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디지털교과서 굳이 지금 왜?
“고대 중국인에 의해 종이가 발명된 이래 이미 4,000여 년이나 지났지만, 인류는 문자를 적는 데에 있어 그 이상의 것을 발명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은하영웅전설 1권 중-
요즘 들어 교육과정 또는 소프트웨어·인공지능 교육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들과 인공지능디지털교과서(AI Digital Textbook, 이하 AIDT)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부분의 바라보는 시선은 다음의 몇 단어로 요약된다. “굳이, 지금, 왜, 이렇게?”
시간을 거슬러 되짚어 보자면, 2022년 11월 이주호 신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취임사에서 디지털 대전환을 이야기하고 2023년 1월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 문화 정책 방향 보고 자리에서 이에 따른 교사의 역할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기존 디지털 교과서에 이은 인공지능 기반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정책이 수면으로 떠오른 지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이 되었다.
지금 시점에서 현장에서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을 정리해 보았다.
시선 하나
많은 홍보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의 상당수는 AIDT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처음 들어 보는 예도 있다. 단순히 용어의 문제가 아니다. 교과서에 인공지능을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발간한 개발 가이드라인 외에 세부 개발 과정과 내용은 모두 비밀로 취급하고 있어 극히 일부의 관계자밖에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교과서는 교육을 위해 사용되는 저작물을 뜻하며 교육과정의 성취기준 달성을 위해 활용하는 자료로서 지역, 학교, 학생의 특성에 따라 자유롭게 재구성하고 적용할 필요가 있다. 특히 AIDT가 특히 코스웨어 중심으로 개발되는 경우 현장에서 요구되는 다양성과 유연성을 확보하고 자유롭게 재구성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또 기존 사교육 시장의 코스웨어와는 무엇이 다른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AIDT의 개발과 홍보를 위해 2023년에는 디지털 교육혁신을 명목으로 특별교부금 5,333억원을 교육부에 배정하였었고 올해는 AIDT 교원 연수 예산으로 3,800억원을 책정하면서 앞으로 3년간 1조원 규모의 연수를 진행할 예정이다.
현장에서 다수의 구성원이 모르고 아직 검증되지 않은 사업에 굳이 이렇게 엄청난 국가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급하게 연수를 진행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문제는 급하게 투입되는 엄청난 예산이기에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소위 ‘눈 먼 돈’이 되어 이중 삼중으로 중복지출 되면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소모적으로 끝나버리지 않겠냐는 우려가 크다.
조금 더 부연하자면 디지털 교육 매체(또는 플랫폼)의 교육적 효용성에 대한 논의는 꾸준하게 제기되어 왔기 때문에 새삼스레 그 자체의 문제점을 제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교육 현장을 대상으로 한 의견 수렴 없이 정책이 세워지고 결과물이 수직 하달되는 문제점에 대해 우려와 걱정이 가득한 것이다. 너무 급하게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하게 진행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시선 둘
많은 교사들은 모든 것이 디지털 기반인 교육 환경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지에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종이책은 아날로그 기반이며 당연하게도 유지 보수의 필요성이 없다. 그러나 AIDT는 특성상 전자기기를 사용해야 하며 당연히 이를 위한 기반 시설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유지 보수도 필수적이다. 물론 지금 현장에서 에듀파인과 NEIS를 중심으로 한 업무는 물론이고 전자기기를 활용한 수업 또한 이뤄지고 있지만 교사가 스스로 개인의 업무용 기기를 유지 보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AIDT가 도입되는 순간 교사가 감당해야 할 기기는 학생 수만큼 늘어나게 된다. 미쳐 충전이 되지 않거나 오랜 시간 사용으로 방전된 경우 바로 사용할 수 없어 학생에게까지 전기 콘센트가 제공되어야 한다. 기기의 업데이트가 시작되면 완료될 때까지 사용하지 못한다. 연필과 달리 전용 펜을 잃어버리게 되면 곤란하게 될 수 있으며 펜촉이 닳을 때마다 교체해 주어야 한다. 보호커버 필름은 1~2년 사용하면 교체가 필요하다. 사용이 잦을수록 고장이 날 가능성이 높으며 수리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그리고 기기의 특성상 3~5년이 지나면 급격히 성능이 떨어지며 교체가 필요한 시기가 다가온다. 교내에 유지보수업체가 상주하지 않는 이상 이 모든 상황을 일단 교사가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기기의 분실은 종이책의 분실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 보급 되어있는 디지털 기기가 교과서 규격에 적합한지에 대한 논의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교과서는 다양하게 제작이 가능하나 일반적으로 4×6배판을 기준으로 한 페이지가 대략 A4 크기와 비슷하므로 교과서를 펼쳤을 때 A3 규격 정도의 공간에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 보급 되어있는 단말기의 화면은 교과서 한 페이지 크기에도 미치지 못한다. 작은 화면 탓에 핀치 줌으로 수시로 확대 축소를 반복해야 하며 제한된 화면으로 한눈에 교과의 흐름이 보일 리 없다. 페이지를 오가는 속도는 로딩이 이뤄져야하기 때문에 느리다. 그리고 전자기기의 특성상 화면이 너무 밝으며 눈에 강한 자극을 수시로 준다. 전자책을 사용하는 동안 눈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 전자잉크가 적용된 단말기가 전자책 시장에 널리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보급된 단말기는 장시간 사용하는 교과서로 사용하기에 부적합하다.
