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단편소설) 돌뿌리(完)

by 길거리 소설가


“태수야”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그가 뒤를 돌아봤다. 그를 부른 사람은 영수다. 영수는 손을 흔들며,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하지만 그는 영수를 봤음에도 애써 외면하고는 가던 길을 갔다. 멀찍이 서서 그에게 손을 흔든 영수는 자신을 봤음에도 고개를 숙이고 갈 길을 가는 그가 의아했다. 영수는 한 번 더 크게 그를 불렀다.


“이태수”


그는 여전히 그를 무시한 채 걸었다. 영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떠나는 그를 바라만 봤다. 여수는 더 이상 그를 부르는 것을 포기하고는 씩씩거리며 자신도 갈 길을 갔다. 가던 중, 민수를 만났다. 아까와는 다르게 민수가 영수를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눈치가 빠른 민수는 영수의 미간이 찌푸려져 보이는 것을 알고는 조심스레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가 방금 태수를 만났으나, 그가 나를 무시하고 갔음’을 말했다. 호사가인 민수는 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마냥, 확인되지 않은 태수의 좋지 않은 소문들을 나열했다. 태수와 막역한 사이인 영수는 그의 말이 거북스럽기 까지 했다. 민수는 태수와 영수의 사이를 부러워해서 그 둘을 시기했는데, 이번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민수가 계속 태수에 대해 험담을 하자, 계속 듣던 영수는 민수에게 그만해달라고 요청했다. 더 이상은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민수는 아직 할 말이 남았으나, 영수의 요청에 입을 오므렸다. 갑자기 둘 사이의 공기가 어색해졌다. 뭐라도 말하고 싶은 민수에게 영수는 ‘태수가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생겨서 자신의 부름에 대답도 하지 않고 갔을 거다’라고 변호했다. 민수는 영수의 변호에 대해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민수는 주제를 바꿔 이번 중간고사 얘기를 했다. 다행히 영수도 관심이 있는 주제라 금세 말들이 오갔다. 한참을 떠들던 광수가 보였다.


자신을 알아보고 인사는 민수를 보며, 광수는 상기된 얼굴을 한 채, 태수에 대해 욕지거리를 하기 시작했다. 광수도 영수만큼이나 태수와 막역한 사이었다. 영수는 태수에 대해 욕을 하는 광수를 보고는 놀라 묻자, 광수역시 자신과 같은 처지임을 그에 입을 통해 확인했다. 민수는 이 때 다 싶어서 영수에게 했던 태수에 대한 소문들을 광수에게도 들려줬다. 광수는 태수와 다르게 신나게 태수를 욕했다. 민수는 더 신나서 이제는 소문인지 아닌지도 모를 말들을 내뱉었다. 영수는 그 자리가 불편했지만, 학교를 가는 길은 그 길 밖에 없으므로 최대한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앞만 보며 걸었다. 광수와 민수가 서로를 바라보며 태수를 욕하고 있을 때, 그들은 돌부리를 보지 못하고 둘 다 넘어졌다. 영수는 넘어지는 그들을 보며 돌부리를 폴짝 뛰어넘었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각자의 다리를 부여잡고 뒹굴고 있는 그들에게 영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옆에 지나가던 할머니가 광수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뛰어왔다.


“내 새끼, 괜찮아? 광수야,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광수는 자신을 보러 온 노인을 보고는 ‘할머니’라고 하며 울었다. 광수의 할머니는 급하게 전화를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광수를 들쳐 엎고는 사라졌다. 민수는 멀어져가는 광수를 바라보며, 아직 다리를 잡고는 누워있었다. 영수도 더 이상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는 지, 민수에게 어깨동무를 한 채로 그를 근처 벤치에 앉히며 말했다.


“야, 괜찮아?”

“아, 죽겠어. 너무 아파”

“그러니까 앞을 보고 걸어야지....”


영수는 민수에게 짤막하게 경고했다. 하지만 민수는 들은 채 하지 않았다. 민수가 바지를 걷어 올리고, 상처부위를 확인하자 깊게 패인 무릎에 빨간 피가 흐르고 있었다. 민수는 기겁을 하고는 바지를 더 걷어 피가 묻지 않도록 했다. 민수가 울먹거리며, 영수를 바라보자 영수는 지나가는 자신의 담임선생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선생님을 불렀다.


