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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포스도 행복한 상상을 했겠지

행복공식을 찾아냈습니다

by 페트라


아직 못 찾았습니까.

오늘도 행복을 찾아 두리번거리십니까.

그렇다면 초등학교 소풍 때 보물을 거의 또는 한 번도 못 찾으셨겠군요.

옆에 있거나 심지어 당신 마음 속에 있는 것을 그리 헤매다니요.




프랑스의 대문호인 알베르트 까뮈는 에세이 <시지포스의 신화>를 통해 “우리는 시지포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시지포스 아시지요.

그리스 신화에서 으뜸신인 제우스를 기만한 죄로 큰 바위를 산꼭대기에 올리기를 반복하는 형별에 처해진 코린토스의 왕입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기 같은 무한굴레 속에서 일상 자체가 형벌이고 도저히 행복이라고는 찾을 수 없지요.

하지만 그랬을까요.

매일 큰 바위가 산 정상에 이르러 굴러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도, 정상 부근에 와서는 ‘다 됐어. 조금만 굴리면 이 형벌도 끝이야’ 하고 즐거운 상상을 하지 않았을까요.




시지포스3.jpg

오래 전 본 드라마 <나쁜 엄마>에도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드라마 속 진영순씨는 신혼시절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혼신을 다 해 키운 외아들마저도 교통사고로 의식불명과 불구를 거듭함에도(나중에 기억을 되찾고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만) 낙심치 않고 고난을 벗 삼으며 억척스러운 인생을 살아갑니다.

진영순씨의 휴대폰 연결음은 가수 윤항기씨의 ‘나는 행복합니다’였는데, 이 것이야말로 고난에 허덕이는 영순씨가 강철멘털로 살아갈 수 있는 자기주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농장’ 주인 영순씨는 어려운 삶 가운데, 자신을 오해하고 때로는 힘들게 하는 이웃들에게서 ‘소소’한 것이라도 감사할 점을 찾아 이웃과 음식을 나누며 두루두루 행복하게 살아나갔습니다.




행복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요.

시지포스같이 무한굴레에 갖힌 사람도 ‘소소’한 그 무었을 찾는 것...

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읽은 책 강진이 님의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에서 작가는 행복과 감사의 순간을 그림과 글로 표현하며 “그림을 그리며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행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다”고 고백합니다.




우리 인생에는 좋은 장면만큼이나 무척이나 힘들고 심지어는 지워버리고 싶은 장면도 많지요.

그렇습니다.

인생은 환희롭지만은 않습니다.

영광스러운 순간도 있겠지만 실패도 상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구름이나 소나기가 없이는 결코 무지개가 뜨지 않는다’




저도 구름이나 소나기가 참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저는 그 모든 것을 필터링하는 기술을 가졌고, ‘현재의 나’라는 무지개를 오래오래 간직하며 살아갑니다.

저의 행복 필터링 기술은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지금의 저를 위해 음으로 양으로 아껴주고 도와주신 지인들 덕분이며, 남은 22만여 시간(85세 기준) 동안 그 분들과 교류하며 두루두루 살아간다는 상상에 즐거울 따름입니다.



김형석 교수님은 인생의 화양연화(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는 60세를 전후한 시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울러 행복 전구를 자주 켜라고 하십니다.

성취감으로 얻은 행복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지므로 일상의 자극(행복 전구)으로 새로운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방법도 알려주십니다.

가장 손쉬운 자극은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지인들과의 교류라고 말이죠.

저는 복이 많습니다.

훌륭한 가족들과 함께 ‘복작복작’하며 행복한 생활을 해나가는 것 외에 저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많은 지인들과 친구들을 가졌으니까요.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는 ‘인간의 영광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끝나는지를 생각해보라. 나의 영광은 훌륭한 친구들을 가진데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딱 저에게 맞고 제가 좋아하는 글입니다.




좋은 가족과 지인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행복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원인은 딱 여기 있습니다.

이 한가지입니다.

원하는 것 이상의 기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현재의 성취/기대치’일 듯합니다.

다시 말하면 ‘행복=가진 것/원하는 것’이지 않을까요.




나누기 잘 해보세요.

내가 ‘가진 것’에 만족치 않고 ‘기대치’ 또는 ‘원하는 것’ 같은 분모만 늘린다면 당신의 행복은 평생 ‘1’을 넘지 못하고 ‘0.x’대 행진을 하겠지요.

현재의 가치, 가진 것에 한계가 있다면 행복해지는 방법은 분모를 줄이는 것 이외에 방법이 없습니다.

기대를 낮추면 쉬이 행복해집니다.


행복공식.jpg


욕망은 기대라는 것을 선물한다고 하지요.

더 크고, 더 높은 기대는 당신을 흥분시킵니다.

하지만 그 기대감을 무작정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턱없이 높은 기대감은 당신을 불행으로 인도할 수도 있으니까요.

내가 못해서가 아니라 나의 기대치가 높아서 불만을 느낍니다.

삶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그리고 예정한 목표가 너무 멀리 있다면 스스로 욕망을 조정해봐야 합니다.

만족이란 내가 원하는 것의 충족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것입니다.




불만의 이유를 시작해볼까요.

시간이 많을 땐... “왜 내게 돈이 없는걸까”

돈이 많을 땐... “왜 내게 시간이 없는걸까”

시간과 돈이 많을 땐... “왜 내게 남친(여친)이 없는걸까”

원하는 것을 가졌을 때... “왜 내겐 불만이 없는걸까”

한강 백사장의 모래알만큼이나 불만한 것은 많습니다.




제가 앞의 여러 글에서 쓰던 내용입니다만, 인생의 모든 장면이 드라마같이 수려한 것은 아닙니다.

또 그래서도 안된다고 했구요.

불꽃놀이는 일년에 한두 번 하니까 재밌는 것이지 그걸 매일한다고 생각 해보십시오.

그러면 금방 시시해질겁니다.




어떠한 시련이 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면서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드는 삶이야말로 재미를 두 배나 더하고 행복한 삶 아닐런지요.

시지포스는 신들의 신 제우스의 형벌을 받아 분명히 불쌍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행복까지는 아니어도, ‘즐거운 상상’은 분명히 했을겁니다.




모든 분들이 ‘즐거운 상상’을 행복으로 바꾸는 기술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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