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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대학교 학생회(完)

by 길거리 소설가

내가 학생회장의 연락을 받은 건, 늦은 점심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긴급한 사안이 있기 때문에 오후 4시에 학과사무실에서 회의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였는데, 전화 건너 회장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니, 최근에 발생한 어떤 일이 하나 떠올라 한숨이 나왔다. 한 달전, 학생회에서는 학생들의 독서를 독려하기 위한 작은 이벤트를 마련했다. 도서관에서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책을 대여한 학생에게 현금 100만 원을 주고, 차례로 2~5등의 학생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상품을 나눠주기로 했다. 그런데, 별다른 제약을 걸어두지 않았기 때문에 사달이 났다. 그저께, 나온 발표에 따르면 독서왕 이벤트에 참여한 학생 중 1등이 무려 1,000권의 책을 대여했다. 2등은 950권, 3등은 927권, 이런 식으로 1등부터 5등까지 총 3,000권 이상의 책들을 대여했다. 우리 대학은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전자책으로도 대여가 되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 당연한 소리지만, 저들이 책을 읽었을 리 만무했다. 정말 성실히 한 권 한 권 책을 읽은 학생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치를 떨었다. 내 친구도 그들 중 하나였는데, 한 달 동안 무려 10권의 책을 읽어 자신이 못해도 5등 안에는 들을 수 있을 거라 자신했었지만, 결과를 보고는 허탈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아무튼 나 같은 말단 임원까지 긴급하게 소집하는 모습을 보니 회의는 또 얼마나 길어지고, 고성이 오갈지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미 수업도 끝난 마당에 카페에서 적당히 책이나 읽다가 집에 가서 푹 쉬려 했지만,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임원이라는 감투를 썼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드려야 한다는 마음에 읽고 있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다시 가방에 넣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카페를 나서자, 여름 길목 특유의 꿉꿉한 바람과 마주했다. 며칠 전, 일기예보에 곧 장마가 온다더니 정말인가 보다. 발을 몇 걸은 띠지 않았음에도 이마에는 땀이 맺히고, 등은 젖어갔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나로서는 벌써 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기다려질 뿐이다. 아무 생각 없이 한 걸음씩 걸어 나가자, 학과 사무실에 금세 도착했다. 시계는 3시를 넘기고 있었고, 후배 몇 명이 앉아서 담소를 나눌 뿐, 학생회 임원은 없었다. 후배들은 나를 보더니 인사를 하곤 저들끼리 쑥덕거리다가 학과사무실을 나갔다. 아직은 어색할 테지. 아무도 없는 학과사무실에 덩그러니 앉아 책이나 볼지 생각하던 중에 선배이자, 학생회 부회장인 영수 선배가 학과사무실로 들어왔다.

“태수 와있었구나, 일찍 왔네. 오늘 회의는 4시라고 했지?”

“네, 맞아요. 형. 형도 일찍 오셨네요”

“너 되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잘 지냈어?”

그도 그런 것이 나는 말단 임원이라 회의는 잘 참석하지 않았고, 이번 학기에 전공수업보다는 교양수업 위주로 시간표를 맞추다 보니, 학과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없었다.

“요즘, 교양수업을 많이 들어서, 자주 못 마주쳤나 봐요. 형은 좀 어떠세요?”

“요즘 머리 아프다. 너도 알고 있지? 오늘 왜 회의하는지?”

“네, 1학년 과대표한테 대충 들었어요”

나는 찹찹한 듯이 손을 오므리고, 고개를 떨궜다. 영수 선배는 망설이다가 내게 물었다.

“2학년 애들은 이번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네가 2학년 과대표니까 대충 감이 올 것 아니야?”

“글쎄요. 아무래도 제가 과대표다 보니까 제 앞에서는 말을 좀 아끼는 것 같아요. 하지만 확실한 건 여론은 좋지 않습니다”

