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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정상적인 사람들(完)

by 길거리 소설가

(1)

노란 주머니를 가지고 다니는 남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언제나 노란 주머니를 오른쪽 허리에 매고 다녔다. 어느 날 사내가 물었다.

"왜 그 주머니를 매고 다니시나요?"

그는 답이 없었다. 사내는 한 번 더 물었다.

"왜 그 주머니를 매고 다니시나요?"

그는 또 답 없이 사내를 무시했다. 사내는 화가 나서 그를 밀쳤다. 그의 노란 주머니가 허리춤에서 떨어지며, 땅에 나뒹굴렀다. 사내는 이내 당황해서, 그에게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이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사내가 당황한 것에 비해 그는 침착했다. 그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사내를 폭행으로 신고했다. 2분 뒤, 근처 경찰이 사내를 잡으려고 달려왔고, 사내는 잡혀갔다. 사내가 연행되면서 뒤를 돌아보자, 그는 들고 있던 가방에서 다른 노란 주머니를 꺼내 오른쪽 허리춤에 맸다. 사내는 그 때야 알았다. 그가 매고 있던 노란 주머니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새로운 노란 주머니를 차고선 유유히 그곳에서 벗어났다.

(2)

작은 소리가 들렸다. 매일 같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녀다. 무슨 노래인지는 모르지만, 늘 흥얼거렸다.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탐탁지 않았다. 자신들에게는 소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늘 흥얼거리고 다니는 것에 비해 노래를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몰랐다. 남들은 그녀가 민폐를 끼친다고 손가락질을 했다. 어느 날 매일같이 가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고는 그녀는 또다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모기처럼 짜증 나는 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에 주변의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중 어떤 남자가 카페 주인에게 귓속말을 하며 그녀를 가리켰다. 사실, 카페 주인도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손님을 핑계로 그녀를 내 쫒을 생각이었다.

"저기, 주변사람들에게 방해가 돼서 그러는데 흥얼거리는 것을 멈춰 주실 수는 없나요?"

그녀가 카페 사장을 째려봤다. 카페 사장은 움찔했지만, 물러서지 않고 계속 말했다.

"조금 조용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카페 사장의 말을 무시한 채, 자신의 가방에서 휴대용 마이크를 꺼내더니 볼륨을 최대한 높이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최악의 노래였다. 카페 손님들은 자리를 하나 둘 박차고 나갔다. 결국 카페에는 사장과 그녀밖에 남지 않았다. 그녀의 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에 카페사장은 그녀의 멱살을 잡고 땅에 끌다시피 해서 그녀를 내 쫒았다. 카페사장은 그녀의 짐들을 마구잡이로 가방에 넣어 밖에 쓰러져 있는 그녀에게 던지곤 그 옆에 침을 뱉었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들고, 옷을 툭툭 털며 일어났다. 그리고 자리를 떠났다.


(3)

노란 주머니를 가지고 다니는 남자가 목이 말라 편의점에서 물을 샀다. 그런데 웬 여자가 길바닥에 자빠져 있었다. 그는 호기심에 그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쓰러져있는 그녀에게 어떤 남자가 묵직한 무언가를 던지며, 침을 뱉었다. 그녀는 남자의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털더니 일어나 자리를 떴다. 그는 그녀의 행동에 재밌음을 느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다시 자신의 노란 주머니를 내려보곤 오른손으로 만졌다. 부드러운 감촉이다. 그는 머리를 들어 물을 마신 다음 쓰레기를 버리곤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경찰서 앞으로 가서, 자신을 밀쳤던 사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가 수십 분을 기다리자, 사내가 '씩씩' 거리면서 나왔다. 그는 일부러 노란 주머니를 흔들면서 그의 앞을 지나갔다. 사내는 그를 바라보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그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당신 미쳤어요?"

그는 사내를 쳐다도 보지 않고. 다시 뒤로 돌아 사내 앞을 일부러 지나쳤다. 사내는 화가 났지만, 방금 경찰서에서 나왔기에 일단 참았다. 사내는 공원으로 향했다. 그도 따라갔다. 사내가 의자에 앉자, 그가 사내 앞을 왔다 갔다 했다. 사내는 멍하니 그의 노란 주머니만 쳐다봤다.


