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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Jan 24. 2023

<단편소설> 노인이 묻다, 내게도 묻다(1)



※단편소설은 매주 화요일 / 목요일 업데이트 예정입니다.

※심심한 출근길 / 퇴근길에 소소한 재미를 챙기셨으면 좋겠습니다.


#1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일기예보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산을 올라 나는 낭패를 보았다. 산 중턱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그나마 커 보이는 나뭇잎 아래에 주저앉아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내가 산행을 계획한 이유는 회사를 그만뒀기 때문이었다. 지겨운 상사의 잔소리, 날 무시하던 후배들의 눈초리, 그리고 끝도 없는 일들, 아직 40대 중반에 책임져야할 가족이 있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도 못보고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내와 상의 후 큰 마음을 먹고 사표를 던지고 회사를 나왔다.      


 막상 사표는 던지고 나왔는데 너무 급했을까? 변변한 취미도 없던 나는 주변에서 ‘취미조언’을 받으며 이것저것 해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골프, 볼링, 당구 등 많은 것들을 해봤지만 딱히 흥미가 느껴지는 취미는 없었다.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TV를 보다가 등산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고는 무작정 가방을 챙겨 나왔다. 그리고 비를 맞으며 어디인지도 모를 산 중턱 나무 밑에 주저 앉아있다. 이번만큼은 흥미를 가지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시작이 너무 좋지 않다. 벌써 등산이라는 취미에 질려버렸다.  

    

날은 점점 어둑해지고, 슬슬 나와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할 가족들을 생각 할 때쯤, 내가 앉은 자리 정면으로 노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거기 누구요? 이 시간에”     

우산도 쓰지 않고, 약간은 구부정하지만, 걸음걸이는 힘차고 구김 없이 걷는 노인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르신, 제가 등산 중에 비를 만나 길을 잃었습니다. 혹시 내려가는 길을 아시나요?”     

노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야기했다.     

“지금 너무 어둑하고, 비가 오기 때문에 비를 피하고 내일 내려가는 것이 어떻겠느가? 마침 근처에 내가 기거하는 곳이 있으니 그 쪽으로 안내 하겠네”     


노인은 손짓으로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이 첩첩산중에 집이 있다니, 조금 의아했지만 지금으로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노인을 따라 나섰다. 노인을 말대로 작은 나무집이 한 채 있었다. 그 곳에 노인과 함께 들어가니, 작은 아궁이가 있는 주방이 먼저 보였고, 그 아궁이 옆에 방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집은 통나무를 겹겹이 올려, 그 사이를 황토로 메꾸어 집을 세운 듯 했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족히 70살은 되어 보이는 노인이 혼자 했다고는 감히 생각할 수 없었다.      


“어르신, 이 곳을 혼자 지으셨나요?”

“그치, 내가 혼자 지었지”

“언제 지으신 건가요?”

“한 30년 됐지”

“그럼 여기에 30년 동안 사신 건가요?”

“그건 아니네”     


 노인과의 대화를 이어가기는 힘들어 보였다. 노인의 짧은 대답 속에 나는 말을 잇지 못하였다. 노인은 비를 맞은 나를 위해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수건을 주어 내 몸을 닦게 하였다. 그리고는 노인이 직접 캔 산나물을 내어주며 주린배를 채울 수 있게 해주었다.   

   

 몸이 따듯해지고, 내가 부르니 그제 서야 노인의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천장이 낮아 좁아 보일 수 있지만, 큰 창을 내어 답답한 느낌보다는 아담한 느낌이 먼저 드는 안방에는 옛사진이 몇장이 작은 액자에 넣어있었고, 그 옆에는 올해 탁상달력과 탁상시계가 놓여있었다. 노인이 아예 이 세상과 단절해서 살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내 가족이 생각났다. 나를 걱정하고 있을 가족들에게 연락할 방법을 노인에게 물었다.     


“저기 어르신, 제가 가족들에게 전화를 좀 해야할 것 같은데 혹시 여기 전화가 되나요? 아니면, 외부와 연락할 방법이 있나요?”

“핸드폰 그런 건 안 터지고, 여기 무전기가 있네, 이 무전기로 가장 가까운 센터로 연락해서 가족들한테 전화 좀 전해달라고 해보시게 근데 그곳에 사람이 없으면 아마 연락은 안될 거야”    

 

 노인이 말한 센터는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산중턱에 드문드문있는 임시구조센터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비가 많이 내려 그 곳에서도 비상근무 중이어서 나와 연락이 닿았다. 나는 사정을 설명하고, 노인의 집에서 하루 머물고 갈 예정이니 가족들에게 연락을 부탁한다고 전달했다.      


 그렇게 가족들에게 연락도 다 하고 나니 밖은 이미 어두워져있었다. 노인의 방에는 작은 발전기만 있을 뿐, 어떠한 전기 시설이 없었다. 작은 호롱불에 의지해 고독한 밤을 버텨내야만 했다. 노인은 말이 없었다. 나 역시 어색한 공기 속에서 밖을 바라 볼 뿐이었다. 한참을 빗소리만 들리는 정적이 울렸는데 대뜸 노인이 물었다.


2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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