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한걸음
며칠 전 부모님이랑 영상 통화를 하던 도중이었다.
부쩍 움직임이 많아진 아이가 한시도 쉬질 않고 뒤집기, 되집기, 앉기까지 반복을 하다가 갑자기 기어가기 시작했다.
몇 주 전부터 '앞에서 기어가는 모습을 좀 보여줘라, 기는 연습을 시켜줘라'는 부모님의 닦달(?)에도 '때 되면 알아서 하는 거지 뭐'라며 애써 무시해 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정말 순식간에 엉덩이를 들더니 무릎으로 바닥을 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게 너무 신기해서 부모님도, 나도 한참을 좋아하면서 웃었는데- 경이롭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그 순간이 너무 소중해서, 스쳐 지나간 찰나지만 꼭 사진으로 인화한 것처럼 선명히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먹고 잠만 자던 아기. 배냇웃음이라고 하나, 미소도 자면서밖에 지을 줄 몰랐던 그 쪼꼬맣던 아가는 이제 뒤집기, 되집기의 달인이 되었고, 앉기는 마스터에, 이제 기어가기까지 섭렵하는 중이다.
임신 40주 기간에도 매일을 신기해했었다. 어떻게 콩보다도 작았던 생명체가 찢어질듯한 고통을 안기며 나를 뚫고 나올 만큼 커지는 거냐 했었는데, 내 눈으로 아이의 하루가 다른 성장을 지켜보고 있는 건 신기함을 넘어서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운 좋게 목도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달까.
웬만한 건 겪어볼 만큼 다 겪어봤고, 뭐든 할 만큼 해봐서 새로운 걸 아무리 해도 '거기서 거기'라는 삶에 대한 매너리즘에 빠졌던 시기도 있었다.
마흔을 목전(?)에 두고, 이제 특별할 것 없던 하루하루가 조금은 더 특별해졌다. 아니, 새로운 세계가 열려버렸다.
뭘 제대로 움켜쥐지도 못하던 아기가 장난감 새의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잡는 걸 보며 진심으로 손뼉 치며 기뻐하기도 하고, 칫솔모 한가닥씩 만지기 신공에는 가족들 한정이긴 하지만, 동네방네 자랑도 해보고.
그 무엇을 해도 해소되지 않았던 새로움에 대한 갈증이 아가라는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목도하면서 완벽하게 해소돼 버렸다.
물론 가끔은, 아기가 내딛는 한걸음이 나의 세계를 한걸음 후퇴하게 하는 건 아닌가, 나는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 때도 있다.
실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세계의 확장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내일은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라는 기대감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날도 많지 않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