“선생님”


선생님은 익숙한 소리에 고개를 돌려 민수와 영수를 확인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영수에게 다가오는 선생님은 곧 민수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음을 알아채고는 달리다 시피 해서 민수에게 갔다.


“민수야 괜찮아?”


민수는 선생님이 오자 안심했는지,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선생님은 민수를 달래며, 그를 들처 업고는 학교로 사라졌다. 혼자 남은 영수는 다시 등굣길로 돌아갔다.


“영수야”


뒤에서 영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영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자, 태수가 서있었다. 영수는 태수를 보고는 뾰로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다시 앞으로 홱 돌렸다. 태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영수에게 뛰어가 어깨동무를 하며 물었다.


“영수야, 못들었어? 왜 그래?”


영수는 말이 없었다. 이상함을 느낀 태수는 영수 어깨에 걸쳤던 팔을 내리고, 그를 붙잡고는 애원하듯 물었다.

“영수야, 왜 그래? 나한테 화난 거 있어?”

영수는 태수의 눈을 똑바로 보며, 그에게 말했다.


“아까 내가 널 불렀는데도 너는 그냥 지나갔잖아. 나도 똑같이 하는 거야”

영수는 다시 훽 하고 돌아섰다. 태수는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영수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널 언제 무시하고 갔어? 나 오늘 너 처음 보는데?”

영수는 답답하다는 듯이 태수에게 따지듯 물었다.


“야, 좀 아까 네가 자주 입는 검은 후드티 입고 있었지? 내가 크게 두 번이나 불르고, 너는 나를 봤음에도 그냥 가버렸잖아”

영수는 거의 절규하다 시피 태수에게 쏟아부었다. 태수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따지듯 영수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야? 지금 집에서 나왔는데”

“거짓말 하지마, 아까 검은 후드티 입고....”

태수가 그 때, 영수의 말을 가로채고는 뭔가를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으며 말했다.


“아, 너 우리 사촌형 봤구나?”

“뭔 소리야?”

“우리 사촌형네 학교가 어제 방학을 했어. 우리 보다 이틀이나 먼저 해서, 나랑 놀겠다고 지금 집에 와있거든, 오늘 아침에도 심심하다고 오락실 간다며 내 옷 입고 나갔어”

그제야 영수는 아침에 봤던 태수는 책가방도 없었고, 평소와 다르게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다리를 끌면서 걸었다는 사실이 불현 듯 생각났다. 태수는 손을 넣고 걷지도 않고, 다리를 끌면서 걷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영수가 잠시 생각에 잠겼을 때, 태수가 말했다.


“사촌형을 보고 네가 오해했나보다. 형이 숫기가 없어서 처음보는 사람들이랑 말을 잘 안해”

태수는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웃던 태수가 영수에게 다시 물었다.


“근데 너는 왜 여기에 혼자 서있어?”

영수는 그간 있었던 일을 태수에게 말했다. 물론, 광수와 민수가 태수를 욕했다는 이야기는 빼고 말이다. 잠자코 듣고 있던 태수가 대답했다.


“민수랑 광수는 너무 덤벙대서 탈이라니까, 얼른 학교나 가자 이러다 늦겠다”

영수는 자신이 오해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태수가 자신을 무시하지 않았음에 안도했다. 그리고 작은 오해로 광적으로 비난한 그 두 친구가 과연 태수의 해명을 들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물론, 부끄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원래 그런 애들이니까. 그래도 다친 무릎의 쓰라림보다, 마음 속 부끄러움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태수와 영수가 학교에 도착하자, 민수는 자리에 앉아있었다. 웃으며 들어오는 태수와 영수를 보고는 흠칫 놀라며, 자리를 고쳐 앉고 앞을 바라봤다. 영수는 그런 민수에게 다가가 아침에 만난 태수에 대한 얘기를 했다. 민수는 뜻 모를 표정으로 영수의 말을 들을 뿐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단편소설) 여기는 바닷가입니다(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