부회장은 고심하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저었다. 부회장과 내가 이번 사안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학생회 임원들이 한두 사람씩 학과사무실에 도착했다. 우리 학과는 학생 250명 정도로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최근에 정부에서 소위 말하는 밀어준 과가 되어, 3, 4학년 편입, 전과생들이 많이 늘어난 상태였다. 그래서 1학년, 2학년보다 3학년, 4학년이 더 많은 기이한 구조를 띠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학생회도 3학년 과대표와 4학년 과 대표가 힘이 있었고, 1, 2학년 과대표들은 상대적으로 힘을 못 쓰는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회장을 제외하고 모두 모인 각 학년 대표와 총무나 부회장 같은 임원들도 모두 도착해서 저마다 자기 자리에 앉아 침묵했다. 특히, 이번 일을 주도한 부회장은 아무 말 없이 창 너머 산을 보고 있었다. 회장이 도착했다. 회장은 애써 밝은 척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의 표정도 그리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회장이 상석에 앉아 모두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오늘 긴급하게 회의를 소집한 이유는 아마 다들 알고 있으리라 봅니다”

모두가 침묵했다. 회장이 말을 이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까,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의견들 있으면 줘보세요”

회장의 말에 3학년 과대표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여론이란 건 금세 잠잠해질 겁니다. 그냥 무시하시죠. 저희가 뭐 크게 잘 못 한 것도 아니고요”

4학년 과대표도 3학년 과대표 말에 맞장구치며 말했다.

“맞습니다. 어차피 다 잊을 일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걸 학생들이 안다면 그건 그거대로 혼란이 올 거예요. 무대응이 최선이라고 봅니다”


말을 마친 4학년 과대표는 안경을 추켜세우고, 입맛을 다셨다. 4학년 과대표는 회장 자리를 노렸으나, 지금 회장보다 능력이 한참 못 미치고, 정치적인 기반이 없던 터라 상대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보다 1년 후배인 3학년 과대표의 도움으로 4학년 과대표가 될 수 있었다. 3학년 과대표는 애초에 2학년 때, 전과한 타과생이었는데 특유의 입담으로 이적생임에도 당시 2학년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바 있다. 그러다 결국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듯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꼭 자신의 학년에 모든 이익을 대변해 줄 것처럼 간이고 쓸개로 빼가며 2학년 생활을 하더니, 3학년 과대표가 되자마자, 자신의 이익이 아닌 남의 이익을 대변했다. 그의 능수능란한 화술과 세 치 혀는 그를 배불렀다. 학과에는 분기마다 지원금이 나왔다. 각 학년의 학생 수에 비례해서 나왔는데, 250명 중 100명이나 되는 3학년이 그중 가장 많은 지원금은 250만 원가량을 받았다. 물론, 이 돈은 모두 3학년 과대표 손에 들어갔고, 한 번 들어간 돈은 다시 나올 줄 몰랐다. 그는 모든 원성을 무시로 일관하며 자신의 배를 불리다가, 여론이 극악에 달할 때만, 김밥 같은 것을 사서 달래는 식이었다. 3학년들 모두 다 알고 있지만, 워낙 그가 정치질에 능해서 까딱 자신이 입을 잘 못 놀려 3학년 과대표에게 밉보였다가 학교생활이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3학년들은 3학년 과대표가 베푸는 김밥 한 줄의 아량에 만족해야만 하는 처지였다.


3학년 과대표는 계속 거드름을 피우며, 이런 회의는 쓸모없다는 투로 빈정거렸다. 누군가는 나서서 말해야 했다. 그때, 1학년 과대표가 입을 열었다.

“저기 제가 한말씀 올려도 될까요?”

3학년 과대표는 1학년 과대표를 슬쩍 보더니 비웃으며 읊조렸다.

“참, 개나 소나 말하네”

3학년 과대표의 태도에 회장이 그에게 눈물을 흘리며, 1학년 과대표에게 말했다.

“여기는 임원 회의니까 편하게 말해도 됩니다. 소영 시 이야기하세요”

1학년 과대표는 조금 주눅이 들어 보였다. 그럼에도 얘기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우리는 학우분들에게 사과 후 이벤트를 없던 것으로 하고, 다시 내용을 정비해서 진행하는 건 어떨까요? 사실 어제, 1학년 학우들과 관련 논의를 했고, 거기서 나온 의견입니다”

3학년 과대표가 분개했다.

“뭐? 물러? 그렇게 애들 하나하나 말 다 들어주면서 어떻게 학과를 운영하지? 어린놈들이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먼, 이미 당선된 사람들은 순순히 받아들일까? 학과 운영이 장난인 줄 알아? 이번 이벤트는 얼마나 책과 친해질 수 있냐에 포인트가 맞춰진 이벤트였어, 그냥 그대로 시상하고 다음에 할 때 좀 보완하면 될 것을 뭘 무르고, 사과를 해?”

