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말할 수 없는 기억과 기억의 전달자

고통스런 아버지의 기억을 전달하는 아들

by Limi

오늘 저녁에 오랜만에 전 직장 동료를 만났습니다. 이제는 제게 동네 할아버지 같은 가깝고 친근한 존재가 된 알버트 박사님이요. 저의 대학교 근처에 살고 있어 학교 뒷산을 같이 오르기도 하고, 집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는 사이예요. 박사님은 물리학을 전공하시고 새로운 파장대의 빛과 이를 읽는 필터를 만든 연구자입니다. 고령의 나이에도 네덜란드에서 한국으로 넘어와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존경할 점이 참 많은 분이랍니다. 전공과 직무가 전혀 다른데도 저희가 친해질 수 있던 건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기 때문이예요. 바로 저의 큰 연구주제이기도 한 '기억'의 문제에 대해서.


오늘의 만남에는 특별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저의 석사 학위 취득을 축하하며 논문을 간략히 발표하는 시간이기도 했고, 알버트 박사님 또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로 했으니까요. 아버지 이야기의 기원은 저희가 처음 만났던 지난해 1월입니다. 알버트 박사는 제가 회사 생활과 석사를 병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왜 공부를 하게 됐냐고 물었고, 저는 독일과 폴란드 여행, 특히 유태인 수용소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했죠. 사람들의 기억이 말해지고 전승되는 방식, 언어가 아닌 방식으로 전해지는 느낌, 쓰여지는 역사와 기억되어야 하는 역사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자 박사님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어.



그건 바로 박사님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의 아버지 또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수용소에 수감된 적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일군이 네덜란드를 점령했을 당시, 대학에서 유대인 교수를 해임해야한다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대학 재학 중인 아버지는 이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고, 많은 사상자가 난 시위에서 다행히 살아남아 친구와 국경을 건너려는 시도를 하지만 발각되고 말죠. 반역의 죄를 받게 된 그들은 형을 선고받기 전까지 수용소에 수감됩니다. 그림에 소질이 있던 아버지는 독일 장교 방으로 불려가 이따금 초상화를 그리게 되는데, 이때 연필과 종이를 슬쩍해 친구와 함께 수감생활을 기록하게 돼요. 발각되면 즉각 처형될 위험한 일이었는데도 그들은 계속 이어나가죠. 그들이 목숨을 담보로 기록했던 것들이 무엇인지는 공개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기상천외한 것이었다는 사실만은 알아주세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그들은 이 기록 대부분을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러나 박사님은 아버지의 수감 생활을 장성할 때까지 한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노년에 가까워질 때 겨우 알게 되었는데, 그마저도 함께 수감됐던 친구분께 들을 수 있던 기억이지, 아버지 스스로 고백한 기억은 아니라고요. 아버지는 평생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하셨고,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도 꺼려하셨다고 해요. '끔찍한 굶주림'과 '생을 희망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던 것 같다고 박사님은 말하셨어요. 그때의 기억에 대해서만은 침묵으로 일관했던 아버지의 모습으로부터 당신은 언제나 '고통'을 읽어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억의 복잡한 매커니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덧붙이기도 했고요.



저 역시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회상조차 거부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체험한 자가 괴로워하는 기억을 반드시 들어야하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저 또한 괴로워했고요. 그러나 오늘 알버트 박사의 이야기는 다시 한번 '기억하는 자'와 '들어야하는 자'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기억이 말해지지 않는다면 그가 떠난 동시에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하나의 이야기가 시공간의 경계를 너머 보존되는 건 누군가에게 말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역사적 순간들을 공동의 기억으로 내면화할 수 있고, 그를 통해 배우고 행동할 수 있는거죠. 그들이 목숨을 걸고 기록을 남겼던 것도 어쩌면 기억되고 남겨지기 위한 인간의 본능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가치없는 경험이란 없고, 소중하지 않은 사람 또한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더 많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말할 수 있게 돕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믿고요.






이 글의 연관된 내용들은 저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위해> 매거진이나 다른 글을 읽어보시면 더 이해하기 쉬우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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