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후배의 자존감을 올려줘라!
누가 나에게 에세이집을 선물해 줬다. 양산형 에세이집이었다. 대개 이러한 문장들이 책의 주를 이루었다. 직장이 힘들게 하나요? 그런 못된 직장은 당장 그만두세요. 사람이 힘들게 하나요? 그런 못된 사람과는 연락을 하지 마세요! 나는 물었다. 아니 근데 이게 어떻게 직장인들한테 위로가 되는 건데. 당장 내가 돈을 벌어야 뭘 해 먹고 살 거 아니냐. 근데 어떻게 직장이 힘들게 하나요? 그만두세요. 그런 이상한 곳에서 내가 떠나면 됩니다, 이게 어떻게 위로가 돼? 이 사람 직장생활 안 해본 거 아니야? 아니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직장을 왜 그만 못 두는데? 직장 힘드세요? 그만두세요 이게 맞는 위로 맞아? 친구나 연인 사이에서도 이렇게 위로하면 욕먹는 거 아냐? 하면서 언쟁을 했다. 내가 그 책을 보면서 어떤 위로를 받아야 하는 건데? 나는 위로가 안 된다니까! 하면서. 이게 정말 위로가 되는지 물었던 때가 있었다.
적절한 위로의 필요성을 느낄 때가 있다. 가끔 힘들게 퇴근을 하다가 초과근무를 찍으러 나오는 순간 비타오백을 쥐어주던 병사애. 과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면서 음료 하나를 쥐어줬을 뿐인데 그때 눈물이 났다. 맞네 나 고생했다 진짜. 하면서. 가끔은 눈 쌓인 차에 그림을 그려놓기도, 얼굴이 어두워 보이면 오늘은 WAR요일이지만 힘내십시오!라는 글귀들. 가끔 사람들이 써서 주던 편지들과 중요한 일들을 끝내고 난 이후에 사람들이 주던 카톡들. 행사 내내 따라다니다가 내 중요성을 설명하는 카톡을 줄줄줄 적어서 보낸 막내. 퇴근하고 함께 걷던 시간들과 가끔 커피가 필요한 순간 닫힌 문을 열어주며 커피를 넣어주던 사람들. 미희야 네가 이 샌드위치를 좋아해서 두고가! 하고서 차 위에 얹어놓고 갔던 언니의 이야기들. 선배에게 힘이 못 되어준 거 같아서 미안했어요 하며 엉엉 울던 후배. 친절한 나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무례한 사람에게 대처하는 방법을 적어놓은 책을 선물해 준 선배. 꾸중 듣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카톡으로 '문쪽을 봐!' 하고 네가 좋아하는 쿠키집을 갔는데 너 주려고 사 왔다던 선배. 개 털린 날 선배 떡볶이 먹으러 가요, 하니 떡볶이 말고도 뭐든 사주겠다며 야 빨리 나가자! 해주던 선배. 이만하면 진짜 군생활 잘했다 멋지다 말해주던 동기. 어떤 순간들의 이야기를 공유할 때 함께 울어주던 사람들. 선배들. 함께 기타 치러 나가 주는 선배. 점심 먹을 때 열받는 얘기 하면 맞장구쳐주면서 같이 뭐라 해주는 선배들까지.