그가 말 같지도 않은 궤변과 함께 소리를 지르자, 어린 1학년 과대표는 아무 말 못했다. 사실, 1학년 과대표의 말이 정답이었다. 실수가 있었으면, 바로잡으면 됐다. 하지만, 여기서 3학년 과대표의 이해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다들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대회 1등부터 5등까지 모두 3학년 과대표와 친구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부회장이 제안하면서 이런 일을 걱정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사태에 대비해 ‘독후감’을 증빙으로 첨부하거나, 하루에 대여할 수 있는 권수를 제안하자고 말했지만, 3학년 과대표에 의해 무시됐다. 그가 거느린 3학년 왕국이 견고함을 알기에 회장조차 그의 말을 무시 못 했었다. 나는 3학년 과대표의 태도에 더 이상 침묵만이 답“이번 일을 전적으로 1학년 과대표의 말이 옳다고 봅니다. 기획부터가 잘못된 이벤트입니다. 사과도 해야 하고, 물러야 합니다”

내 옆으로 펜이 날라왔다. 보나 마나 3학년 과대표가 던졌다. 그는 내게 눈을 부라리고 씩씩거리며 말했다.

“1학년 2학년 쌍으로 아주 난리 났네, 뭘 자꾸 사과하래? 너네도 그렇게 하지 그랬어? 이미 끝난 일을 가지고 몇 명이 조금 떠든다고 우리가 물리면, 학생회의 권위는 어떡하게? 이렇게 한 번 수그리고 들어가면 쭉 수그리고 들어가야 한다는 거 몰라? 여기가 무슨 총원 20명 있는 동아리인 줄 알아? 너희가 정치에 대해 뭘 안다고 떠드는 거야?”

부회장과 회장은 3학년 과대표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들도 이번 일을 묻어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애초에 오늘의 회의는 대책 회의가 아니라, 1학년과 2학년을 무력으로라도 이해시키게끔 하려는 회의임이 분명했다. 어차피 1학년, 2학년들에게 욕을 먹을 대상은 저들이 아니고, 우리니 말이다. 그 점을 이해하자 나는 더 참을 수 없었기에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이벤트에서 1등부터 5등까지 모두 3학년 과대표님 친구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도대체 3학년 과대표님은 학과를 위해 일하시나요? 아니면 제 식구들 배를 불리려고 일하시나요? 여기 계신 임원분들 어디 말 좀 해보세요”

내가 일어서서 강하게 말하자, 옆에 앉아 있던 1학년 과대표가 내 손을 잡더니 앉으라며 걱정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말을 이었다.

“도대체 한심해서 못 살겠습니다. 독서왕 이벤트는 학생들 책 읽기 독려 프로젝트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언제부터 누가 더 많이 책을 빌리는 대회로 전락한 겁니까? 3학년 과대표님의 말은 완전한 궤변입니다. 저는 이 사태를 정리해서 직접 교수님께 전달하겠습니다. 2학년 애들 모두의 이름으로 말이죠. 그러니 알아서 하세요”

회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아마도 차기 조교에 가장 근접한 자신이 이번 사태로 인해 구설에 오른다는 것에 부담을 느낀 모양인지, 나를 달래려 들었다.


“태수 씨 잠시 앉아봐요. 그렇게 감정적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닙니다. 누가 당선을 했던 이미 당선자가 나왔기 때문에 물리기보다는 조금 더 학생들을 달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사실 이번 회의도 그러므로 내가 긴급 소집한 겁니다. 그리고 굳이 교수님께서 우리 학생회 일에 관여케 하는 건, 이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학과의 학생회는 자주적이고, 독립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작은 사고로 교수님들이 신경 쓰기 시작한다면, 앞으로 학생회는 제 기능을 못 할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죠?”

일단, 나는 참고 앉았다. 그러자 1학년 과대표가 눈빛을 번뜩이더니 말했다.

“사실, 오늘 조금 크게 실망했습니다. 최소한 이번에는 학생회가 작금의 사태에 대해 사과하리라고 봤기 때문인데. 전혀 그럴 생각들이 없으신 것 같군요. 그나마 태수 오빠가 상식적이네요”

회장은 1학년 과대표를 흘리며, 말했다.

“여기는 임원회의 중입니다. 존칭 쓰세요”

1학년 과대표는 말을 이었다.

