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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Aug 10. 2023

<단편소설>P와의 대화(完)


 내가 P를 만난 건, 아무 특별할 일 없는 어느 날의 한적한 헌책방이었다. 나는 그날도 두보의 시집을 찾기 위해 헌책방에 들렀다. 3평 남짓, 그 중에서도 절반은 책방 주인이 꾸벅꾸벅 졸기위해 만들어 놓은 공간이었다. 그런데 그 곳의 손님은 나 뿐 만이 아니었다. 그 비좁은 책방에서 작은 안경을 겨우 코에 걸친 채, 먼지가 자욱하게 쌓여 있었을 것 만 같은 책의 책장을 이리저리 넘기는 백발의 P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P라고 소개했다. 내가 왜 많은 알파벳 중에 ‘P’를 선택했냐고 하자, 그는 내게 이렇게 대답했다.      

 “내 이름 따위에 의미를 찾는 것을 보니 너도 그냥 쓸모없는 놈이구나, 그냥 받아드려라”     


 육안으로 봐도 내가 나이가 한 참 어리기 때문에 ‘P'의 반말은 이해했지만, 의미를 찾는 행동이 쓸모없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못했기에 나는 P에게 반발했다. 그러자 P가 이야기했다.      


 “너는 왜 태어났고, 숨을 쉬냐? 애초에 그런 것들을 매일 같이 생각하면서 사냐?”     


 나는 P의 저돌적인 대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태어나는 것, 숨 쉬는 것들은 모두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내용들이었다. 나도 지기 싫은 마음에 P에게 반박할 내용들을 머리에 정리를 했다. 그리고 말하려는 찰나, P가 내 대답도 듣기 전에 본인의 생각을 덧붙였다.      


 “세상은 우연이 만들어졌고, 너도 우연의 산물이고, 우리도 이렇게 우연히 만나지 않았는가? 그리고 앞으로도 우연함의 연속이니, 사는데 너무 각박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P는 내게 처음으로 존대를 했다. P의 말을 듣고 보니, 그에게 해야 할 무수한 반박들이 머릿속에만 맴돌 뿐 입으로 뱉어내지 못했다. P라는 사람은 단순히 ‘특이하다’로 정의되지 않았다. 그의 말 속에는 뼈가 있었고, 나를 깨우쳐줄 울림이 있었다. 나는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 그에게 저녁식사 대접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는 나의 호의가 부담스러웠는지, 단칼에 거절했다.      


  식사를 거절한 P는 내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그가 들고 있는 책에 집중했다. 나도 그를 따라 아무 책이나 집어 들고 선 그처럼 책을 읽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다시 그를 봤지만, 그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다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근처에 제가 잘 아는 커피 집이 있는데, 커피 한 잔 대접 해도 될 까요?”     


 P는 나를 한 번 쳐다볼 뿐, 아무 댓구도 하지 않고, 손을 저으며 말했다.      


 “나는 당신한테 뭘 해준 게 없는데, 왜 자꾸 내게 뭘 해주려하나? 나는 그런 대접은 사양이다”     


 두 번의 거절, 딱딱한 말투. 아무리내 내가 붙임성이 좋다고 해도, 세 번은 이야기하지 못했다. 나는 읽던 책을 자리에 꽂아두고는 아무 소득 없이 책방을 나왔다. 거리는 이미 어둑해졌다. 배고픔에 이끌려, 양재동에 자주 가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파는 카페에 들어갔다. 그 샌드위치 가게에서 가장 맛있다는 호잇테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는 P와의 대화를 상기했다.      


 P의 말대로 모든 것이 우연이라면, 나와 P가 만난 것도 우연이겠지?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더 볼 수 도 있겠지? 잠깐의 강렬함이 꺼져가는 촛불의 그것과 같았다. 나는 언젠가 P와 우연히 만날 날을 기약하며, 야채와 햄, 베이컨이 어우러진 샌드위치를 입속에 넣고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생각했다.      


 ‘내가 여기서 샌드위치를 먹는 것도 모두 우연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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