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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Jul 20. 2023

<단편소설> 18번째, 사형수(完)


 “신부님, 제 이야기를 한 번 들어 주실래요?”     


 일급사형수 태수는 필요한 것이 없냐는 교도관의 말에 신부님을 불러달라고 이야기했다. 접견실 안, 등을 돌아 벽을 바라보고 있는 교도관과 누구보다 편안한 얼굴로 미소를 띠고 있는 태수 그리고 태수의 요청에 의해 한 걸음에 달려온 안드레아 신부 이렇게 세 사람은 적막함 속에서 태수가 깬 외침을 들었다     


 “네, 신도님 제게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태수는 물 한 잔을 마신 뒤, 안드레아 신부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부님, 저는 올해 35살입니다. 작년에 국회의사당에서 폭탄을 터트려 25명의 국회의원을 폭사 시켰고요. 그 죄로 지금은 사형을 언도받고, 형이 집행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제게 어리시절 소중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저의 가족 이지요”     


 태수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교도관은 놀랐다. 검찰 조사에서도, 법정에서도, 심지어 교도소에서도 줄 곧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필요이상의 대화를 하지 않았던 1급 사형수가 지금은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는 점이 의아하고 신기했다.      


 “제 가족은 제 위로 누님 한 분과 아버님, 어머님이 계신 흔한 4인 가족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를 돌아보면 너무 평범한 가정이라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를 정도네요. 그런데 그 평범함이 음주운전자 때문에 모든 것이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태수는 목이 마른지 이야기 중에 연거푸 물을 마셨다.      


 “그날은 누님의 피아노 대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그냥 고열이 나는 바람에 할머니집에 맡겨져 누워있었고, 부모님은 피아노 대회가 끝난 후, 누나와 함께 저를 데려오기 위해 할머니 집으로 오는 길이었습니다. 그 때, 하필이면 만취한 운전자가 우리집 차를 들이 박고 도망 가버렸습니다. 부모님과 누님은 현장에서 즉사했습니다” 

 “태수씨에게 그런 일이 있었군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안드레아 신부는 태수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위해 기도를 했다. 잠깐의 기도를 마친 후, 태수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사실, 우리 집은 돈이 많았고 할머니도 저를 끔찍이 아껴주셨기 때문에 금전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크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 가족을 비극으로 몰아넣은 그 운전자에 대한 복수는 점점 커져갔습니다. 다행히 그 운전자는 금세 잡혔습니다. 하지만 음주 뺑소니로 잡히지 않고, 연쇄 살인범으로 잡혔습니다. 15명의 남녀를 단기간에 살해한 악명 놓은 악질 로요”     


  태수는 손을 떨며 감정을 주체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 놈은 사형을 언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의 17번 째 사형수로 말이죠. 신부님 혹시 이 거 아시나요?”     


 태수는 이야기를 하는 중에 안드레아 신부에게 질문을 했다.   

  

 “무엇을 말입니까?”

 “우리나라는 사형제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한 번도 사형에 대해 형읍 집행 한적이 없죠. 인권단체가 난리를 치는 통해 지금의 사형수들은 그냥 무기징역이나 똑같습니다. 그 17번 째 사형수도 편하게 감빵에서 먹고,자고,놀면서 곱게 죽을 준비를 했을 겁니다”

 “아 그런가요? 저는 몰랐습니다”


 태수는 안드레아 신부의 답변을 듣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 놈이 죽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안드레아 신부는 태수의 눈에서 광기를 찾았다. 그의 이야기는 점점 더 무서워지고, 과격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답을 찾았습니다. 18번째의 사형수가 꼭 죽어야만 하는 사형수라면? 사형수들은 형집행을 순차적으로 하니까, 18번째의 사형수가 죽어 마땅한 놈이라면 그 앞에 놈들은 다 죽지 않을까?”     


 태수는 흥분하며 침을 튀며 이야기하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흥분을 멈춘 채 부드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결론적으로 제가 꼭 죽어 마땅한 18번째의 사형수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동을 납치할까? 아니면 똑같이 연쇄살인을 저지를까? 이렇게 다양하게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지금 1번부터 17번 까지 모두 다 그런 부류의 놈들인데도 형이 집행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사법부를 움직여서 사형을 받을 수 있을 만큼의 잘 못이 무엇이 있을까? 몇날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태수의 질문에 정답을 알고 있는 안드레아 신부는 눈을 질끈 감고 속으로 기도했다. 

     

 “신부님도 잘 아시다 시피, 저는 25명의 현직 국회의원을 폭사시켰습니다”

 “신도님,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제게 그 이야기를 하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태수는 다시 편안해진 얼굴로 안드레아 신부를 향해 답했다. 


 “이런 저도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태수의 뜻밖의 고백에 접견실 안의 공기가 다시 무거워 졌다. 하지만 이내 안드레아 신부가 그 무거운 공기를 깨고 입을 열었다.      


 “신도님, 제가 신부가 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형수를 위해 기도해주는 일을 하는 것도 우연이지요. 신도님을 만나는 것도 우연이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제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을 폭사 시킨 사형수를 대면하는 것도 우연이겠지요? 불교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우연도 겹치면 필연이라고, 어쩌면 신도님과 저는 필연적으로 만날 수 밖에 없었을지 모르겠네요”     


 태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시종일관 뒤를 돌아보고 있던 교도관도 안드레아 신부가 돌발행동을 하지 않을 까하는 걱정에 앞 쪽을 바로 보았다.     

 

 “신도님, 저도 여기에 오기까지 칼을 챙길지, 십자가를 챙길지 수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둘다 가져오게 되었지요”     


 안드레아 신부는 태수 앞에서 자신이 가져온 칼과 십자가를 내려놓았다. 교도관은 당황하여 칼을 수거하려 하였으나, 안드레아 신부가 제지하며 잠시만 놓아 둘 것을 요청했다. 태수는 빤히 칼과 십자가를 번갈아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도님, 오늘 신도님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습니다. 그간 계속된 묵비권으로 인해, 속을 알 수 없어 왜 25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폭사시켰는지에 대해 막연히 궁금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복수’때문이 었군요. 그저 자신의 ‘복수’를 위해 아무 죄없는 사람들을 죽인 것이었어요”    

 

 태수의 침묵이 길어졌다.     


 “저는 신도님처럼 어리석지 않습니다”   

  

 안드레아 신부가 책상 위에 놓인 칼을 다시 가져갔다. 책상 위에는 십자가만 남아있다.    

  

 “그래서 저는 복수를 하지 않겠다고 지금 다짐했습니다. 계속되는 복수는 다른 복수를 낳을 뿐입니다. 오늘 여기서 우리는 복수의 악연을 끊어야합니다. 저는 신도님을 위해 기도할 겁니다. 자신이 천국에 갈 수 있냐고 물으셨죠? 물론이죠. 진심으로 뉘우치고 참회해주시면, 그 분도 맞이해 주실 겁니다”     


 태수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신도님, 하나만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제가 평생을 알지 못할 문제가 신도님께서 답을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태수는 울다가 안드레아 신부의 질문에 끄덕였다.      


 “복수하면 기분 이 어떠십니까? 정말 마음이 편해지나요? 17번 째, 사형수는 어제 형장에 이슬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태수는 울음을 멈추고 안드레아 신무에게 대답했다.      


 “아니오. 제가 죽인 25명의 사람들이 매일 같이 저를 괴롭혀요. 정말 무섭습니다”  

   

 안드레아 신부는 그런 태수를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주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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