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을 이유.
언젠가부터 알 수 없는 어깨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밤에 잠을 깨는 적이 많아졌다.
병원에서는 통증의 원인이 어깨 관절 사이에 유착성 관절염, 쉽게 말해 오십견이 왔다고 했다.
원인이 뭘까? 병원에서도 원인은 다양할 수 있으니 딱히 뭐라고 단정 짓지는 못했다.
이대로 두면 1,2년 안에 저절로 낫기도 하지만 그동안 고통도 심하고 무엇보다 수면의 질이 떨어질 테니
약도 먹고 꾸준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물론 심각한 병도 아니고 더군다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좋은 진다고 하니 그 간의 고통과 불편만
조금 버텨내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나이 50이 되었다고 어찌 이렇게도 나이와 딱 어울리는 증상이 나타났는지 참 허탈하기도 했다.
헌데, 정말, 왜 이런 증상이 나에게 나타난 걸까?
최근에 점점 더 심해진 안 질환이나 다리 저림과 이번에 어깨 통증까지,
생각해 보니 원인은 너무나 명확했다. ,,,,,스트레스,,,,,.
그래, 당연히 스트레스겠지, 모두 다 그 스트레스 때문인 건 분명했다.
하지만,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 오면서, 더 힘들고 더 스트레스받고 일했던 적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지금 이 시기에? 의문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그 차이는 명확했다.
그때는 내가 참고 견디어야 할 이유가 있었고 지금은 그런 이유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몸도 나에게 그렇게 답하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듯 느껴졌다.
하지만, 왜? 정말 지금은 나에게 이런 고통과 스트레스도 참고 견뎌야 할 이유가 정말 없는 걸까?
난 여전히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차고 넘친다.
내년이면 큰 아이는 대학에 가고 둘째는 고등학교에 가게 된다.
앞으로 최소 10년은 더 일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인 지금,
내가 이런 상황을 참고 견뎌야 할 이유가 정말 없는 걸까?
하지만 무엇보다 쉽게 그 결론을 내리게 된 건, 이제는 내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
어느 날 살다 보니 정말, 50이라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그 생각이 내가 참고 견뎌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했다.
갱년기, 50대에 시작되는 두 번째 인생의 방황기에 찾아온다는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호르몬의 변화나
노화의 시작으로부터 오는 우울증, 그 이상이 나에게 있는 건 명확했다.
남아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사랑하는 부모님과의 이별의 시간도,
커 가는 아이 들과의 함께 할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는,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살아갈 날이 20년이 될지 30년이 될지
아님 당장 4, 5년이 될지도 모르는 그렇다는 감정과 생각들, 그게 가장 큰 마음이었다.
어차피 인생은 확률로 정의된다고 하지 않는가?
성공할 확률, 살아남을 확률, 부자가 될 확률, 더 행복해질 확률,
높은 확률 편에 서기 위해 노력하고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 하는데,
지금 내 앞에 놓인 무엇보다 확실한 확률 하나는 지금 까지 살아온 날보다는 살아갈 날 적을 거라는 사실이다.
50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는 마치 동전의 앞 또는 뒷면으로 넘어가는 변곡점 같다.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경계가 너무 명확해서 이제는 더 이상 앞면으로 또는 뒷면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더 지체하다가는 정상을 밟아 보기도 전에 해가 지고 나는 산에 남아 영영 그곳에 잠들 수 있다는, 불안감.
정상에 오르기보단 안전한 하산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식이 내 나이 50이 주는 그런 의미로 다가왔다.
적어도 내게는,
나는 내려놓았다.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부담감, 업무 스트레스, 매일매일 반복되는 숫자와 소모적인 관계,
괜찮은 척 스스로 위로하기,,,
몸이 내게 보내는 많은 신호 때문이 아니라 시간의 억압과 들레,
그 안에서 자유로와 지기 위한 꿈을 위해 내려놓았다.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영화 속 닥터 스트레인지의 에메랄드 빛 타임 스톤이 내 손에 주어지지는 않겠지만,
내가 그 권능을 거부하고 벗어날 능력도 노력도 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시간의 굴레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의 속도를 늦추고
생명과 아름다움과 탐구와 지혜와 사랑이
우리 안에 존재하는 우리에게 부여된 시간의 가치임을 확신할 수 있도록 나는 내려놓았다.
퇴사가 유행어처럼 쏟아지고 저마다의 이유와 목적으로 다가오는 단어이지만
나에게 의미는 적어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오늘의 내가 나를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고향으로 떠 나기 전,
이 별이 얼마나 아름 다운 곳인지,
내가 사랑한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 인지를 기억하기 위한 작은 결단이었음을,,
나이 50이 되니 비로소 멈춰 볼 용기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