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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Nov 28. 2024

(단편소설) 항아리 공방의 비밀(完)

 내가 살던 시골마을 어귀에는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작은 항아리 공방이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어머니께 ‘왜 저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나요?’라고 자주 물었지만, 어머님은 그때마다 ‘자신도 모른다’라고 답했다. 어린 나는 궁금했지만 알 수 있는 방도가 없었기에 궁금증을 간직한 채 컸다. 그리고 그 공방은 곧 나와 내 친구들의 아지트가 됐다. 어차피 아무도 살지 않고,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는 그곳은 꽤 좋은 장소였다. 친구들과 그곳에서 많은 추억을 쌓았다. 고기도 구워 먹고, 술도 마시고, 게임도 하고, 날이 더우면 모두 모여 공방의 평상에서 다 같이 잠도 자고, 내 기억 속의 공방의 생활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런 나도 철없이 놀기만 할 수 없었기에 일을 찾기 위해 도시로 올라갔다. 다행히 운 좋게도, 꽤 남들이 알만한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나는 악착같이 일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의 회장이 나를 호출했다. 나는 놀랐다. 일개 신입사원이 회장과 독대하는 상상은 한 번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배들은 얼른 회장실로 올라가라고 재촉하고, 나는 무엇을 잘못했나 싶은 마음에 두려운 상태로 회장실까지 걸었다. 신입사원 연수회에서 딱 한 번, 그것도 연단에서 연설하는 모습을 봤을 뿐인 회장의 인상은 꽤 무서웠었다. 나는 회장실 앞에 서서 심호흡을 크게 한 뒤에 문을 두드렸다. 비서가 나를 맞이했다.     

 “이태수 씨 맞나요?”     


 비서는 나를 반기며, 말했다. 나는 짤막하게 ‘네’라고 답하고는 비서가 안내해 준 의자에 앉았다. 비서는 앞선 미팅이 길어지셔서 조금 대기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차라리 빨리 만나버렸으면 좋겠다는 가득했다. 그때, 회장님이 계신 곳의 문이 열리고, 앞선 미팅을 했던 사람들이 줄줄이 나왔다. 그때까지도 나는 자리에 앉은 채로 긴장하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비서가 나를 불렀다. 

 “이태수 씨, 지금 들어가시죠”

 “네”     


 회장님은 이미 자리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의 앞에 앉았다. 연수회에서 봤던 것보다 그의 인상은 더 사나웠다. 육중한 체구와 살짝 험악한 인상에서 나오는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나는 더없이 위축됐다. 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신입사원 이태수? 이야기 들어보니 열심히 한다던데 맞나?”     

 나는 긴장한 채로 답했다.

 “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내 불같은 표정을 풀더니 인자한 모습으로 내게 말했다.     

 “그래. 앞으로도 열심히 해주게”


 그때까지도 나는 왜 그가 날 불렀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고작 열심이하는 신입사원을 치하하기 위해 불렀다기에는 너무도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 업무 이야기를 한참 했다. 나는 잠자고 듣고만 있었다. 비서가 마실 차를 가지고 들어왔다. 목이 말랐기에 뜨거운 줄도 모르고 차를 홀짝거렸다. 또 한참 말이 없던 그가 대뜸 내게 물었다.


 “자네 OO마을 출신이지?”

 “네, 그곳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그가 왜 내게 출신마을을 묻는지 의아했다. 그는 다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을 계속했다.

 “나도 그 마을을 조금 알지, 그곳에 혹시 버려진 항아리 공방이 있지 않았나?”


 어떻게 그가 그곳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놀라 바로 답했다.

 “네, 회장님 있었습니다”

 “그곳은 어땠나?”


 그의 질문에 나는 그곳에서의 추억을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했다. 나도 놀랐지만 내가 공방이야기를 할 때에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는 내 이야기를 재밌다는 듯이 들었다. 내 말이 끝나자 다시 그가 질문했다.

 “자네는 그곳이 왜 아무도 안 사는지 아는가?”

 “모릅니다. 어머님께도 여쭤봤는데 모르신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모르는 게 당연하지, 너무 오래된 일이었으니까”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회장의 말에 나는 반문했다.

 “회장님은 아시나요?”


 그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자신한테 반문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나 보다. 다행히 신입사원의 패기쯤으로 여기셨는지 나를 아기를 쳐다보듯 보셨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잘 알지, 내가 만든 공방이거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놀랐겠지? 그 시골마을이랑은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내가 그곳에 버려진 항아리 공방을 만들었다니 말이야”

 “네, 사실 조금 놀랐습니다”

 “내 이야기를 좀 들려줄까?”


 나는 말없이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나는 어렸을 때, 가업 따위는 이을 생각이 없었어.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나? 당시 아버지는 나를 어떻게든 이 회사의 사장을 만들려고 별에 별 짓을 다 하셨지, 심할 때는 감금까지 시켰었어. 결국 나는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회사에 입사했었지, 그때가 25살이었어. 싫어도 어쩔 수 없었어, 나는 유약했거든 아버지가 무서웠지. 사실 나는 도예를 하고 싶었어, 학생 때 우연히 접했던 도예에 푹 빠져있었거든, 한 번은 아버지에게 그 말을 했다가 죽기 직전까지 맞았지”     


 그는 자신의 말이 재밌다는 듯이 말을 끊고 짧게 웃으며, 물을 한 잔 마셨다. 그리곤 계속 말했다.

