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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경숙 Mar 09. 2023

봉숙아 봉숙아(2)

과거 

 2과거     


배경 1983년도 경상도 마전리 뱀골마을.


마전은 글자 그대로 삼밭이다. 

지형이 남쪽을 제외한 삼면이 오목하게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되어 있어 바람세가 적고, 

땅이 기름져 예부터 삼을 많이 심어 주 생업으로 했으므로 마전이라 이름하였다.  

뱀골마을 어귀,  낡은 가로등 아래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바위에 걸터앉아 있다.

봉숙이, 손에 통지표를 들고 나타나 남학생 옆에 앉으며 투덜거린다.   

   


봉숙         아~ 진짜 미치겠네…… 이거를 우째 보여 주노……. 


수철         와? 무슨 일 있나? 와 카는데?


봉숙         이기 다 오빠야 니 때문이다. 니 연애편지 써 준다꼬 공부를 모했다 아이가.


수철         지랄한다. 그기 와 내 때문이고.

공부는 평소에 해야 되는기제 벼락치기로 

몰아 한다꼬 그기 되나?


봉숙         벼락이고 천둥이고 아부지한테 내가 벼락 맞게 생깄다.


수철         너거 아부지가 그래 무섭나? 


봉숙         몰라. 내 쫓기나믄 오빠야가 책임져라.


수철         가시나. 내가 와 니를 책임지노. 미친 소리 하지 마라.


봉숙         요~ 봐라 봐라…… 화장실 들어갈 때하고 나올 때 다르다 카디 인제 편지 안 써 줘도 된다 이 말이제.


수철         안 써 줘도 된다. 


봉숙         (당황해하며) 안 써 줘도? 그 언니야가 만나 준다 카드나……  얘기 좀 해 봐라. 

반은 내공이다 아이가.


수철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이렇게 좋은 날엔 이렇게 좋은 날엔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송이.   


봉숙        그기 무슨 김밥 옆구리 터지는 시고, 오빠야가 적었을 리는 없고 또 누고?

발로 써도 그것보다는 낫겠다.


수철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는 니가 한다. 무식하기는. 〈꽃밭에서〉 정훈희 모르나?


봉숙         꽃밭에서 우예 됐는데?


수철         부산의 가수 정훈희…… (얼버무리며) 말을 말자. 됐고, 니 통지표 걱정이나 해라.


봉숙         아 통지표. 미치겠네. 아…… 있어 봐라. (가방에서 볼펜을 꺼내서 성적을 고친다) 


수철         야가~ 어데서 못된 짓만 배워가. 


봉숙        아부지 시력이 나쁘다 아이가. 뭐 어른을

속이는 기 잘하는 짓은 아니지만, 아부지 심정

상하게 하는 거보다 기분 좋게 맹글어 드리는 기

효도라 그 말이제.  


수철         둘러치기는. 고마 들어가라. 가서 아부지

한테 아양도 좀 떨고……   나는 공사가 다망하시가

이만 퇴청해야 쓰겠다. (일어선다)


봉숙         오빠야! 잠깐만 있어 봐라!


수철         바쁘다 카이. 와?


봉숙         다음 주 오빠야 생일이제. 누구누구 초대할 껀데? 초대장 돌릴 꺼면 내가 만들어 주고.


수철         일단 니는 없다.


봉숙         뭔 소리고? 우리가 언제 불러야 가는 

사이가.  부르기도 전에 가가 음식도 날라 주고

자리도 세팅해 주고. ‘척’이면 ‘착!’ ‘착’이면 ‘척!’ 


수철         (앉으며) 니 함부래 올 생각하지 마라!

왔다카모 오빠고 동생이고 다시는 안 볼 줄 알아라!


봉숙         그 카이까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야겠다. 


수철         니 아랑드롱 나오는 영화 책받침 갖고 싶다 캤제. 구해 주께. 


봉숙         〈태양은 가득히〉. 


수철         있다.


봉숙         〈조로〉.


수철         빙고!


봉숙         〈시실리안〉.


수철         와우!


봉숙         이소룡 〈용쟁호투〉.


수철         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고. 아랑드롱에서 와 갑자기 이소룡이 등장하노.


봉숙         취향이 바낐다.


수철         카지 말고 다음에 맛있는 거 사 주께. 탕수육에 짬뽕 곱빼기 쏜다. 


봉숙         팔보채에 간짜장 곱빼기!


수철         (손을 들어 올리며) 칵! 마~.     


봉숙 눈을 치켜뜬다.    

 

수철         단무지도 곱빼기로 시키 주께.


봉숙         짬뽕 곱빼기 추가. 


수철         (고분고분) 그래~ 뭐 더 먹고 싶은 거 없나? 


봉숙         만두 서비스에 음료는 콜라 하나, 사이다 하나.


수철         음…….


봉숙        (가방을 챙겨 일어서며) 생일날 못 볼 거 

같으이까네. 미리 생일 축하하께. 

(돌아서서 갑자기 볼에다 뽀뽀를 하고 도망간다)


수철        (놀라서 당황해하며) 야! 저기~…… 저 생쥐만 한 기…….      


뽀뽀한 볼을 살짝 만져 보며 히죽거린다. 


무대 어두워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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