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상호작용과 역동성을 파악해 볼 수 있는 미술활동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는 투어스의 노래로, 새 학기에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음악 자체도 매우 좋지만, 이 노래가 인기를 끌었던 것은 10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가사 때문이 아닐까 한다.
상담에서도 첫 만남이 있다면, 역시나 헤어짐의 ‘종결’이 있다. 종결은 최초에 설정했던 목표가 달성되었거나, 증상이 완화되어 아동이 긍정적인 변화를 유지할 수 있는 전략을 갖추었을 때 이루어진다.
그러나 투어스의 노래 가사를 인용하자면, 종결은 치료사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초기에 설정했던 목표가 상담과정에서 변경되기도 하고, 설마 그럴 리가 없을 것 같지만, 아동과 부모님의 일정을 조율하지 못해 상담이 지연되기도 한다. 몇몇 경우는 도중에 상담을 멈춰달라고 요구하며 종결을 원하기도 한다. 아동상담의 경우, 아동의 문제로 도중에 상담을 멈추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주로 부모님의 ‘이것’으로 인해 종결이 이뤄진다.
과연 상담을 도중에 멈추게 하는 ‘이것’은 뭘까?
자기표현과 또래 관계의 어려움으로 나를 만났던 8살 남자아이가 있었다.
"우리 가족과 닮은 동물을 찾아보고 가족을 동물로 그려볼까?"라고 제안하며 가족의 역동성을 알아보는 '동물 가족화' 검사를 진행했었다. 자기표현에 어려움을 보이는 여느 아이들처럼 이 아이도 동물선택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특히, 아이는 엄마를 닮은 동물을 선택하는 것에 어려움을 보였다. 준비해 간 동물도안을 제시하며 표현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충분한 시간을 주었지만, 아이는 여전히 엄마를 선택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아가, 엄마와 닮은 동물이 풀을 먹는 동물인지, 고기를 먹는 동물인지 말로 표현해 볼까?”
“엄마와 닮은 동물이 바다에 사는지, 땅에 사는지, 하늘에 사는지 말로 표현해 볼까?”
“상상의 동물로 표현해본다면 어떤 것이 있을지 말로 표현해 볼까?”
이처럼 유연하게 질문하며 아이가 엄마 동물을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시를 해주었지만, 결국 아이는 언어적, 비언어적으로도 엄마와 닮은 동물을 선택하지 못했다.
그러나 완성된 작품이 없거나 엄마와 닮은 동물을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라도 다양한 해석적 접근이 가능하다. 시간이 흘러 치료사와 신뢰 관계가 충분히 형성되고, 아이가 좀 더 안정감 있고 편안한 상태가 되면 자연스럽게 엄마를 선택하여 그림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날 나는 아이에게 고민하고 표현하려 애쓴 것에 대한 마음을 헤아려주고 긍정적 지지를 해주며 활동을 마무리하였고, 이러한 과정을 어머니께 전달해 드렸다. 그러자 어머니의 표정이 굳어갔다.
"아이가 곤란해했겠네요….”
“아마 엄마를 이쁜 동물로 찾아주고 싶어 한 것 같아요”
“혹시 준비한 도안에 이쁜 동물이 없었던 것 아닐까요. 혹시 도안을 볼 수 있을까요?”
“아빠는 선택했던가요?”
“아빠보다 저를 더 좋아하고 따르는데”
“아마 아이는 엄마가 상처받을까 봐 그런 것 같아요. 엄마 맘에 안 드는 것을 골랐을까 봐요”
“아이가 고르지 않았다면, 선생님이 선택을 대신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우리 아이가 울지 않았던 건가요? 곤란하면 울거든요”
“아마도 선생님 앞에서는 울지 않았겠죠. 하지만 제가 있었다면 분명 울음을 터트렸을 거예요”
“아이가 오늘의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했을 것 같아요."
라며 불쾌한 감정을 속사포처럼 쏟아내셨고, 그날 저녁 상담을 종결하겠다는 의사를 문자로 전해주셨다.
속사포처럼 아이의 감정을 일일이 해석하고 대변해주는 엄마의 모습 속에서 아이가 자기표현에 어려움을 겪으며, 엄마를 닮은 동물을 선택하지 못한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타깝지만, 아동상담에서 부모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으면 효과적인 상담이 어렵다. 치료사로서 이런 종결은 정말 찜찜하다.
상담을 도중에 멈추게 하는 부모의 ‘이것’은 바로 현재의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도망가는 회피형의 태도이다. 특히, 아동의 심리를 파악하는 그림검사를 통해 가족의 문제가 드러나자 부정적으로 반응하며 회피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 것이다.
미술치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한 번쯤은 그림검사에 대해 들어봤을 것으로 생각한다. 많은 방송 매체에서 심리적인 측면을 다룰 때 꼭 등장하는 것이 이 그림검사들일 것이다. 그림검사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그려내는 그림을 통해 내면적인 상태와 심리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검사 도구이다.
