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894년 여름과 2021년 한국(2)
서양인이 본 1894년 조선과 2021년의 한국
<조선, 1894년 여름>의 저자 헤세 바르텍은 제물포에 7월 초쯤 도착했는데 "우리 배와 동시에 일본부대 수송선이 도착해 항구는 온통 일본 군인으로 붐볐다. 조선 삼판선의 다수는 일본 깃발을 달고 있었다....... 상륙할 때 나는 일본군 대대들의 긴 행렬을 따라 걸었다."주6 고 했다. 이제 막 청일전쟁이 발발해 긴박했던 때였다. 조선의 요청도 없이 일본군이 일방적으로 쳐들어온 것이다. 그는 조선 패망의 서막을 목격했던 것이다. 이 당시 고종 재위 기간 무려 31년 차. 조선 조정은 스스로 국방력을 키워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오직 민비 패거리들의 사리사욕 채우기가 국정보다 우선이었다. 고종은 이를 단호히 척결하지도 못했고 우유부단하기만 했다. 그 오랜 집권 동안 국가경영 차원에서의 어떤 대비책도 국정철학도 비전도 없었다. 나는 당시의 어느 누구보다도 고종 당신에게 그 책임을 묻고 싶다.
저자는 한강을 따라 용산에 도착해서 남대문에 입성하기 전 우리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나팔 신호와 함께 무기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지만, 조선의 농부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점령하고 게다가 왕이 있는 수도를 향해 행군하는 이 오래된 숙적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하긴 왜 그런 걱정을 하겠는가?...... 조선 정부는 마지막 푼돈까지 쥐어짜고, 쌀과 곡물을 마지막 한 톨까지 빼앗아가지 않았는가? 온 가족이 배를 곯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이 있을까?"주7라고 썼다. 그러면서 "관리들은 조선의 몰락과 이곳에 만연한 비참함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다."주8며, "넓은 지구 상에서 조선만큼 백성이 가난하고 불행한 반면 지배층은 거짓되고 범죄적인 곳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주9고 했다. 또 저자는 "현재 조선에서 활보하며 총검과 대포로 수도를 점령하고 있는 일본인들은 이처럼 백성에게 참을 수 없이 되어버린 부실경영이 오직 외세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옳은 말이다."주10고 했다. 파란 눈의 이방인 저자에게도 이러한 국난극복을 위해서는 외세에 의해 극복함이 옳다는데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조정에 대한 민심이반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웅변하고 있다. 고종 등 위정자들의 국정능력 없음이 외국인의 눈에도 그대로 비춰진 것이다.
한양 시내에 입성 후 "도착한 지 한 시간 뒤 나는... 남산에 올라갔다.... 서울의 집들은 단순하고 황량한 황무지나 다름없다. 땅바닥과 거의 구분이 안 되는 납작한 잿빛 오두막의 초가지붕 1만여 개가 마치 공동묘지의 회색 봉분처럼 다닥다닥 늘어서 있다. 도로도 없고 눈에 띄는 건물이나 사원 또는 궁전도... 없다. "주11고 했다. 또 "공공용지는 오직 길바닥뿐이며, 온갖 오물과 쓰레기 그리고 담장에서 떨어진 조각들은 문 앞에 버려진다. 일고여덟 살이 되도록 발가벗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은 길에서도 행인들을 향해 용변을 보는 일이 흔하다. 사람들은 모든 집안일을 길거리에서 처리한다. 밤이 되면 집 앞의 땅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잔다."주12고 묘사했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서울 모습과 한여름 우리 선조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바로 알 수 있는 과거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고종이 있는 경복궁을 보고는 "이 작고 눈에 안 띄는 건물들이 500년 동안 조선을 지배해 왔으며 이 넓은 세계에서 아직까지도 오로지 천자, 즉 베이징에 있는 중국의 황제가 정하는 의전에 둘러싸여 있는 오래된 이씨 왕조의 궁궐인 것이다!...또한 그곳은 끝없는 음모의 무대이자 조선을 예전의 강대함에서 끌어내려 더러움과 가난 그리고 비참함에 빠뜨린 여인과 환관들이 판치는 무대다!"주13라고 썼다. 오직 중국만을 바라볼 뿐 세계정세에 너무나 무지했던 조정을 질타하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나라를 망국으로 이끌고 있는 민비일행의 만행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아, 1894년! 정초부터 터지기 시작한 동학농민운동! 셀 수 없이 억눌리고 착취만 당하던 인고의 세월이 얼마였던가? 민초들의 울분은 용수철처럼 분출되었다. 여행가이자 작가인 저자의 눈에도 국가경영의 부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세에 의함이 옳다고 비춰진 나라! 부끄럽기 한이 없는 과거의 우리들의 이 자화상을 어쩌랴?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은 어디 나뿐이겠는가?
