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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Sep 14. 2021

요즘 흥얼거리는 노래는?



남편 몰래 나 혼자 눈물을 찔끔찔끔 흘렸다.

울었던 티를 안 내려고 감정을 빠르게 이완시키려고, 일부러 입에 공기를 집어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부엌에 서서 개수대에 잔뜩 쌓인 ‘설거지’ 앞에서 노래한다.      


(남자들 앞에서 유린당하는 알돈자의 노래부분)                                 


누구든 원하는 건 하나 특별한 놈 내겐 없어.

묻기도 전에 알 수 있어 당신들은 다 똑같아.

그러니 사랑 따위는 다 집어 쳐 필요 없어 

돈이나 듬뿍 집어줘 주는 만큼 돌려줄게.

따질 것도 없어 이 세상 왜 이런지 알게 뭐야. 

어떤 놈도 다를 게 없어 다 똑같아.

어떤 놈이든 다 지겨워 

이런 인생 그래 싫지만 어쩌겠어 나는 알돈자.


내가 부르는 이 노래의 가사 부분은 허밍이고 뒷부분 마디 부분만 소리 내어 부른다.     


(그 후 돈키호테가 노래한다.)

거의 설거지가 끝날 때쯤 나는 나 자신이 돌시네아가 된 마음을 갖고  소리 내어 진심을 다해 노래 부른다.         


그댈 꿈꿔왔소,

나의 마음은 언제나 그댈 알고 있었소.

기도로 노래로 볼 순 없어도

마음은 언제나 하나였소.

둘시네아 둘시네아

하늘에서 내린 여인 둘시네아.

천사의 속삭임 같은 그대 이름

둘시네아 둘시네아.

그대의 머릿결

손을 뻗어서 탐함을 용서하여 주소서.

이것이 꿈인지 정녕 현실 것인지 알고 싶을 뿐이니.

둘시네아 둘시네아 그댈 위해 살아왔네 둘시네아

그댈 만남은 기다림 끝에 영광 둘시네아 둘시네아     


감미롭다. 대사와 음. 한번 들으면 중독되는 노래.

매번 불러봐도 처음 느꼈던 가슴 벅찬 감정의 그림자가 내 안에 숨어있다.          


이 뮤지컬을 보게 된 계기는 딸이 ‘어버이날 선물’로 봉투를 줬다.

현금과 편지일 거라 생각했는데 봉투 안에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패키지 티켓이 2장이 들어있었다.

뮤지컬에 대해 일도 모르는 내게,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 여러 번 시도 끝에 어렵게 표 구했어요! 두 분이서 좋은 시간 보내세요!’라고 형광펜 하트와 함께 익숙한 글씨체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고마워! 딸이 최고네!라고 말은 했지만.

장소가 잠실이면... 거의 차로 1시간 30분은 잡아야 하고.. 비싼 주차료, 거기다 알바로 해서 힘들게 번 돈으로 구입한 비싼 티켓값을 생각하니 약간은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잘생기고 유명하고 멋진 조승우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기도 했다.

공연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고, 나는 남편 몰래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세르반테스의 원작으로 ‘현실에서 벗어난 한마디로 미친 돈키호테’를 통해 세상을 풍자한 뮤지컬이었다.

돈키호테의 여정 속에 알돈자를 만나는데, 알돈자는 지옥 같은 희망 없는 현실의 삶을 노래하게 되는데 그 장면이 바로 ‘다 똑같아’이다.

살기 위해 싫은 일을 하며 돈을 버는 알돈자나, 끊임없는 노동의 굴레에 지쳐버린 나의 삶이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에서 일까!

몸과 마음이 조금은 지쳐 갱년기로 고생하고 있는 나의 마음을 동요시킨 것 같다.

다행히 알돈자의 마음이 슬픔에서 그치지 않고 돈키호테를 통해 변해가는 것이다.

현실을 부정하고 직시하지 못하는 돈키호테가 이상해 짜증 냈던 알돈자가 이상을 꿈꾸게 된 돌시네아로의 변신.

마치 김춘수의 시 ‘꽃’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자 하나의 의미가 된 것처럼,

돈키호테는 그녀를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로 알돈자에서 돌시네아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이다.

‘나 같은 인생이 희망을 꿈꿔도 되는 것일까?’라는 대사의 울림은 갱년기의 우울한 나 자신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분주한 움직임 속에 거의 모든 일을 마쳐가는 과정에서, 일을 마치고 앉아 커피라도 한잔 마실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나는 ‘다 똑같아를 부르다 감미로운 돌시네아’를 부른다.

그릇에 힘을 주며 깨끗하게 박박 문지르면서 다 똑같아를 부를 때면

거실에 나와있던 남편과 아들들은 조심스레 조용히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설거지가 거의 끝나갈 때쯤 돌시네아를 부를 때 딸이 나와 한마디 한다.

“엄마 너무 열심히 불러 말 못 했는데... 음 다 틀려요. 그게 아닌데...”   

  

그래도 돈키호테에게 위로받은 내 마음은 씩 웃는다.     

<<돈키호테의 '이룰 수 없는 꿈' 노랫말을 직접 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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