미술 심리 진단 그림검사는 매우 다양하다. 인물을 그려보며 심상을 파악해보는 인물화 검사와 주제에 따른 그림검사, 시리즈로 된 그림검사, 다양한 가족화 검사가 있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집-나무-사람 검사(HTP)는 시리즈 검사이며, 동적가족화(KFD), 동물가족화(AFD), 물고기가족화(KFFD)등이 가족화그림검사에 속한다.
앞에 사례에서 언급되었던 동물가족화는 가족화 검사로 동물그림을 활용하여 가족관계에 경험되는 정서 상태를 평가하는 미술치료의 한 방법이다. 이 그림검사는 사람을 직접 그리지 않고 간접적으로 동물로 표현하도록 하여 가족구성원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나 부담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장점이 많은 동물가족화는 물고기가족화와 함께 내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그림검사이다.
미술치료사로서 공부를 시작할 즈음, 우리 가족은 나의 공부 메이트이자 실험 대상이었다. 새로운 그림검사를 공부할 때마다 언제나 아이들이 나의 익명의 내담자 A, B, C가 되었다.
언제나 아이들의 그림은 나에게 신선함을 주었고,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중 신선함을 넘어서 충격적이었던 기억을 준 것은 바로 동물가족화였다. 7살이던 딸은 나를 핑크 토끼로 그려주었고, 머리며 온몸을 하트로 꾸미며 엄마에 대한 애정을 가득 표현해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토끼의 이빨이었다. 수십 개의 뾰족한 이빨이 커다란 입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토끼의 얼굴을 하고 있을 뿐, 그 이빨은 사자의 것처럼 맹수의 것이었다.
일순간, 내 손이 바빠졌다. 전공 서적을 뒤지며 아이의 현재 심리상태를 파악하려 애썼다. 수많은 날카로운 이빨은 공격성, 공포,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된다는데, 큰딸이 엄마인 나를 왜 이렇게 표현한 것일까? 동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나? 내가 동생을 좀 더 챙겨준 것에 대해 질투를 느낀 것일까? 라는 수많은 자책의 물음표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때 완성된 그림에 서툴게 써 내려간 ‘토기=엉마’라는 글에서 뜻밖에 해답을 얻었다.
그 당시 아이는 7살로 예비초등학생이었다. 나는 글이란 언젠가 스며들 듯 자연스럽게 학습되는 것으로 생각하며, 아이와 가볍게 책을 읽어주었을 뿐 한글 공부를 전투적으로 시킨 적은 없었다. 그러나 7살 가을쯤이 되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글이란 것이 진작에 스며들고도 남았을 텐데, 큰딸에게는 좀처럼 스며들지 않았고, 쓰는 것은커녕 자신의 이름만 겨우 그릴 수 있을 뿐이었기 때문에 조급함이 몰려왔다.
그날 문방구에서 10칸짜리 공책을 사와 ‘가방’, ‘나비’와 같은 단어를 첫 줄에 써주고, 그 단어들을 9번 더 써서 가득 채우는 숙제를 내주었다. 처음에는 공부하는 언니처럼 보인다며 흥미를 보이던 큰딸도, 낯선 한글 공부와 전투적인 엄마의 모습에 금세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책 한 권이 거의 다 써갈 때쯤이 아마도 나를 이빨 토끼로 그렸던 때쯤이었다.
이렇듯 큰딸은 한글 공부를 강요하는 엄마를 날카로운 이빨로 묘사하며 공격성을 드러냈다. 또한, 자신과 엄마를 가장 멀리 배치하여 심리적 거리를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엄마인 토끼를 가장 먼저 그리고 종이 가득 크게 그리면서 엄마가 큰 스트레스를 주는 존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날 저녁, 큰딸의 그림을 보고 얼마나 자책했는지 모른다. 사람들의 마음을 미술로 헤아려준다고 공부하고 애쓰면 뭐하나. 정작 나의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리하여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한글 공부를 줄였다더라라는 훈훈한 미담은 없다. 딸의 현재 심리상태를 그림으로써 파악해보았으므로 많은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있다. 한글 공부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었고, 효율적인 학습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큰딸은 10칸 공책에 한글을 공부하는 것은 좋지만, 단순히 단어를 따라 쓰는 것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캐릭터 이름을 활용해보고 싶어 했다. 그날 이후, 아이의 10칸 공책에는 디즈니 주인공들이 가득했다. 라푼젤과 엘사, 안나 등이 그 공간을 채우며, 연필에 흑색 대신 주인공들이 연상되는 화려한 색으로 공책이 물들었다.
앞선 사례의 아이는 왜 엄마를 닮은 동물을 선택하기 어려워했을까? 아마도 엄마에 대한 적의나 불안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단순히 아이가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어 엄마를 선택하지 않았거나, 여러 동물도안 중 마음에 드는 동물이 없었기 때문에 선택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거다.
자화자찬이나 자뻑은 별로지만, 자기표현이 어려웠던 아이와 몇 회기 동안 신뢰감을 쌓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면, 분명히 엄마에 대한 속마음을 이야기해주며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나는 긍정적으로 상담을 이어갈 자신이 있다.
