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공식을 찾아냈습니다
아직 못 찾았습니까.
그렇다면 초등학교 소풍 때 보물을 거의 또는 한 번도 못 찾으셨겠군요.
프랑스의 대문호인 알베르트 까뮈는 에세이 <시지포스의 신화>를 통해 “우리는 시지포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시지포스 아시지요.
그리스 신화에서 으뜸신인 제우스를 기만한 죄로 큰 바위를 산꼭대기에 올리기를 반복하는 형별에 처해진 코린토스의 왕입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기 같은 무한굴레 속에서 일상 자체가 형벌이고 도저히 행복이라고는 찾을 수 없지요.
하지만 그랬을까요.
매일 큰 바위가 산 정상에 이르러 굴러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도, 정상 부근에 와서는 ‘다 됐어. 조금만 굴리면 이 형벌도 끝이야’ 하고 즐거운 상상을 하지 않았을까요.
오래 전 본 드라마 <나쁜 엄마>에도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드라마 속 진영순씨는 신혼시절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혼신을 다 해 키운 외아들마저도 교통사고로 의식불명과 불구를 거듭함에도(나중에 기억을 되찾고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만) 낙심치 않고 고난을 벗 삼으며 억척스러운 인생을 살아갑니다.
진영순씨의 휴대폰 연결음은 가수 윤항기씨의 ‘나는 행복합니다’였는데, 이 것이야말로 고난에 허덕이는 영순씨가 강철멘털로 살아갈 수 있는 자기주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농장’ 주인 영순씨는 어려운 삶 가운데, 자신을 오해하고 때로는 힘들게 하는 이웃들에게서 ‘소소’한 것이라도 감사할 점을 찾아 이웃과 음식을 나누며 두루두루 행복하게 살아나갔습니다.
행복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요.
시지포스같이 무한굴레에 갖힌 사람도 ‘소소’한 그 무었을 찾는 것...
우리 인생에는 좋은 장면만큼이나 무척이나 힘들고 심지어는 지워버리고 싶은 장면도 많지요.
그렇습니다.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저도 구름이나 소나기가 참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저는 그 모든 것을 필터링하는 기술을 가졌고, ‘현재의 나’라는 무지개를 오래오래 간직하며 살아갑니다.
김형석 교수님은 인생의 화양연화(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는 60세를 전후한 시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울러 행복 전구를 자주 켜라고 하십니다.
방법도 알려주십니다.
가장 손쉬운 자극은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지인들과의 교류라고 말이죠.
저는 복이 많습니다.
훌륭한 가족들과 함께 ‘복작복작’하며 행복한 생활을 해나가는 것 외에 저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많은 지인들과 친구들을 가졌으니까요.
좋은 가족과 지인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행복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원인은 딱 여기 있습니다.
이 한가지입니다.
원하는 것 이상의 기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누기 잘 해보세요.
욕망은 기대라는 것을 선물한다고 하지요.
더 크고, 더 높은 기대는 당신을 흥분시킵니다.
하지만 그 기대감을 무작정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턱없이 높은 기대감은 당신을 불행으로 인도할 수도 있으니까요.
내가 못해서가 아니라 나의 기대치가 높아서 불만을 느낍니다.
불만의 이유를 시작해볼까요.
시간이 많을 땐... “왜 내게 돈이 없는걸까”
돈이 많을 땐... “왜 내게 시간이 없는걸까”
시간과 돈이 많을 땐... “왜 내게 남친(여친)이 없는걸까”
원하는 것을 가졌을 때... “왜 내겐 불만이 없는걸까”
한강 백사장의 모래알만큼이나 불만한 것은 많습니다.
제가 앞의 여러 글에서 쓰던 내용입니다만, 인생의 모든 장면이 드라마같이 수려한 것은 아닙니다.
또 그래서도 안된다고 했구요.
어떠한 시련이 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면서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드는 삶이야말로 재미를 두 배나 더하고 행복한 삶 아닐런지요.
시지포스는 신들의 신 제우스의 형벌을 받아 분명히 불쌍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행복까지는 아니어도, ‘즐거운 상상’은 분명히 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