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중양절에 집 생각하는 시다. 장안에서부터 양주로 돌아가니, 곧 장안은 북쪽에 있고, 양주는 남쪽에 있어, 북쪽이 고향이요. 남쪽이 타향이니 어찌 헤어짐의 한이 없겠는가? 가는 길에 마음은 남쪽 구름을 쫓으니, 곧 구름은 남풍을 따라 북으로 가고, 몸은 북쪽 기러기를 따라 곧 기러기가 중양절을 만나 남으로 돌아오니, 몸과 마음이 서로 다른 것은 생각하는 것이 그렇게 시킨 것이다.
아득히 생각건대, 고향 울타리 아래 국화가 오늘 重陽節(중양절)에 몇 송이나 피어 향기를 토할 것인지. 이는 나그네가 집 생각이 깊어 국화에 이르러도 사랑하고 감상할 수 없어 탄식하는 말이라.
* 江令(강령) : 수(隨) 나라의 강총(江總)을 말한다. 자(字)는 총지(總持), 본관은 지양고성(濟陽古城, 지금의 허난성 란카오河南城 兰考)이다. 남조(南朝) 시대에 양(梁)·진(陳) 나라에서 벼슬을 했는데, 진나라의 벼슬이 상서령(尙書令)에 이르러서 세인들이 강령(江令)이라 불렀다. 수나라 때까지 벼슬을 했다. 중국의 자료에는 이 시를 강총의 작품으로 보는 것도 많다. 시도 다른 표현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本逐征鸿去(본축정홍거) 还随落葉来(환수낙엽래)
菊花應未滿(국화응미만) 请待诗人開(청대시인개)
또는
心逐南雲逝(심축남운서) 形随北雁来(형수북안래)
故鄕籬下菊(고향리하국) 今日幾花開(금일기화개)
* 許敬宗(허경종 ; 592-672) : 자(字)는 연족(延族), 항저우(杭州) 신성(新城) 출신, 수(隨)나라 대업(大業) 연간 수재(秀才). 당나라에서는 진왕부(秦王府) 학사, 예부상서 등을 역임했다. 초당(初唐) 궁정 문학의 대표로서 그의 시는 대부분 창화시(唱和詩)이다. 이 시는 몇 안 되는 서정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비록 정치적 논란으로 '무(繆)'라는 칭호를 받았지만, 문학적 업적은 《전당시(全唐詩)》에 27편의 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