 “아무튼, 회사에 말단으로 입사했는데 이미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났기 때문에 서로 불편했어, 상사도 내게 말 못 하고 일도 잘 가르쳐 주지는 않으면서 나와 내 아버지 안부만 물었어. 나는 불편한 회사생활이 너무 싫었어, 그때 회사에 신입사원이 한 명 들어왔는데  너무 이뻤어. 내가 한눈에 반할 정도였지, 그런데 그 신입사원도 나한테 호감이 있었어. 처음에는 내 배경에 끌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까 나랑 상황이 비슷한 처지였지, 회사사람 누군가가 하는 얘기를 들었던 모양이야, 내가 알아봤더니 그녀의 부모님도 크게 사업을 하셨고, 경영수업을 위해 우리 아버지한테 부탁해서 입사를 하게 된 상황이더라고, 그녀도 다른 꿈이 있었던 건지 회사에 적응을 못했어, 그런 그녀와 나는 급속히 가까워졌지. 자네한테 물어보겠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을 것 같나?”     


 나는 답을 알고 있지만, 모른다고 답했다. 다시 그가 크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는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그녀를 데리고 야반도주를 했어, 자네가 있는 마을로 그리고 도망치며 가져온 돈으로 허름한 집은 한 채 사고서는 항아리 공방을 열었지”     


 그는 추억에 젖었는지, 창을 통해 먼발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기다리며 차를 홀짝거렸다. 그가 갑자기 큰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좋았어, 일 년 정도는 말이야. 말이 공방이지 아무도 찾지 않았거든, 마을 사람들도 처음에야 관심을 가졌었지, 농사도 짓지 않고, 밖에 나오지도 않는 우리에게 관심을 끊었었거든, 차라리 그 편이 나았어, 정말 행복했거든 나는 그녀에게 도자기 굽는 법을 알려주었고, 그녀는 내가 만든 도자기에 그림을 그렸어, 나는 장날이 되면 만든 도자기를 장에 내다 팔 앗고, 수입이 신통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먹고살 정도는 됐지”     

 그가 다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일어나더니 아예 창문 앞에 서서 본격적으로 밖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크고 육중한 회장의 뒷모습이 작아 보이기 시작했다.     

 “딱 일 년이 지났을 때, 나는 저녁거리를 사가지고 오는 길어있지, 우리 집 앞에 처음 보는  검은 봉고차 한 대가 서있더라고, 직감했어. 우리를 잡으러 왔구나. 내 쪽인지 그녀 쪽인지는 몰랐지만, 아무튼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봉지를 바닥에 내 챙겨 치고는 집으로 뛰어갔어. 그러자 말끔하게 정장을 입은 장정 넷이 그녀를 억지로 끌고 가더라고, 그들과 싸웠지만 어쩔 도리가 없이 그녀를 보낼 수밖에 없었어, 나는 망연자실 한 채로 집 앞에 앉아있는데 이번에는 고급세단이 왔어. 우리 아버지였지”     


 눈을 질끈 감고 그는 괴롭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좀 더 할 얘기가 있을 것 같았지만,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기고 한 듯이 내게 미소 지었다.     

 “어떤가? 자네가 아지트로 썼던 그곳에 대한 전말을 들으니?”

 “네, 조금 충격적이었습니다”


 나는 어쭙잖은 위로는 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위로도 그 당시의 그를 위로할 수 없기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또 웃었다. 그러더니 진지한 투로 말했다.     

 “그 후, 나는 아버지한테 죽도록 맞고, 결국 여기까지 온 거야. 내가 왜 이야기를 자네한테 하는 줄 아나?”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제 살날이 얼마 안 남았어. 그런데 살면서 남에게 그때의 추억을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더라고, 그러다 우연히 자네 이력서를 보다가 그 마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얘기한 거네, 조금 기운이 빠지지? 더 거창한 이유가 있을 줄 알았을 텐데”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조금 기운이 빠지기는 했지만 그런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아닙니다. 회장님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소 힘이 빠지지만 나는 그 말을 끝으로 그곳에서 나갔다. 그는 내게 자신의 말을 들어줘서 고맙다고 했지만, 어쩌면 잊고 싶었던 기억을 끄집어낸 사람처럼 얼굴은 그늘져 보였다. 주말에 나는 일부러 고향을 찾아 공방으로 향했다. 이제는 정말 아무도 찾지 않은 공방은 모든 곳에 먼지가 쌓여있었다. 나는 그곳을 이리저리 뒤지며, 예전에 봐 뒀던 항아리 하나를 찾아 집으로 들고 갔다. 그때는 몰랐는데 그가 만들고 그의 첫사랑이 그린 항아리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그 항아리를 발신인불명으로 회장에게 보냈다. 잠시나마 그때의 추억이 조금이나마 위로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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