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 자화상이라고 하면 우선 생각나는 화가가 에곤 실레(Egon Schiele)와 최초의 누드 자화상을 그린 여성화가 파울라 모더존-베커(Paula Modersohn-Becker)가 생각난다. 사실 에곤 실레는 자기의 그림을 너무 자기 비하적(卑下的)으로 그려서 누드화로서 에로스적 감흥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파울라 모더존-베커는 30대의 우아한 자신의 몸과 임신한 몸을 모두 자화상으로 그렸다. 임신한 자화상을 보고 에로스를 논한다면 독자들로부터 뺨을 맞을지도 모르지만, 실제 두 작품 중 임신한 자화상이 금삿갓의 취향에선 더 에로스적이다. 에곤 실레의 자화상은 메마르고 수척한 신이 무슨 병에 걸린 듯 뒤틀리고 일그러져 있어서 보기에도 썩 좋지는 않다. 하지만 크리스티안 샤드(Christian Schad)의 자화상에는 본인만 나오는 게 아니라 여성 모델이 함께 나온다. 본인은 완전 누드가 아니고 얇은 시스루 속옷을 입고 있지만 모델은 전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여자는 콧잔등이 휜 매부리코에 단발머리에 옅게 화장을 한 얼굴이다. 손목에는 검정 리본인지 문신이지 모르겠지만 장식물이 있다. 곳추선 유방과 유두는 방금 이들이 침대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짐작을 하게 만든다. 투명하게 두리운 커튼 앞에는 한 송이의 흰 꽃이 꽂혀있고, 커튼 너머로 어두운 공장의 굴뚝들이 늘어서 있다. 자세히 보면 여인의 뺨에는 칼자욱인지 깊게 파인 상처의 흉터가 머릿결로 가리고자 하나 가려지지 않고 드러나 있다. 손목의 문신이나 얼굴의 흉터로 말미암아 이 여인의 신분이 그냥 가정주부는 아닌 것 같다. 작품의 제목에 모델이라고 표현했지만 홍등가의 창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자의 상반신은 연초록색 얇은 속옷을 입어서 가슴과 젖꼭지, 가슴털 등도 적나라하게 비친다.
침대 위의 두 사람은 벗은 모양과는 대조적으로 어쩌면 냉랭한 기운이 두 남녀 사이에 흐른다. 침대의 모양으로 보아, 이제 막 뜨거운 정사를 끝낸 모양인데 마치 부부싸움이라도 한 듯이 서로 무관심 표정이다. 여자가 좀 더 여유 있는 포즈로 뭔가를 말하려는 듯한 얼굴이다. 아니면 남자에게 큰소리치며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 같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남자는 뭔지 모를 불안감이 가득한 눈으로 어디를 응시하고 있다. 여자의 머리와는 달리 잘 빗어 넘긴 머리카락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격렬했던 정사가 아니었나 보다. 여자의 맵시도 그런대로 정돈되어 있다. 남녀가 침대에서 벗고 함께 뒹굴면서도 이토록 단정한 모습일 수 있을까? 작가의 초상화에 무슨 비밀 코드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알맞게 탱탱한 유방과 고개를 빳빳하게 쳐든 유두, 불그스름 한 유륜이 훔쳐보는 금삿갓의 에로스적 본능을 자극하기는 한다. 오른쪽 젖꼭지를 지나치게 강조해서 묘사하고 있어 약간 기괴한 느낌도 들지만 그런대로 성적 충동을 유발한다. 그녀의 치장으로 보아 분명 여염집 여자는 아니다. 손목의 검은 문신은 어떤 상징 기호로서 몸을 파는 직업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화가는 스쳐가는 찰나에 의미를 부여하듯 그녀의 다리에 빨강 스타킹을 신겨 놓았다. 남자는 어딘가 불안정하고 근심하는 모습이 우러난다. 부인 몰래 유곽의 여인과 밀회를 하다가 혹시 발각되지나 않을까 걱정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실마리를 찾을 수는 없다. 오로지 모델이라고 불리는 여자에게서 해석의 코드를 찾아야 한다.
크리스티안 샤드의 <모델과 자화상> 이 작품은 커다란 공포가 밀회를 나누는 벌거벗은 두 남녀를 관통하도록 표현되었다. 화가는 다다이즘, 표현주의, 큐비즘 등 많은 화풍을 섭렵한 특이한 경력의 화가다. 그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자국이 일으킨 전쟁을 혐오하여 스위스로 탈출하였다가 이탈리아를 거쳐 보헤미안처럼 유럽 각지를 옮겨 다니며 작업을 했다. 말년에 조국 독일의 베를린에 안착하기까지 한 곳에서 3,4년을 넘게 살지 않았다. 조국의 정치 현실과 사회의 부조리에 염증을 느껴 그가 그토록 이 나라 저 나라를 방황해야 했던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