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난 늙은 엄마다.
툭하면 내뱉는 말을 곱씹어 보면 "엄마가 늙어서 힘든데... 좀 그만 움직일 수는 없겠니?" 혹은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손목이야" 등등..
병치레도 잦고, 하나둘 늘어가는 흰머리도 은근히 신경 쓰인다.
물론, 늙은 엄마가 되고자 기를 쓴 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은 없겠지, 아마도?)
앞의 글에서도 밝혔다시피 '결혼? 안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시절이 있었고, 어쩌다 결혼은 했어도 아이는 없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인생이야 역시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어서 만혼에 이어 다 늙어(?) 아기까지 키워내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닌 거다.
10여 년 전이야 하룻밤 못 자도 팔팔했고, 아이 무게쯤이야 거뜬히 견뎌냈을 텐데, 지금은 하루만 못 자도 피죽을 못 먹은 마냥 비실대고, 아이를 안아 올리면서도 몸뚱이가 휘청여 한숨이 절로 나오는 지경이다.
어른들이 말하는 '아이는 무조건 젊을 때 키워야 한다'는 말이 왜 허투루가 아니었는지 깨닫는 요즘인데, 그럼에도 늙은 엄마가 항변을 좀 해보자면, 장점은 분명 있다.
우리 엄마가 요즘의 나를 보면 늘 하는 말이 있는데, 내가 아들을 자식이 아니라 마치 손주를 보듯이 예뻐한다는 거다.
자기 자식은 키우는 게 워낙 힘들어서 그 시절의 예쁨을 모르고 지나간다는데, 내가 아이를 너무 예뻐하니까 어이가 없단다. 물론 거기에다 '실제로 늙었다'는 너무한 촌철살인이 덧붙지만.
그런데 정말 맞는 말 같은 게 20대, 아니 30대 초반만 돌이켜봐도 나는 정말로 철이 없었다.
말로는 "난 아기를 예뻐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내심 그렇지 않았던 것 같고, 내 한 몸 건사하는 것도 너무 벅차서 나 이외의 누군가를 보살피고 보좌할 여력은 전혀 없었다.
그때의 내가 아이를 키웠다면, 예뻐하기는커녕 그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거지 같다며 욕만 하다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은 다르냐고? 물론, 엄청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깨지고, 깎이고, 부딪히면서 나 아닌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고 품어낼 수 있을 정도, 적어도 내 아이만큼은 예뻐할 수 있을 정도의 인간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나이가 돼서야 비로소 아이의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거다.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남편과 얘기를 하다가 아이가 저렇게 예쁠 줄 았았다면 더 빨리 낳았을 텐데, 우리가 늙은(?) 바람에 저 아이 곁에 있어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며 둘이 갑자기 오열을 하는 웃픈 상황이 벌어졌다.
비록 남은 시간(?)은 많지 않을지 모르나.. 지우고 싶기도, 바꾸고 싶기도 했던 그 수많은 과거의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됐고, 그래서 지금 아이를 만날 수 있었고, 이런 사랑을 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그 어떤 시간들도, 선택들도 다 헛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작디작은 아이를 안아 올릴 때조차도 무거운 한숨은 새어 나오지만, 그래도 늙은 엄마인 게 그다지 부끄럽지는 않은 이유다.
덧) 사실 원래는 며칠 전 아이가 갑자기 '서기'를 해 너무 감격했던 그 순간에 대한 감상을 적어보고자 했는데, 글을 쓰기 위해 테이블에 앉았다가 허리가 너무 아파서 늙은 엄마 얘기를 쓰게 됐다는 슬픈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