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한주소회 11화

수처작주 입처개진

당신이 자주 되뇌길 바라는 여덟 글자

by 염미희


직장을 다니면서 내 계급과 어울리지 않는 자리로 간 적이 있다. 사람들은 물었다. 왜 그 자리를 갔는지.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하면 너무 내쳐진 느낌이고 사실 제가 원해서 왔는데요 하면 쉬러 갔나 보네? 할 것 같아서 걱정했다. 사실 내가 원해서 갔다.


1년에 야근만 700시간, 800시간을 하던 삶에서 그 자리로 가겠다고 손을 든 것은 사실 더 큰 일을 도모하고 싶어서였다. 더 큰 일은 다음 매거진에서 쓸 내용이라 여기서는 '더 큰 일'이라고만 적어놓으려고 한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서 일을 하는데 신기할 정도로 일이 없었다. 다른 부서원의 업무도 함께 봐주고 도와주고 하급자가 전화로 굽신거리고 있으면 전화로 대신 뭐라고 쏘아붙이고 나가서 제초를 해도, 제설을 해도 일이 여유로웠다. 1주일을 근무하고 조바심이 났다. 뭐라도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일을 끌어모아 30분 야근을 했다. 할 일이 많이 없는 것이다. 사실 조바심이 난다고 했다. 야근을 안 하고 퇴근을 하면 뭔가 뒤처질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마음이 들었을까?


그 자리로 가기 전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던 시기가 있었다. 매일 코로나 확진자의, 관찰자의 동선을 파악하고 보고를 하는 일들. 엑셀표를 달달 외우고 보고를 해야 했다. 확진자와 관찰자들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들어가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네 월급 여기에 갖다 놔. 니 월급 여기에 가져다 놓으면 내가 니 일 다 해줄 테니까 니 월급 다 뽑아서 가지고 와. 그렇게 해서 일이 줄 수 있다면 차라리 월급을 다 뽑아서 헌납하고 나는 좀 쉬고 싶었다.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어? 그게 반년이 넘게 지속이 되니 차라리 돈을 받지 말고 낼까? 하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었다. 새벽 6시 반 출근, 새벽 1시 퇴근이 일상이었다. 살을 7kg이 찌고 숨을 쉴 때마다 답답했다. 죽나? 쓰러지나? 쓰러지면 차라리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힘들어서 여섯 시 반에 출근을 못 하고, 일곱 시쯤에 출근했을 때 나는 다른 부대 사람들은 더 일찍 출근하는데 도태된다는 말을 들었다. 조바심이 났다. 이렇게 몸이 못 견딜 정도로 힘든데 나는 아직 멀었다는 이야기와 더 일찍, 더 늦게 가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주말에도 출근을 했다. 그러다 몸이 결국 못 견디고 아침 일찍 출근을 하여 초과근무를 찍지 않고 보고자료만 넣어드린 뒤 30분 동안 사무실에서 엎드려 누워 잠을 잤다. 전화가 왔다. 너 뭐 하냐? 다른 자료 좀 살펴보다가 쉬고 있었습니다. 니가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하고 들리는 통화종료음. 그렇게 1년을 지내고 나니까 조기출근을 안 하면, 초과근무를 안 하면 인생이 잘못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그다음 해에도 사무실 사람들의 일을 다 끌어안아 일을 했다. 자료를 다 만들어주고 저에게 그냥 올려주세요, 주말에도 나가서 일을 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일을 벌이는 사람이라고 했다. 결국에는 그게 잘 해결되어 몇 십 년 동안 풀지 못했던 문제의 해결책이 되었다. 일을 벌이긴 했어도 결국 앓던 이는 뺐잖아요?라고 말을 했다. 그 일을 할 때 돕지도 않던 사람들이 말을 한마디, 한마디 얹을 때마다 우습긴 했다. 뭘 안다고?


그러다 다시 전속을 갔다. 내가 원해서 갔던 자리다. 원해서 갔지만 큰 일들이 없어서 조바심이 자꾸 났다. 주변 사람들에게 밀릴 것 같다. 큰일 났다. 여기서 뭐든 할 수 없을 거 같아, 엄마. 엄마 나 여기 원해서 오긴 했는데 진짜 뭐가 없어서 조바심이 나 도태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아. 사람들도 좀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왜 굳이 지금 저 타이밍에 저 자리에 앉아 있는 거지? 쉬고 싶은 건가? 후배들이 가야 어울리는 자리 아니야? 와 같은.


