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수가 이곳으로 아르바이트를 온 것은 순전히 아버지의 뜻이었다. 그는 올해 21살로, 대학을 다니기는 하지만 교실보다 PC방과 술집에서 더 많이 보이는 그런 부류의 학생이었다. 군대도 안 가고 매일 놀기만 하는 아들을 걱정한 아버지는 마침 자신의 친구가 바닷가에서 여름 한정으로 치킨사업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이때다 싶어 태수를 거기에 억지로 집어넣었다. 그의 보직은 배달이었다.
태수가 도착한 첫날, 아직 여물지 않은 해수욕장 풍경은 퍽이나 한산했다. 그는 언덕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도대체 누가 여기서 치킨 같은 것을 먹나 싶었다. 그때, 요란한 오토바이 굉음이 그의 귀를 강타했다. 두 대의 오토바이가 경주라도 하듯이 이곳저곳 누비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수는 멍하니 오토바이를 보고 있는데, 오토바이 중 하나가 그의 앞에 섰다.
“너는 뭐냐?”
태수는 그의 용모를 보고 바로 얼었다. 왼팔에 잉어 문신이 있는 조폭 같은 사람이 자신을 보고 뭐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다른 오토바이를 탄 사내도 태수 앞에 멈춰 서며, 그 잉어문신에게 나무랐다.
“야, 애 졸겠다. 왜 겁을 줘?‘
다행히 두 번째로 온 오토바이 형은 문신 같은 게 없었기에 태수는 살짝 안도감을 내 비쳤다. 태수는 두 번째로 온 오토바이 형에게 말했다.
“아, 저는 저기 치킨집에서 배달아르바이트 하러 왔어요”
그러자 잉어문신이 반갑게 이야기했다.
“아 그래? 우린 너네 치킨집 옆에서 피자 배달해. 내가 배달하고, 얘가 조리하고”
잉어문신은 옆에 두 번째로 온 오토바이 형을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 형도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 반갑다. 나는 로보토라고해, 지난번에 오토바이 타다가 다리가 분질러져서 철심을 두 개나 박아서, 애들이 나보고 로보토라고 해”
태수는 그 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다. 그리고 오늘 도착한 태수에게 로보토와 잉어문신은 태수를 뒤에 태우고, 구석구석 바다를 안내해 줬다. 아무래도 자신들보다 한 참 어린 태수가 동생 같아 베푼 성의 같았다. 태수는 그들 덕분에 여기저기 누비며 길을 읽혔다. 하지만 아직 한산한 해수욕장에는 개미세끼 한 마리 없었다. 잉어문신이 태수에게 담배를 권하며 이야기를 했다.
“지금 여기 조용하지? 아직 시즌이 아니라서 그래, 다음 주만 되면, 너는 아무것도 못하고 치킨만 배달할 거다. 놀 거면 지금 다 놀아”
태수는 멋쩍게 웃으며, 잉어문신이 주는 담배를 받아 폈다. 아직 낯설어서 그런지 선뜻 대화를 시도하지는 못해서 어색하기는 했지만, 잉어문신은 이해한다는 듯이 태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음에 보자고 인사하고는 로보토와 함께 사라졌다. 태수는 그들과 헤어지고선 가게로 갔다. 가게는 아직 세팅이 완료되지 않아 어수선했다.
“어, 태수 왔니? 여기저기 좀 둘러봤어?”
“네, 옆에 피자집 형들이 길 안내를 제대로 해줬어요”
“아, 먼저 만났구나, 걔들이 생긴 건 좀 그래도 애들은 착하더라, 싹싹하고”
“사장님 뭐 좀 도와드릴까요?”
“아니야, 너도 힘들었을 텐데, 오늘은 이만 쉬어”
태수는 사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사를 하고는 자신이 앞으로 묵을 텐트로 자리를 옮겼다. 텐트는 풀숲에 있었고, 근처에는 자신과 마찬가지고 일을 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기거용 텐트들이 보였다. 태수는 최대한 그들과 떨어지기 위해, 텐트를 설치하기 좋은 약간 무른 흙이 있는 지형을 포기하고 그냥 풀숲에다 설치했었다. 태수는 풀숲을 헤쳐 자신의 텐트에 들어가 몸을 뉘었다. 1평도 안 되는 작은 텐트 속에는 그나마 위안을 찾을 수 있었다. 너무 낯선 곳에서 한 번도 일하지 않은 자신이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다. 시간은 오후 8시밖에 되지 않았지만, 태수는 잠이 들었다.
새벽 두 시가 넘었을까? 텐트에서 갑자기 둔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태수는 무서워 텐트 문을 조금 열고 밖을 살폈다. 그러자 작게 열어 제 친 텐트의 문을 통해 갑작스럽게 비가 들이치기 시작했다. 바다지역의 비는 내륙의 그것보다 압도했다. 다행히, 방수가 되는 텐트여서 그런지, 문을 닫고 나서는 더 이상 비가 들이치지 않았다. 계속되는 비 오는 소리와 천둥소리에 무섭기는 했으나, 졸음이 우선인 그에게 선택지는 그냥 무시하고 자는 수밖에 없었다.
한참이 지나고,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태수는 본능적으로 알람을 끄고, 눈을 떴는데, 자신의 눈앞에 텐트의 바닥이 마주쳤다. 그는 분명 옆으로 누워있었는데 텐트 바닥이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 평소였다면 문 쪽이 보였어야 하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은 태수는 자신이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었다. 태수가 텐트를 설치한 곳은 하필이면 배수가 전혀 되지 않는 곳이었다. 어제 많은 양의 비로 인해 텐트는 태수가 누워있는 자리를 제외하고 모두 떠버린 참이었다. 태수는 놀라 반대쪽으로 누웠으나 역시 보이는 것은 텐트 바닥이었다. 그는 짐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텐트는 그대로 태수가 누운 곳을 제외하고는 다 떠있었다. 태수는 당황하여 벌떡 일어났지만, 그만 중심을 잃고는 넘어졌다. 다행히 물들이 쿠션역할을 해줘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태수가 다시 중심을 잡고 일어나 조심히 문을 열었다. 그러자 하필이면 풀숲(풀숲은 텐트촌 보다 약간 아래에 위치해 있고, 마침 풀숲 주변에 콘크리트벽이 사방에 있어서 물이 차오르는 구조가 됨)은 물바다가 되어있었다. 그보다 멀찍이 있는 텐트촌에는 다행히 배수로 시설이 잘 되어있어서 멀쩡했다.
태수는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여기만 이렇게 물바다가 될 수 있나 생각해 보니, 저 쪽 텐트촌에서 배수로를 설치할 때, 하필이면 이곳 풀숲으로 보내겠 금 설계가 되어있었던 모양이다. 태수는 일단 텐트에서 나왔다. 그러자 그의 종아리 위까지 물이 차올랐다. 그가 나오자 텐트는 물에 둥둥 떠 있었다. 분명히 자신이 핀도 박아놨었는데, 그 핀들은 어디 갔는지 온 데 간 데 없었다. 둥둥 떠 있는 텐트를 밀어가며, 물난리 속에서 헤어 나오려 할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를 빤히 쳐다봤다. 이내 그중 한 명이 용기 내서 태수에게 말을 걸었다.
“이건 무슨 물놀이예요? 재밌겠다? 얼마예요?”
순진한 소녀의 물음에 태수는 기가 찼으나 빠르게 상황설명을 하고는 텐트와 함께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