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쓰는 판타지
나균은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병원 복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새벽의 복도는 마치 다른 세계로 이어진 침침한 통로처럼 보였다. 박쥐의 모습을 한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눈에 안 띄는 다른 걸로도 변신할 수 있을까.. 병원 천장에 박쥐라니. 눈에 너무 잘 띌지도 모르겠는데.’
하지만 그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자정이 넘은 병원 복도에는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았다. 혹시라도 발각되면 최근에 익힌 최면으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사실 나균은 왠지 박쥐가 되어 거꾸로 매달려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피가 머리로 쏠려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같았다. 그리고 박쥐가 되면 쓸데없는 잡념이 사라지고 목표지향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왜 자신이 이렇게 병원 천장 구석에 매달려 있는 건지 한심한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간 일어났던 일들이 빠르게 머리를 스쳤다.
약 6개월 전 어느 날 새벽, 나균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난데 없이 나균의 방문이 ‘쾅’하고 열렸다. 그리곤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와 바닥에 쓰러졌다. 그런데 아버지의 가슴에 은빛 수리검이 박혀 있는 것이 아닌가?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운영하시는 평범한 아버지가 난데없이 피를 흘리며 들어와 쓰러지니 나균은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균을 보며 긴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균아 지금 시간이 많지 않다. 나는 쫓기고 있는 중이야. 내가 여기 계속 있으면 너까지 위험해질 수 있어. 시간이 없으니 할 말을 하고 가마. 아버지는 네가 지금의 삶에 만족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행복했으면 좋겠어. 하지만 네가 사는 삶이 너무나 괴롭고 살아가기 힘겨울 때는 너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기회가 있다. 그때 너는 강력한 힘이 필요할 테지. 그럴 때 인간의 피를 마셔라.”
너무나 황당한 소리에 말문이 막혀 나균은 잠시 멍하니 아버지를 바라본다. 그리고 아버지의 상처가 떠올라 정신 차리고 얘기한다.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아버지, 제가 구급차 부를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건 도움이 안 돼. 이 수리검은 칼날 끝이 박히는 순간 칼끝이 뿌리처럼 사방으로 파고 든다. 이미 내 심장과 장기 사이로 날이 박혀 있는 것 같다.”
평범한 레스토랑 사장님이신 아버지의 말로는 좀처럼 믿기 힘든 이야기다.
나균은 생각했다.
‘내가 아직 꿈속에 있는 건가?’
꿈속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나균은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아버지는 갑자기 피를 토하시고는 말을 멈추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무언가를 감지하신 듯 창밖을 쳐다봤다.
“적이 다가오고 있구나. 이젠 떠나야 할 때 같다. 내가 널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결코 널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 나균아 네 삶은 네가 선택해라. 그것이 어떤 삶이든 나는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럼 잘 있거라.”
아버지는 창밖으로 몸을 날리셨다. 놀랍게도 한 마리의 늑대로 변해 2층인 나균의 방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쏜살같이 가로등 사이의 밤거리를 달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균은 눈앞에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부상을 입고 피를 흘리시며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갑자기 늑대가 되어 사라졌다. 그대로 믿기에는 너무 초현실적인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달리의 기괴하고 왜곡된 그림 속 초현실주의의 세계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나균은 사실 어릴 때 어머니를 잃었다. 그리고 지금은 어머니에 대해서는 희미한 기억만 남았다. 다만 어머니께선 지병으로 돌아가셨다고 아버지께 들었다. 그래서 여태껏 아버지와 단둘이서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기 힘들 거라는 말을 남기고 갑자기 사라지셨다. 그러나 아버지를 다시 못 볼 것이라는 예감은 이상하리만치 현실감 있게 그에게 다가왔다. 돌아올 기약 없이 사라진 아버지 때문에 망연자실해진 나균은 흐르는 눈물과 함께 밀려드는 혼돈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쉽게 다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젠 세상에 완전히 혼자라는 느낌이 나균의 머리를 옥죄는 순간 나균은 온몸에 힘이 빠지며 수면의 안락한 심연 속으로 도망치듯 빠져들어갔다.
나균은 며칠을 아버지를 기다렸다. 역시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균은 경찰에 연락하여 아버지가 가출하셨고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실종 신고를 했다. 아버지가 정신 착란이라면 경찰이 아버지를 찾아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가 남긴 말은 쉽게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균은 아버지의 말을 자신도 모르게 곱씹고 있었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기회, 인간의 피를 마셔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수리검 부상으로 인한 쇼크 때문에 정신 착란 상태에서 이야기한 망상이라면 아버지의 괴이한 이야기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아버지가 늑대로 변해서 밤거리를 달려 나간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나균이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것이라 도저히 그사실만은 부인하기 어려웠다.
그것은 내 망상일까? 나균은 어디부터가 실제고 어디까지가 상상인지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나 그러한 혼란도 시간이 흐르며 마음속에서 차츰 잦아들었다. 마음은 알아서 나름의 합리적 이유를 찾아갔다. 결국 나균은 사건의 진실을 알려는 노력 자체를 차츰 포기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