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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Oct 31. 2020

가을과 함께 온 우울

'계절'처럼 찾아왔고 또 지나가리

 가끔 제 자신을 다그칠 때가 있습니다. 저의 ‘바깥’에 제 전부를 걸고 매달려 있을 때요. 저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 상대들 – 그것들에 제 삶을 저당 잡히곤 합니다. 문제는 제가 자발적으로 그런 종속을 감행한다는 거예요. 물리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무력해지는 그런 상태를 스스로 만들어버리는 못난 습관인거죠. 이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나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겠다, 라는 선언과도 같은 셈인데요. 보통은 이유가 불분명한 옅은 우울과 함께 옵니다. 제 자신에게 좀처럼 너그럽지 못한 저는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미련하고 비겁한 사람으로 몰아세우며 그 우울을 겉잡을 수 없게 심화하곤 했는데, 요즘은 그간의 경험치 덕분에 조금 노련해진 것 같아요. ‘에이, 너 왜 또 그래’하며 너스레를 떨어버렸으니까요. 



 아무래도 가을의 영향일까요. 10월의 하늘은 비 한번 없이 매일이 눈부셨고, 그 청명함에 익어가는 세상의 색상들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다웠으니까요. 낙엽이 낙하하고, 앞서 떨어진 낙엽의 몸에 포개지며 내는 메마른 소리들이 마음에도 어떤 쓸쓸함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을 햇살이 찬란해지는 시간에 빗겨난 아침과 밤마다 스산한 바람을 맞아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구요. 어쨌거나 콕 집어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우울이 요근래 일상의 전경에 놓여있던 것만은 분명해요. 하지만 애써 그 우울을 증폭시켜 저를 비련의 주인공으로 그리지 않았고, 반대로 호들갑 떨며 그 우울에 맞서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우울증을 겪는, 혹은 우울증을 겪는 이들을 돕는 사람들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어요. 우울증이 굉장히 무겁거나 특수한 병처럼 여기는 고정관념 때문에 이들의 상황이 더 힘들어진다고 했는데요. 그중 한분이 우울을 ‘계절’처럼 찾아오는 거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때가 되면 찾아오고 또 사라지는, 자연의 자연스러운 순환. 계절 같은 우울. 그 말이 제게도 큰 위안이 되어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자꾸 발 밑으로 처지는 요즘 제게 속삭여주곤 합니다. ‘가을이 왔고, 꽤 길지만 아름답게 머물고 있어. 그리고 언젠가는 끝날 거야. 겨울이 오는 중이거든.’ 



마음이 답답하거나 몸이 무거워질 때 문을 박차고 나와 곧장 걸을 수 있는 홍제천/불광천/한강이 지척에 있다는 것은 정말 소중한 행복.


 


 아직 도착하지 않은 전언을 기다리다, 기다림에 목맨 제 모습이 측은해 늦은 밤 산책을 나섰습니다. 물안개 낀 천을 따라 걸으며 생각했어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이미 알고 있는데, 어째서 나는 타인을 경유해서 그 말을 듣길 바라고 있을까. 왜 내가 나에게 그 말을 건네지 않고, 또 그 건넨 말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걸까. 코 끝이 찡한 시린 바람을 거슬러 걷다 보니 조금은 우울에서 깨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조금 더, 조금 더. 경쾌하게 발을 내딛으며 마침내 저는 기다리던 말을 제게 해주었습니다. 기다리던 말을 결국 제게 듣게 되었구요. –나는 네가 좋아. 무엇이든 잘 해낼 거야. 그렇게 될 수 있게 응원할게.  



 이제 가을을 보낼 준비가 된, 가을을 보내도 좋은 제가 여러분께 묻습니다. 혹 제 것과 비슷한 쓸쓸함과 무기력이 일상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면, 그 우울이 기다리고 있는 한마디를 여러분은 알고 계신지요. 그 말을 자신에게 건넬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시월의 마지막 밤, 제가 마음을 보탤게요.  



가을의 감성을 가장 잘 담은 김태용 감독의 <만추>. 탕웨이의 분위기는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죠. 직접 부른 '만추' 곡은 제 새벽 산책에 좋은 동행인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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