지금은 2021년. 이제야 비로소 그 부끄러움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다. 하늘에 감사하고 우리 스스로에게 감사를 드린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지나자 반쪽이 된 나라에서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고도, 불과 60여 년 만에 지금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 지금 그 중심에 바로 우리 세대가 서있다. 70세를 전후한 우리 같은 연령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전 과정을 온몸으로 겪어온 세대다.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1960년대 당시 초등학생들은 점심시간에 미국이 원조해준 옥수수 죽으로 끼니를 때웠다. 이후 우리 국민은 60년대의 새마을 운동, 70년대의 수출 100억 달러 달성, 80년대의 민주화운동 완성, 2000년 전후의 IMF를 극복하며 살아왔다. 이제 우리는 2020년 코로나19 가운데서도 세계 수출 7위주14 및 OECD 기준 GDP 9위주15를 달성한 나라에 살고 있다. 국민이 선거로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고, 폐할 수도 있는 나라가 되었다. 2021년의 한국은 1894년의 조선이 아니다. 이제 우리에게 1894년과 같은 시행착오란 있을 수 없다.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위정자들은 국민 위에 군림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다. 언제나 정직하고 국민을 섬기는 자세라야 그 직을 유지할 수 있다. 이제 우리 국민은 그들에게 고종이나 민비 패거리 때처럼 잠깐의 무능할 틈새도 허용하지 않는다. 배는 물이 있어야 뜰 수 있다. 그 물은 바로 우리 국민이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인 것이다.
아, 1894년부터 지금 2021년까지 그 127년간의 긴 세월! 참담했던 그 암흑의 시대에도 저자 헤세 바르텍은 우리한테서 한 가닥 희망을 보았는지 이렇게 썼다. "하지만 조선인들의 내면에는 훌륭한 본성이 있어서 진정성이 있고 현명한 정부가 주도하는 변화된 상황에서라면, 이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깜짝 놀랄만한 것을 이루어 낼 것이다"주16고 했다. 저자의 예견대로 우리는 해냈다. 코로나 19가 온 세상을 괴롭히고 있는 요즘이긴 해도 이제 우리는 조금은 자랑스러운 나라에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러나 자긍심은 갖되 자만은 버려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낮은 자세로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한다. 고종과 민비일당들의 과거 적폐가 현재 우리의 훌륭한 반면교사 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온갖 부조리와 진흙탕의 세상에서도 섬세하고 예리한 관찰력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품어주었다. 저자에게 진심 어린 존경과 감사를 드리면서 이 글을 바친다.
주6. 조선, 1894년 여름. 헤세-바르텍 저 P. 49
주7. 조선, 1894년 여름. 헤세-바르텍 저 P. 75~76
주8 조선, 1894년 여름. 헤세-바르텍 저 P.88
주9. 조선, 1894년 여름. 헤세-바르텍 저 P. 109
주10. 조선, 1894년 여름. 헤세-바르텍 저 P.153
주11. 조선, 1894년 여름. 헤세-바르텍 저 P.77
주12. 조선, 1894년 여름. 헤세-바르텍 저 P.84~85
주13. 조선, 1894년 여름. 헤세-바르텍 저 P.81
주14. 연합뉴스.. 한국, 작년수출 5.5% 줄었지만 7위 수출대국 지켰다. (2021.2.28)
주15 연합뉴스. 한국경제, 코로나 국면서 세계 10위 탈환..첫9위도 가능?(2021.3.15)
주16. 조선, 1894년 여름. 헤세-바르텍 저 P.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