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한주소회 18화

이정표

닮고 싶은 사람

by 염미희

나는 늘 좋은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함께 근무를 했을 때 좋아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비슷하게나마 닮고 싶었다.

완벽하지 못할 거라면 좋은 사람들의 모습을 따라가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늘 좋아하는 선배 만들기에 되게 연연했었다.

그러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았을 때,

좋아하는 마음 자체를 멍청하게 생각하거나 상대하기 만만한 사람처럼 대하는 선배들을 보았을 때.

나는 가끔 회의감이 들곤 했다.

되게 좋아했던 선배가 있었다. 힘든 순간을 떠올리면 아마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

어느 순간부터 나를 대하는 말투가 변했다. 사람들 앞에서 꺼지라는 둥, 멍청하다는 둥 장난식으로 말했는데

나는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것에 대해서 친하니까, 친하다는 의미로 그냥 과격하게 말씀하시는 거겠지 라며 깊게 생각을 안 했다.

어느 날 나를 아껴주던 다른 후배가 물었다. 저 사람은 왜 맨날 선배를 무시해요?라고.

한걸음을 물러서 보니 내가 그를 잘 따르고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는 나를 함부로 대하고 있었다.

내가 돕고 싶어서 돕는 순간에는 필요 없으니까 꺼지라고 말을 했고

나였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순간에는 네가 뭘 하든 보고 있으니 눈치를 챙기라는 둥.

나는 좋아하는 후배들에게 그렇게 대할 수 있었나.

여러 번 스스로에게 물어도 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내가 죄송합니다라든지 오해를 풀고 싶다고 말을 했으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손을 내밀기 싫었다.

죄송하지 않은 순간들에도 죄송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늘 눈치를 보길 바라는 사람들.

내가 바라는 좋은 선배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언제나 니보다 높은 곳에 있고 내 눈치 좀 봐. 네가 뭘 하든 내가 지켜볼 거야. 너 말 잘 안 들으면 내가 니 앞길에 고춧가루 뿌릴 거야, 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

나이가 들고 연차가 쌓일수록 좋은 마음을 쏟을 사람들이 한정된다.

어떤 실망감은 조직에 대한 회의까지 이어진다.

며칠 전 불편한 식사자리가 있었다.

어디 자리에 너를 꽂아주고 싶다는 둥, 너는 야망이 없냐는 둥, 바라는 부서가 있냐는 둥.

나는 어디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이런저런 야망이 있어 글을 적는다고 했다. 바라는 부서는 없다고 했다.

가라고 하면 가는 거고 오라고 하면 오는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했더니 너는 참 애가 싹수없다고 말을 했다.

어떤 면이 싹수없으셨나요? 물으니 선배가 꽂아준다는데 바라는 곳이 없다고 말을 하냐면서.

나는 청탁 비슷한 전화도 싫고 술자리에서 불필요하게 인맥자랑을 하면서 누구 아냐면서 내가 전화해 줄까 하는 모습들을 싫어한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술의 힘을 통해서 그냥 안부를 묻고 싶을 때도 있는데

굳이 그런 자리에서 어디 부서장에게 전화를 걸겠다는 그런 행동들 자체가 너무 불필요하고 싫어서 바라는 게 없다고 하니 바로 정색을 한다.

그러다가 불필요한 이야기들이 더 많아졌다.

퇴근하고 무얼 하니 묻길래 글도 쓰고 운동도 한다니까 참 너도 재미없게 산다. 연애도 안 하지 너는? 이게 돌아오는 이야기.

저녁을 먹자고 4개월을 말해서 나갔는데, 되게 오랜만에 나간 자리였는데 후회를 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2주 뒤 작년에 함께 일했던 분들과 식사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되게 뵙고 싶었던 분인데 시간이 뒤로 뒤로 밀리다 보니 결국 봄이 끝나가는 무렵 자리가 마련됐다.

그 자리를 주관해 주셨던 분께서 따님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다.

본인도 다른 언어를 공부하고 있다면서.

근데 그 말을 듣는데 저도 지금 유튜브도 하고, 글도 적고, 블로그도 합니다. 이야기를 했다.

근데 그분이 두 엄지를 올렸다. 너 되게 멋있다! 하면서. 옆에 있던 선배도 미희야 너 대단하다,라고 말을 했다.

나는 네가 그런 거 하는 줄 몰랐다면서 너를 응원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근데 그 말을 계속 생각하고 곱씹는데 뭔가 되게 감동적이었다. 그 자리에서 눈물이 났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늘 고민했다.

그 선배를 좇으며 살아야지, 근데 닮고 싶은 선배도 전역을 한단다.

그럼 나는 누구를 따라갈까? 생각을 하다가 닿은 결론은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 되면 되지 않을까. 였다.

며칠 전 H와 전화를 하다가 그 친구가 군생활 하는 내내 닮고 싶었던 사람이 나였다고.

그래도 잘 사신 거 같아요. 저처럼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라는 말을 듣는데 코끝이 찡해졌다.

존경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진짜 마음속에서 나 저 사람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솔직하게 고백할 거다.

선배 진짜 닮고 싶은데요 라면서.

근데 나도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떳떳하고 한점 부끄럼 없이 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이정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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