(4)

옷을 털고 일어난 그녀는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는 방금까지 카페에 있던 사람 몇몇이 벤치에 앉아있었다. 공원을 둘러보던 그녀의 시선에서 노란색 큰 주머니를 매단 남자가 같은 자리에서 오가는 것을 봤다.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정확히는 공원에서 가장 정중앙에 위치한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아까 카페에서 처럼 마이크를 꺼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정말 형편없으 정도로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최선을 다해 불렀다. 공원의 사람들은 볼멘소리를 내며 자리를 떠났다. 그중 카페에서 그녀를 피해 공원으로 온 사람들은 일부러 그녀 앞을 지나며 욕지거리를 퍼붓고는 공원을 빠져나갔다. 노란 주머니를 허리에 매고 있는 남자는 노랫소리가 들리자 무의식적으로 그쪽을 쳐다봤다. 그의 앞에 있는 사내도 그녀를 쳐다봤다. 사내는 귀를 막았지만, 그는 노랫소리에 흘리기라도 한 듯이 한참을 멍하니 그녀만 바라봤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사내는 이 때다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뛰어서 공원을 빠져나갔다. 뛰는 동안에도 그가 자신을 따라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연신 뒤를 돌아봤다. 다행히 그는 쫓아오지 않았다. 사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내 질렸다는 표정을 짓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5)

사내는 오랜만에 집 밖을 나왔다. 노란 주머니를 매달고 다니는 남자 때문에 경찰서에 간지 꼬박 일주일이 지난날이었다. 사내는 공원으로 향했다. 바깥공기는 집안의 그것보다 신선하고 좋았다. 특히, 공원 벤치의 나무향은 저절로 웃음이 나게 했다. 하지만 사내는 곧 이상함을 느꼈다. 공원에 사람이 없었다. 지금 시간이라면 꽤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서 간단한 점심을 해결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내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시선에 공원 중앙 벤치에 노랜 색 주머니를 매단 남자가 같은 자리에서 왔다 갔다 거리고 있었고, 그 앞에는 어떤 여자가 지난번처럼 시끄럽게 노래를 하고 있었다. 마침 사내가 공원에 도착해서 앉을 때까지는 쉬는 시간이었었나 보다. 그녀는 열심히 노래했고, 그는 열심히 그녀의 앞을 왔다 갔다 했다. 사내는 그들을 보고 질리는 표정을 짓고는 그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길래 저리 행동할까 라는 의문을 머릿속에 띄웠다.


(6)

그녀가 노래했다. 그가 왔다 갔다 했다. 사내는 그들에게 다가가 그녀의 마이크를 빼앗았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았다. 아마 이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내가 그녀에게 마이크를 뺏어 집어던졌다. 노란 주머니를 매단 남자는 사내를 보고는 '쿡쿡'거리며 웃었다. 사내는 그에게 달려가 그의 뺨을 때렸다. 그는 그때처럼, 핸드폰을 켜고 사내를 신고하려 했지만, 사내도 이번에는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았다. 그의 핸드폰을 빼앗아 바닥에 던지고는 발로 밟았다. 그는 처음으로 당황하는 표정을 지으며, 사내를 쳐다봤다. 이번에는 그녀가 '쿡쿡' 거리며 웃었다. 사내는 그 둘이 같은 편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서로의 행동에 질려버렸음을 알아차렸다. 사내는 핸드폰을 밟으며, 하늘을 바라보곤 미친 듯이 웃었다. 어쩐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그들은 가지고 있다고 느껴버렸기 때문이다.


(7)

노란 주머니를 매단 남자의 얼굴은 사내의 주먹에 의해 곤죽이 되었고, 노래를 부르던 그녀의 마이크는 사내가 발로 밟아 두 동강이 난 채로 아무 데나 굴러다녔다. 공원 관리인이 순찰 중 남자를 때리던 사내를 붙잡아, 그는 잠깐의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사내는 곧장 경찰에 연행됐다. 그리고 다음날 '공원 무차별 폭행'이라는 기사와 함께 눈이 모자이크 된 사내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뉴스에 실렸다. 사내는 집에서 그 뉴스를 한참을 보며, 미친 듯이 웃었다. 그때, 경찰에 출석하라는 형사의 연락을 받고는 웃음을 멈추고 겉옷을 챙겨 쓸쓸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앞에는 그녀와 그가 사내를 보며 '쿡쿡' 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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