조직에는 상대적으로 편한 자리가 있다. 편한 자리에서 나는 어떤 업무 하나를 수정했고 덕분에 다른 사람들의 업무 부담이 적어졌다는 평가를 받아 우수근무자로 선정이 되었다. 저계급자에게 시키지 않겠다던 훈련을 내가 넘겨받았고, 당시에 좋은 평가를 받아 유공자로 선정되어 상을 받았다. 그 이후에 있던 감사에서도 본업을 잘했다는 이유로 또 유공자로 선정이 되었다. 가장 조바심을 냈던 자리에서 정말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래서 나는 그 해를 잊을 수가 없다. 좋은 선배 밑에서 근무할 수 있었던 순간과, 여러 번 이름이 오르고 내려가다 결국 내 이름이 걸리던 순간들이.


그러다 일하는 여성 100인의 사진전 공모전을 발견하게 되어, 병사가 찍어주었던 사진들을 출품했다. 그때도 입상하게 되어 광화문에 사진이 걸려있었다.

자랑하고 싶어서 글을 쓴 건가? 생각할 수 있다. 다르게 생각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글을 적었다. 조출과 야근으로 일 년을 보내던 시간 속에서 얻은 것은 분명히 있었다. 사실 많이 배웠다. 많이 배우고 싶었던 자리에서 많이 배우고 싶다고 당돌하게 말했던 그때부터 많이 배웠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다만 방식의 문제로 내가 몸과 마음이 지쳐 자주 죽고 싶은 생각을 했다는 것 하나 빼고는 괜찮았던 것 같다. (그게 제일 큰 건인데..?) 그러다 몇 년이 지나고 여유로운 자리에서 좋은 결과를 받던 순간들을 겪고 나니 왜 그렇게 힘들게 했었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주목받는 자리에 갔든, 주목을 받기 어려운 자리에서 묵묵히 내 할 일을 해야 하는 순간들을 마주하던 그냥 묵묵히 해내기만 하면 된다. 왜 나는 늘 이런 자리를 주는 건데?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냥 내게 주어진 일만 하면 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높아지는 계급과 책임감을 휘두르지 말고,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도울 줄 알아야 한다. 몸과 마음이 다치면서까지 내 삶을 올인할 필요까진 없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군생활을 하며 자주 되뇌는 말이다.

어느 자리에서든 열심히 하면 된다.

조직에서도 그 밖에서도 주관을 잃지 않고자 한다.

처음 가졌던 조바심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 한 해를 보내고, 그 자리에 일 년 더 있으면서 더 잊지 못한 한 해를 만들었다.


과거 어떤 선배는 어떤 자리에 가지 못하면 도태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 말들이 나를 되게 조바심을 갖게 만들었는데 그때 내가 뚜렷한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다면 선배가 헛소리를 한다고 단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어린 후배의 자존감을 송두리째 흔드는, 남이 꽂아주는 자리에 내 인생을 다 바치게 만드는 그런 문장들. 나는 후배들에게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인생을 조금 더 산 선배가 진지하게 하는 말을 가끔 인생의 전부가 되기도 하니까. 지금 그런 말을 들으면 그런 자리를 가는 것이 인생에 전부인 사람인가 보다, 하며 측은지심이 생길 것 같다. 나는 내가 앉은 그 자리에서 최선만 다 하면 된다. 최선을 다하다가 좋은 기회가 오면 감사히 받고 그런 기회가 없다면 내 스스로 다른 기회들을 만들면 된다. 지금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지도 않으면서 원망만 하고 지내면, 그때 도태가 된다. 그런 말에 흔들려 마음이 낡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 인생에 운전대는 당신이 잡아야 한다. 제삼자들이 골라준 삶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원하는 삶을 다시 찾아내면 된다. 그게 조직에서 어렵다면 하루가 끝나는 지금 이 순간부터, 주말부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내서 내 새로운 모습들을 찾아내면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인생의 운전대를 쥐게 하지 않길 바란다.

우리 인생의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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