았던 순간부터 서로 ’지우님‘, ’소원님‘하고 이름을 부르며 소통했습니다. 촬영 당일, 점심에 식사를 하다가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처음에 지우님이라고 불러주셔서 좋았어요.“라고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부르시는데요?“

“보통은 ‘작가님’이라고 부르죠.“


그 말에 마음 한 켠에 물방울이 떨어진 듯 섬세한 울림이 퍼졌습니다. 그동안 나는 누군가를 대하는 많은 순간에 얼마나 자주 이름을 불러왔던가 하고요. 자랑은 아니지만, 꽤나 성실히 누군가의 이름을 말해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반대로 나는 얼마나 자주 누군가로부터 이름을 불려 왔나 떠올려 봅니다. 역시나 ’디렉터님‘이라는 말보다 ’소원님‘, ’원이님‘이라고 불렸던 기억이 따뜻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저의 이름을 불러주었던 분들은 여전히 얼굴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저에게도 그분들은 직함이 아니라 이름으로, 한 사람으로서 남아 있는 것이겠지요.


혀를 굴려 누군가의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하는 것. 생각해 보면 이 얼마나 성실한 행위일까요. 이 말을, 이 마음을 ‘당신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이라는 한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를 고작 단 두 글자 남짓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가닿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비단 일터에서뿐만이 아닙니다.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순간에는 아낌없이 이름을 부릅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기보다 “OO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기도 합니다. 타인의 이름을 얼마나 잘 다루며 사용하고 불러줄 줄 아는가로부터 우리는 비로소 ‘진심’이라는 마음을, 만질 수 있는 형태로 감지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추상화가 아니니까요. 늘 직함이나 호칭 너머의 ‘개인’을 상상하고 성실히 윤곽을 그리는 연습을 해 봅니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이름을 어떻게 불러줄 것인지 마음을 좀 더 깊이 써 보는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ps. 우연히 무과수 님의 작업실에서 <무과수의 기록 | 베를린>의 퇴고본을 보았습니다. 처음 원고에는 ‘그녀’라고 적혀 있던 말이 ‘하자(Hazal)’라는 이름으로 다시 적혀 있었습니다. 제가 엿보았던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퇴고였습니다.

무과수 <무과수의 기록 | 베를린> 퇴고본의 한 페이지



<오늘의 기본 vol. 1> 텀블벅 출간 펀딩이 진행 중입니다.(~1.31) : https://tumblbug.com/neaplifemind



+ bonus. 센템 기획자로서의 이야기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라고 하니, 그런 마음으로 기획했던 센템의 배송 서비스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작년 추석부터 시작한 서비스인 ’자필 안부 스티커‘로, 선물 주문일 경우 택배 상자 안쪽면에 부착해 드리는 직사각형 형태의 스티커입니다. 그 위에는 ‘____이 소중한 당신에게’, ‘_____님의 건강한 나날을 바라며.’라는 문장이 간결히 적혀 있습니다. 저희 브랜드는 선물을 하고자 찾는 분이 많기에, 주문한 사람과 받는 사람이 다른 경우 대부분 선물을 위한 주문입니다. “선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떤 브랜드인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가장 먼저 선물을 보낸 사람을 떠올리고 싶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선물하는 사람은 자신을 직접 보낼 수 없어서, 제품(선물)을 빌려 마음을 표현하는 것일 테니 자신의 마음이 먼저 전해지길 바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센템이라는 브랜드를 앞세우는 대신, 가장 먼저 서로가 이름을 먼저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이름을 불러야겠다”라는 다정한 해결책이 떠올랐습니다.



선물은 직접 전해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가 없어 배송을 합니다. 그럴 때 선물을 받는 사람이 마주하는 첫 순간은, 현관문 앞에 덩그러니 놓인 투박한 택배 상자입니다. 보자마자 그 상자 너머의 ’사람‘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 OO가 보냈구나‘하고 선물을 보낸 사람을 상상하고 떠올리면 좋겠다, 그러한 마음에서 시작하게 된 배송 서비스였습니다. 혹여나 택배 상자의 겉면에 부착할 경우 이름이라는 개인정보가 원치 않게 노출될 수도 있다는 걱정에 결국 택배를 갈랐을 때 처음 보이는 안쪽면에 부착하는 형태가 되었지만요. ’배송메시지‘ 란에  본인의 성함과 받는 분의 성함을 나란히 기입해 주시는 고객 분들의 메시지를 볼 때마다 흐뭇한 기분이 듭니다. 선물이란 자고로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드리는 물건입니다. 얼마나 따뜻한 마음으로 그 이름을 타이핑했을지, 어떤 마음으로 그 이름들을 저희에게 맡겼을지 상상하면 마음이 따뜻하게 부풀어 오릅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한다는 것은 이러한 것이겠지요. 심지어 저에게도 그 이름들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이름이란 것은 새삼 이렇게나 힘이 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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