“네, 좋습니다. 회장님. 제가 어제 1학년들과 이 일에 대해서 논의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우리 1학년들을 최대한 달랬습니다. ‘곧, 학생회에서 사과하고 이벤트를 다시 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럼에도 얘들이 믿지 못하길래, 또 다른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1학년들 이름으로 성명서를 내고, 바로 교수님과 학내 일보에 알리자는 것이었죠. 그때 저도 거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작성한 대자보가 어디에도 붙여지지 않는다는 것에 믿어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 판단이 틀렸었네요”


1학년 과대표는 말을 마치더니, 전화를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더니 딱 한 마디만 했다.

“어제 이야기한 대로 진행해”

회의장은 침묵이 흘렀다. 3학년 과대표는 그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미친 사람처럼 날뛰기 시작하며, 우리에게 욕설하며, 내 멱살까지 잡았다.

“너 이 새끼 지금 우리 곤란하게 하려고 짜고 이런 거지? 그까짓 것 교수가 알고, 학생신문에 나온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이봐 착각들 하지 마, 내가 책임지고 너희 둘은 학과에서 아무것도 못 하게 해줄게, 어떻게 해줄까? 여자 문제? 아니면 부정 시험? 내가 없던 소문도 만들어서 사람 폐인 만들기가 특기인 사람이야. 네 놈들 잘 걸렸어. 내가 가용할 수 있는 애들 다 동원해서 다시는 학교에 발도 못 붙이게 할 테니까, 기대하라고”

3학년 과대표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문을 벌컥 열더니 그대로 나가버렸다. 그가 분개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4학년 과대표는 망연자실한 채 서 있었다. 그리고 이내 회장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회장은 힘없이 휴대전화를 들어 발신자를 확인했는데,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지더니 밖으로 나가 통화했다. 그리고 그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회의는 끝났고, 거기 있던 모두가 아무 말 없이 나갔다. 나는 1학년 과대표에게 물었다.

“너, 감당할 수 있겠어?”

그녀는 풋풋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빠가 도와주면요”

나는 그녀의 말에 웃지도, 울지도, 그렇다고 화내지도 않고 고개만 끄덕하고는 밖으로 나섰다.


학생 회의가 있고, 일주일 뒤 학교는 발칵 뒤집혔다. 이번 사태를 들은 교수님은 분개했고, 이 사태를 주도한 회장, 3학년 과대표, 4학년 과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번 ‘독서왕 이벤트’ 사태는 학내신문에 큼지막하게 실렸고, 지역방송국에서까지 취재할 정도였다. 그 사건을 끝으로 1학년 과대표와 나는 자리에서 자진해서 물러났다. 물론, 선배들의 협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빠르게 사건은 잊혀갔다. 사건이 지역방송국에서 취재됐을 때만 해도, 총장이 모든 학과의 학생회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예고했지만, 어느 날 말이 쏙 들어갔다. 그리고, 다른 학과들은 모든 이벤트를 없애 버렸다. 좋은 취지의 이벤트들도 분명 있었을 텐데, 자리보전을 위해 문제가 될 만한 싹을 모두 자른 다른 학과의 조치들은 씁쓸했다. 3학년 과대표는 자리에서는 물러났지만, 그 자리에 자신의 친구를 세워놓고, 대리청정하는 중이다. 이 역시 모두가 알고 있지만 쉬쉬하는 분위기다. 내년에는 아마 회장 자리에 있을 것 같다. 회장은 차기 조교(우리 과는 월급 조교를 몇 년 단위로 뽑는데, 대우가 좋아서 이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많다. 특히, 회장 경험이 있다면 거의 조교가 되는 분위기 때문에 회장으로써는 매우 아쉬웠을 것이다)는 이미 물 건너갔기 때문에 취업 준비로 인해 두문불출하고 있다. 나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조용히 학과 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됐지만, 뭐 나쁘지는 않다. 이번 경험을 통해 논리적인 근본주의적 정의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쓸모없는지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누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오빠, 뭐해요? 벤치에서, 안 더워요?”

“소영이구나, 책 보느라 더운 줄도 몰랐네”

소영이는 1학년 과대표를 내려놓고, 많이 밝아졌다. 그간 중압감에 몸서리쳤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오빠, 우리 시원한 거 먹으러 갈래요? 요 앞에 빙숫집 생겼다던데….”

“그래 가자. 내가 살게.”

나는 그냥 이렇게 살기로 했다. 몇 명 남지 않은 학과 후배 빙수나 사주면서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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