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군대 농담에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배식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라는 게 있다. 군 생활 때 보초 근무의 중요성을 주장하며 경계에 실패하지 말라는 훈시를 늘 들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먹는 게 사실 더 중요하다. 먹는 것은 신뢰고 공정이고 공평이며 사기(士氣)이다. 보급품이 모자란다고 장교만 먹고 사병을 안 먹이면 전쟁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우리 팀도 마찬가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까 바기오도 먹여야 구경 다니고 살 수 있다. 무얼 먹으면 어떻게 먹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매 끼를 음식점에서 해결하면 되지만, 경비도 경비려니와 맛과 장소, 종류를 결정하기 위해서 네 남자가 몇 시간을 입씨름해야 결론이 날 수 도 있는 난제이다. 각자가 입맛이 까다롭고, 선호하는 게 다르고, 더구나 현지 음식의 향신료에 대한 거부감이나 기호가 완전히 다른 법이니 결론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김치 스팸 참치 찌개가 끓는 모습>
그래서 음식 솜씨도 별로이고, 삼겹살 몇 번 구워보고, 식당에서 나오는 매운탕이나, 김치찌개에 밥이나 야채를 좀 추가해서 한 번 더 끓여서 꿀꿀이 죽 마냥 밥안주 즉 술국을 만들어 소주 마시던 얄팍한 실력자인 금삿갓을 메인 세프로 임명한 것부터가 아리송하다. 그래도 어쩌랴. 임무를 맡았고,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니 꾹 참고 할 수밖에. 그래서 도달한 결론은 적절한 임무 분담이다. 금삿갓 운사(芸史)가 메인 주방장을 맡고, 식품 전문가 덕은(德隱)은 밥 짓기 담당, 정보 보안 전문가 송재(松齋)는 설거지 주(主) 담당, 스프링 전문가 소운(素雲)은 주방 보조 및 설거지 보조 담당으로 정했다. 금삿갓 운사가 최고의 관직을 꿰찬 것이다. 모두 다 담당이지만 금삿갓만이 장(長) 자가 들어간 보직을 맡았으니까. 관직에 있을 때 유세를 좀 부려야겠다. 밥주걱 든 사람이 밥 한 술 더 먹는다고, 주방장 유세 말이다. 시쳇말로 ‘기름쟁이 곤조(根性)’가 있듯이 주방에서도 군기가 세고 위계질서가 강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쓰던 밭솥 보다 더 고급 : 사진 출처 Chef YD 블로그>
일단 저녁 준비를 하려면, 시장을 봐온 물건들을 정리해야 한다. 통조림류와 라면류 등은 선반에 보관하고, 술과 과일 등 냉장 보관용은 냉장고로 직행. 다행히 냉장고가 대형이라서 좋다. 야채는 조리나 먹기 좋게 사전에 잘 다듬고 씻어서 비닐봉지에 담아서 냉장 보관해야 한다. 그래서 통마늘을 다른 담당들에게 까도록 지시했다. 금삿갓은 양파와 당근, 로메인, 토마토 등 야채들을 다듬어 씻어서 비닐봉지에 담아 냉장고 야채 칸에 보관했다. 김치도 냉장고에 넣었다. 레몬은 씻어서 냉장보관하고, 망고는 상온에 두고 후숙(後熟)이 되도록 했다. 모두들 금삿갓에게 레몬을 무엇하러 이렇게 많이 샀느냐고 물었다. 바쁜 와중에 레몬의 효능을 자세히 얘기할 수도 없고 못 들은 체 했다.
식탁을 돌아보니 소운과 덕은 두 사람이 앉아서 통마늘을 까는데 영 신통하지 않다. 통마늘 몇 개를 계속 주물럭거리는데 진도도 안 나간다. 송재는 설거지 담당이라며, 자기 방에 가서 유튜브를 틀고 트롯 노래 연습에 빠져 있다. 일머리도 없고 손이 둔해서 마늘 까는데 인부로 잡혀가도 별 쓸모가 없겠다. 어쩔 수 없이 금삿갓이 달려들어 같이 마늘을 까면서 식품전문가 덕은에게는 쌀을 씻어서 전기밥솥에 쌀을 안치라고 했다. 밥 담당이 쌀을 얼마만큼 씻어야 하는지 알도리가 있는가? 금삿갓의 얼굴만 쳐다본다. 이럴 땐 식품전문가도 경험자의 기술이나 경험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쌀 봉지에서 컵으로 개량하여 정량을 씻도록 했다. 다 씻고 나서는 물 조절이 문제다. 금삿갓도 이곳의 쌀이 얼마나 물을 받는지 경험이 없다. 쌀을 물에 불려 놓았다면 어느 정도 알겠는데, 금방 씻은 것은 물을 많이 받을 것 같다. 대충 눈대중으로 생수통의 물을 받아서 솥에 부었다. 과거에 어머니들은 손바닥을 쌀 위에 대고 물이 손 등에 찰 정도로 했다는데, 여기서도 그게 통할 런지.