심지어 학교에 통신 장애가 발생하게 되면 교과서를 사용하지 못한다. 무선망이 없는 장소에서 교과서를 활용하지 못하므로 교과 활동은 교실 또는 무선망이 있는 범위 내로 좁혀질 수밖에 없다. 교과서를 들고 야외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직접 무선망을 준비하거나 교과서 외에 별도로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이는 예측할 수 있는 가상의 상황이 아니라 현재 교육현장에서 1인 1디지털 기기(태블릿)을 활용하면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의 일이다. 교육부에서 주장하는 AIDT의 장점이 현실에 적용이 가능할 때 의미가 있지 현재 환경에서 장점으로 발휘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AIDT가 적용되면서 일어날 상황을 바로 이렇게 예측할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진행하는지 현장에서는 의아해하고 있다.
시선 셋
AIDT에서 인공지능은 무엇인가? 인공지능기술은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대부분의 산업을 비롯하여 일상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마존의 KIVA 시스템은 이미 2012년부터 도입되었다. 다만 ChatGPT의 개발을 기점으로 근래 대중적 인식이 높아진 것이지 데이터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이 사용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AIDT에서도 당연하게 교사와 학생의 데이터를 다루기 위해 인공지능이 사용된다. 문제는 우리가 AIDT를 사용하면서 생산되는 정보 중 어떤 정보를 어떻게 사용할지를 아직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인공지능 윤리와 관련하여 대원칙이 있고 기업의 윤리 기준이 있지만, 이를 믿고 AIDT를 사용하기 위해 자신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모든 구성원이 동의해야 한다는 법도, 그래야만 하는 이유도 없다. 구성원 중 누군가 동의하지 않으면 AIDT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안내 또한 없다. 학교에서 AIDT를 통해 이뤄지는 모든 과정이 실시간으로 보호자는 물론 외부의 제3자에게 공개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한 설명은 고사하고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지는지에 대한 안내 또한 없다.
이러한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 AIDT를 도입하기 전에 충분하게 논의하고 동의를 구해야 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AIDT에 대한 장점과 도입의 정당성 외에는 안내받은 내용이 없는 것이다.
종합하자면,
교육과정 및 정보 교육에 해박한 교사들 사이에서도 AIDT의 지속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극단적인 의견으로 AIDT는 활성화되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도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하더라도 물리적인 환경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계가 너무 명확히 보인다는 이유에서이다.
정보 교육에 관심이 많은 교사로서 AIDT를 활용하는 장밋빛 미래보다는 이에 따라 일어날 인공지능교육에 대한 오해와 부작용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인공지능교육이 후퇴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느낀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으나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교육은 정책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주체가 함께 하는 것이다. 현장의 의견과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정책이 불협화음 없이 매끄럽게 진행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
이 또한 흘러가리라
이러한 반응이 나오는 이유를 현장 교사의 관점에서 종합하면 ‘일단 진행, 문제점은 차차 수정.’이라는 조급함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 본다.
글쓴이: 강성욱 선생님
매거진 여름호 목차
여는 글_모두가 특별한 교육, 여름
1. 시론
2. 특집: 디지털 교과서, 굳이 지금 왜?
3. 학교 이야기
4. 책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