함께 근무했던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바로 필승! 이 나온다. 오 내 번호 있나 보네? 감동이다. 야 잘 지내? 요즘 분위기가 보통 아니라던데? 후배는 이런저런 게 힘들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 그 후배에게 그런 말을 해줬다. 상사가 정말 감정쓰레기통 다루듯 나에게 화를 내면 먼저 의심을 해보자. 저 사람이 말 그대로 나에게 화를 내고 싶은 걸까? 분풀이 상대가 필요한 걸까? 화를 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굳이 화를 내는 경우들이 있다. 대부분 기를 죽이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 없는 분풀이는 너는 이 위치고, 나는 이 위치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인 걸까? 매번 혼이 나면 업무가 두려워진다. 내가 두드리는 저 방의 문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을지 손이 떨린다. 결재판으로 머리를 맞을지, 업무를 이딴 식으로 하냐며 가만히 서서 그 사람의 뒷모습을 3시간 내내 보고 있어야 한다든지. 보지도 않은 문서를 세절해 버린다든지. 결재를 올린 문서들이 점하나 찍힌 채로 재검토가 되어있다든지. 문을 나설 때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지만 그대로 여자화장실로 갔다. 휴지로 닦거나 소매로 닦으면 눈가가 빨개지기 때문에 눈물만 뚝뚝 떨어트리고 나온다. 울었냐? 울었다고 티 내냐? 듣기 싫은 말이었기 때문에. 그때마다 사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물어보고 싶은 때가 있었다. 어떤 때에는 답변을 듣지 못하기도,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순간들을 마주해야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의 잘못을 찾았었는데 원인이 되게 웃겼다. 내가 전날 술자리를 거절했다든지, 술을 마셨는데 나와서 나를 좀 숙소에 데려다 달라는 이야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라든지. 나는 그때를 기점으로 나에게서 원인을 찾지 않기로 했다. 아마 살기 위해서 그런 선택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후배에게 그런 말을 해줬다. 저 사람이 이유 없이 나에게 짜증을 내면 내가 멍청한가?라는 생각보다는 저 사람이 갱년기인가?라는 생각을 먼저 해봐라, 그럼 그냥 그 순간이 아주 무섭거나 두렵진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계속 이유 없이 화를 내면 왜 저렇게 화를 내지 진짜 갱년기 맞는 거 아니야? 생각을 해보라고 했다. 그럼에도 화를 낸다면 집에 가서 거울을 보라고 했다. 나는 이렇게 잘나고 멋있는데 왜 못난 사람들이 나를 깎아내려고 하지? 아무리 짖어봐라. 나는 간다. 이 마인드가 필요한 때이다. 개가 짖는 곳마다 고개를 돌리면 우리는 원하는 곳에 가지 못 한다. 내가 주인공인 삶을 살기 위해서라면 잡음쯤은 작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동료들이, 어떤 선배들이 나의 모든 순간들을 비꼬고 욕을 한다면, 그게 명확하게 내 잘못이 아님에도 이 사람의 감정을 쏟아내기 위해 화를 내고 있는 게 느껴지면 이 사람 나에게 열등감이 있나 보다,라고 생각을 하라고 했다. 생각했어? 거울을 보면서 너무 멋진 내가 참아야겠다. 그 사람이 화를 낼만하네, 하고 넘어가라고 했다. 그러다가 예전에 들었던 그 조언을 해줬다. 일을 하나 끝내면 머리 정수리를 두드려 주라고. 그 말을 들은 후배가 수화기 너머로 피식 웃었다. 정수리요? 응 정수리. 나 진짜 잘했다. 수고했다, 하면서 정수리를 몇 번 쳐줘. 근데 이게 들을 때는 진짜 피식하고 웃기긴 하거든? 근데 진짜 힘든 날 일을 끝냈을 때는 그게 가끔 진짜 힘이 난다니까?
30분 간의 통화를 끝냈다. 위로가 되었을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며 분풀이를 하는 상사를 보고 갱년기라고 생각할지 스스로 동굴을 파고 들어가며 회의 먹을지는 이제 그 아이의 몫이다. 또한 일을 끝낼 때마다 정수리를 칠지 자책을 할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남들이 다 네가 하는 일은 요만한 거고 너는 별 일 하지 않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하더라도 내가 이미 했으면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지냈으면 좋겠다.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한 선택권은 이제 후배에게 있다.(원래 있었지만 조금 더 있어 보이려고 선택권을 준 척함^^..) 나는 그 친구가 스스로 매듭도 지을 줄 알고, 누군가가 감정을 쏟아부을 때 이건 선을 좀 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을 하나 끝냈을 때 나 정말 고생 많았군! 하고 퇴근하기 전에, 아니면 자기 전이라도 정수리를 두어 번 툭툭 두드려줄 줄 아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너나 나나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