<뚜껑도 우리가 쓰던 것 보다 고급 : 우리 꺼는 양은 소재>
오늘은 첫날이라서 김치 참치찌개를 만들어 먹어야겠다. 스팸캔도 사 왔으니 같이 넣어서 짜글짜글하게 찌개를 만들어 보자. 김치와 대파를 적당량 냄비에 넣고, 올리브유로 살짝 볶아준 다음, 감칠맛을 위해서 감자를 한두 개 깎아서 넣었다. 좀 더 시원한 맛을 내려면 무를 넣으면 좋은데, 오늘 시장 보면서 무를 사 오지 않았다. 양파와 마늘도 다져서 넣는다. 적당량의 물을 붓고 된장 반 숟가락, 굴 소스 적당량을 추가한 뒤에 간을 본다. 입맛이 모두 다르므로 주방장 맘대로 했다가 짜니, 싱겁니 말들이 많을 것 같아서 구경하는 덕은과 소운에게 간을 보라고 한다. 모두 좋다고 하니 인덕션의 화력을 조절하여 맛있게 끓여 낸다. 그런데 밥이 말썽이다. 우리나라의 압력 전기밥솥이 아닌 냄비뚜껑 같이 얇은 양은 뚜껑이 있는 1970년대 밥솥이다. 마른 쌀이라 물도 많이 먹고 밥이 설 되게 생겼다. 물을 보충하여야 한다. 그냥 찬물을 부으면 밥이 푸석푸석해지니까 머리를 써야 한다.
<매번 밥할 때 마다 이렇게 누릉지가 생김 : 역시 기술 차이>
전기포트에 물을 빨리 끓여서 끓는 물을 보충하면서 밥의 뜸이 잘 들도록 해야 한다. 밥을 하면서 느낀 것인데, 이곳이 해발 1,500m 고산 지대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과거에 고산지역으로 등산을 가서 버너와 코펠로 밥을 지을 때, 밥이 빨리 끓어서 뜸이 제대로 들지 않고, 밥이 설거나 삼층밥이 지어지던 걸 생각했다. 고지대는 기압이 낮아서 물의 비등점도 같이 낮아지므로 물이 빨리 끓어서 쌀이 제대로 익지 않으므로, 평지보다는 물을 더 많이 부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식품전문가나 주방장도 까맣게 잊고 있던 경험인데 생각난 것이다. 가장 짓기 어렵다는 사찰인 우여곡절(迂餘曲折) 보다 어렵게 한 끼의 쌀밥을 지은 것이다.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저녁 식사다. 경계보다 더 중요한 배식을 공평하고 공정하게 해야 한다. 공수해 온 밑반찬과 여기서 만든 반찬으로 모두들 꿀맛처럼 맛있게 먹어주니 감사할 따름이고 보람이 있었다.
<열심히 설거지 임무를 수행하는 송재>
식사를 하면서 참이슬 한잔을 생략할 수 없으니 반주(飯酒)는 필수다. 참이슬 병 하나에 레몬 반 개의 즙을 짜서 넣으면 레몬술이 된다. 마실 때도 소주의 냄새나 맛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전혀 소주 맛 같지 않게 부드럽고, 마시고 난 후의 숙취도 훨씬 적어서 조금 과하게 마셨다고 해도 뒷날 아침이 상쾌하다. 술을 마시지 않는 덕은만 빼고 셋이서 모두들 맛있게 마신다. 우리 사전에는 각 1병이니까 빈술병 버리기가 일이 될 것 같다. 맛있는 식사가 끝나니 남는 일은 설거지다. 송재의 일만 남으니 은근히 미안하기도 하지만, 협소하여 도와줄 수도 없고 담당이 책임지고 끝낼 일이다. 일과가 끝나니 이런저런 담소도 하면서 준비해 온 영화를 시청하기도 하면서 밤이 깊어간다. 밤의 기온이 16도 정도로 떨어지니 이불을 덮고 자야 할 형편이다. 이런 데도 모기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