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내가 아기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다. 아니, 돌이켜보면 '그렇게는' 안 좋아했다는 표현이 훨씬 적확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다 심지어 계획된 아이도 아니었으니 나의 임신 기간은 그야말로 불량하기 짝이 없었다.
임신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 날아가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신나게 놀이기구를 즐겼고, 밤이 새도록 OTT를 몰아보거나 하루 아메리카노 2잔은 기본.. 진짜 술, 담배 빼고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며 지냈던 것 같다. 주변 사람들조차 '그래도 돼?'라는 말을 달고 살았을 정도니 보통의 임산부는 아니었던 게 맞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아이가 있다는 게 실감도 안 났거니와 '모성애'랍시고,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아이를 위해 뭔가를 하는 행위 자체가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 내 모습이 아주 쿨한 건 줄 알았고, 아이한테 밀려 나의 페이스를 잃지 않겠다는 일종의 허세까지 있었던 것 같다. (하... 대체 얼마나 철이 없었던 거지?)
그리고 지금.
나는 하루에도 백번 씩 아이에게 뽀뽀를 하고, '예쁘다', '귀엽다'를 연발하고 다니는 대팔불출에 하나도 '쿨하지 못한' 엄마가 됐다.
며칠 만에 한 번씩 머리를 감는 건 예삿일인데 아이는 매일같이 목욕을 시키고, 내 옷은 거적때기(?)를 걸칠지언정 아이는 깨끗하고 예쁜 옷을 입히고 싶어 하고, 아이 먹을 이유식을 만드느라 잠을 쪼개고. 내가 경계해 마지않았던 '나'는 사라진, 그런 '엄마'말이다.
인생은 예측불가라고들 하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변하다니.. 가끔은 헛웃음마저 나온다.
'비혼'을 외치기도 했던 내가 결혼을 하고, '딩크'를 염두에 뒀던 내가 아이를 낳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중요했던 내가, 아이를 위해 기꺼이 나를 미룰 수 있다는 생각마저 하다니.
그렇다면, 그게 힘들고 슬프냐고?
이상한데, 힘들긴 한데 슬프지는 않다. 뭐랄까, 아이 덕분에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의 또 다른 예쁨과 소중함을 알게 됐으니, 이만한 이득(?)도 없지 않겠느냐는 그런 생각.
또 어느 순간 아이가 미운짓을 하고, 삶이 지금보다 팍팍해지면 지금의 기분을 잊고 먼발치로 미뤄둔 나 자신이 가여워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지금은 괜찮다.
그저 이 놀라운 생각, 감정의 변화만으로도 내 삶의 경계가, 사고의 폭이 넓어졌으니 그걸로 일단 만족해보려 한다.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