그러나 나의 절실한 마음과 다르게 어머니는 회피하는 태도로 문제에 직면하지 못하고 도망가셨다. 하나뿐인 소중한 나의 아이가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차렸을 때, 어머니는 큰 절망감에 빠지셨을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나의 큰딸이 그린 괴기스러운 이빨 토끼를 마주했을 때 느꼈던 절망감과 유사하지 않았을까?
아이가 엄마를 닮은 동물을 선택하지 못하고 그림에서 생략한다고 하더라도, 한글공부를 강요하는 엄마를 미워하여 엄마의 입을 날카롭고 무서운 이빨로 가득 채워 그렸더라도,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이 영원히 유지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 집은 1년에 한 번 정도 그림검사를 해본다. '너의 맘을 꿰뚫어 보리다'라는 전투적인 치료사의 입장이 아닌, 무던하게 자신들의 최근 심리상태가 어떤지 체크해보는 시간이다. 물론, 해석도 해주지 않는다. 남편과 아이들도 초반에는 궁금해했지만, 이제는 활동하는 과정에서 기쁨을 느낀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은 물고기 가족화에서 자신의 물고기에 유독 산소 방울을 많이 그렸고, 수면 위에 위치해 두었다. 이럴 때는 ‘아들이 요즘 답답함을 느끼는구나, 곧 중학생이 되니 고민이 많을 거야’라고 생각해본다. 가볍게 예비 중학생 아이들이 고민할 수 있는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보는 것도 좋다. 느닷없이 “너 요즘 고민 있니? 이야기해봐”라고 묻기보다는, 청소년기의 정서를 이해하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좋은 대화로 이끌어갈 확률이 높다. 또는 아들의 주머니에 만 원 한 장을 찔러 넣어주며 학교가 끝난 후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사 먹으라고 해주는 것도 효과 만점일지 모른다.
오늘 저녁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함께 할 수 있는 가족화검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활동 1. 물고기가족화 활동이다. 물고기가족화는 가족을 물고기로 그려보며 가족의 기능과 역동성을 파악하는 그림검사이다. 물고기의 성향(예: 상어, 금붕어), 위치와 거리감, 방향을 고려하여 작품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림을 그리기 어려워하는 대상을 위해 다양한 도안을 준비할 수 있다.
활동방법으로는 A4용지 또는 도화지에 어항을 그려 제시해준다. (어항의 모양은 다양할 수 있다) “어항에 물고기 가족이 살고있어요. 물고기 가족이 무엇인가 하는 모습을 그려볼까요?”라고 언급하며 활동을 시작한다. 다음으로 다양한 채색 도구를 활용하여 물고기와 어항을 자유롭게 꾸며본다. 이때 물고기를 그린 순서와 물고기의 성격, 행동에 대한 설명을 가족과 자유롭게 나눠보는 것이 중요하다.
활동 2. 동물가족화 활동이다. 동물가족화는 가족을 동물로 그려보며 가족의 기능과 역동성을 파악하는 그림검사이다. 각 동물이 상징하는 의미를 해석해보며 경험 때문에 고착된 가족 구성원에 대한 정서 상태를 잘 반영하는 장점이 있다. 물고기가족화와 해석방법이 유사하며 동물의 성향과 위치와 거리감, 방향을 고려하여 작품을 이해할 수 있고, 그림을 그리기 어려워하는 대상을 위해 다양한 도안을 준비할 수 있다.
활동방법으로는 “우리가족과 닮은 동물을 그려볼 거예요. 지금 우리 가족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라고 언급하며 도화지에 그리기 활동을 시작해본다. 다음으로는 다양한 채색 도구를 활용하여 동물과 배경을 자유롭게 꾸며본다. 이때 그린 동물의 순서와 성격, 행동에 대한 설명을 가족과 자유롭게 나눠보는 것이 중요하다.
활동 3. 풍선가족화활동이다. 풍선가족화는 가족의 경계선을 알아보는데 효과적인 활동이다. 경계선이란 가족 상호작용과정에 가족 구성원 누군가가 어떤 방식으로 참가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규칙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가족과의 역동관계에서 밀착되었는지, 분리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그림검사이다.
활동방법으로는 “우리 가족을 풍선으로 생각하고 그려보아요”라고 언급하며 도화지에 그리기 활동을 시작해본다. 다음으로는 활동 1, 2와 같이 작품을 완성하고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본다.
풍선가족화는 부모의 양육관을 알아볼 수 있는 그림검사이다. 이 검사에서 자녀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며 밀착하는 부모는 풍선의 끈을 모두 묶어버리는 경향을 보인다. 또는 자신의 큰 풍선 안에 가족이나 자녀의 풍선을 넣어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특징을 나타내기도 한다.
활동 1.2에 대한 해석을 생략한 이유는, 워낙 유명한 그림 검사이기에 인터넷에 잘 설명이 되어있으며, 도안 또한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에 언급하였듯이 해석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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