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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작정고전소설읽기 Sep 19. 2024

추억

4번째 주제

1)


오늘도 평상시처럼 카페에서 작업을 하는 22살 관수에게는 늘 관심 가는 한 남자가 있다 

그 사람은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어느 남성, 6개월 동안 카페에서 작업하는 관수에게는 항상 궁금한 사람이다. 줄곧 한 자리에서 계속 앉아 아이스아메리카노 2잔을 시켜 2시간 동안 멀뚱이 앉아있다가 한잔은 얼음까지 다 먹고, 얼음까지 다 녹은 남은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은 당연하다는 듯이 버리고 가는 어느 한 사내이기 때문이다. 항상 정장을 입은 채로 카페가 문연지 1시간 만에 들어오고 만약 자리에 누가 있다면 정중하게, 혹은 협박하는 식으로 자리를 비켜달라고 부탁 아니, 애원할 정도로 그 자리를 집착하는데 2시간이 지나면 주저함 없이 자리를 떠난다.

"아이스아메리카노 2잔 주세요"라고 말하고 그는 오늘도 정해진 그 자리에 앉는다.  

"오늘도 누구 기다리시나요?"

처음으로 말을 건네어봤다. 너무 궁금한 나머지, 순수한 의미로 그냥 그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그의 얼굴은 붉어지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런 게 있어요 신경 끄세요"

매정하게 나오는 그의 태도를 보고 당황하긴 했지만, 어찌 보면 그것이 오지랖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냥 넘어가고 옆에서 그냥 작업을 했다

그리고 2시간이 다 흘러갈 때쯤, 관수는 그가 오늘도 똑같이 다 녹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버리러 갈 줄 알았다.....

(쨍그랑!)

그가 갑자기 일어나 책상을 엎으며 일어난다.

"온다고 했잖아 왜 안 오는데! 사람들이 물어보잖아!!! 왜!..... 안 오는데!"

주머니에 있는 웨딩 사진 같은 것을 꺼내면서 소리를 친다. 관수는 화들짝 놀라 그가 있는 자리로 달려가서 상황을 정리한다. 당황한 종업원을 보면서 자신이 청소하고 비용을 다 낼 거라고 종업원에게 말을 한다. 어느 정도 정리가 다 됐을 때쯤 그 남성은 관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다.

"죄... 죄송합니다... 진짜 죄송합니다..."

라는 말과 함께 의자에 앉아 절망하는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본다. 관수는 그를 부축해서 카페 구석으로 그를 데려가 물을 건네어주면서 그와 같이 자리에 앉는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런 힘 빠진 상태에서도 들고 있는 웨딩사진, 그리고 그 사진 안에 있는 그와 누군지 알 수 없는 어느 여성을 보면서 관수는 어느 정도 그의 사정을 이해했다.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사람 진짜로 중요하신 분인가 봐요"

관수는 물을 가볍게 마시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 남자는 사진을 한번 보더니 떨리는 손을 내밀면서 관수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말을 한다.

"저는 기수라고 합니다... 그냥 와이프 기다리고 있어요, 오지는 않지만, 오기만을 바라고 있는..."

관수는 다 이해한다는 마음으로 끄덕였다. 더 이상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저, 그 사람이 말한 그 한마디가 얼마나 그에게는 큰 힘듦이고 상처였을지 그 무게감을 느꼈을 뿐이었다.


2) 

관수는 기수에게 어떠한 것도 자세하게 물어보지 않았다. 그 사람의 현재의 상황, 모습 그런 것을 다 이해한다는 말투로 그와 계속 대화를 했다. 

"그냥...  계속 생각납니다... 그녀와 함께 했던 기억들이, 그리고 그것을 함께한 것들이 근데, 그것이 다 괴로운 기억들이에요. 차라리 안 만났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괴로운 기억들이네요.."

"그렇게 소중한 분인데 차라리 안 만났으면 싶다고요?"

"네, 저에게 남겨진 기억들은 그냥 괴로운 고통스러운 일들이에요. 기억하면 기억할수록 다시 못 만난다는 것에 대한 허탈함, 회의감만 들뿐이죠."

관수는 차라리 안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그에게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했고 삶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했는지 이해했다. 그리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항상 생각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뭘 해도 그 사람이 떠오르고 그 사람이랑 했던 것이 떠올라요, 단순히 사람이 없어진 기분이 아니라 내가 항상 입고 있던 옷이 없어진 기분이에요 늘 같이 있어야 하는 것이 없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다시는 못 본다는 괴로움...."

관수는 그의 말을 이해는 못 했지만 그의 고통은 이해한다는 듯이 끄덕였다. 


3)

"혹시,,,, 차 있으세요?"

기수는 조심스럽게 관수에게 물어봤다

"네 있습니다."

"미수꽃 납골당..... 거기까지 데려다주실 수 있으신가요..."

관수는 잠깐 고민을 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내가 이렇게까지 신경 써줘야 할지, 그리고 내가 이 사람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 맞는지 한참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 만약 이것을 거절하고 자신의 길로 가면 평생도록 머릿속에 남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승낙하고 기수를 차에 태웠다.

10분밖에 안 걸리는 짧은 거리, 그러나 조수석에 태운 그의 표정은 마치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것 같은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처음 가시나요?"

관수는 혹시나 하고 물어봤다

"당연하죠! 거기는 그냥 나중에 아내가 죽으면 안치시킬 곳이거든요 당연히 갈 일이 없죠"

관수는 그가 아직 그녀의 죽음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시인했다.

'믿기 힘들구나, 납득하기 힘든 거구나.'

더 이상 기수에게 묻지는 않았다.


4) 

납골당을 도착한 기수의 발걸음은 마치 당연히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확신이라는 듯한 발걸음이었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1층 바로 앞에 있는 아무것도 없는 칸 속에 홀로 있는 웨딩사진 속 있던 여성.... 그리고 적혀있는 '1990~2022년'

"..... 하하! 여기 있었구나... 어쩐지... 그래! 계속 그렇게 기다려도 안 오더라!... 진짜, 여기 있었구나!"

차마 관수는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기수에 그런 반응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저 조용히 그의 인사를 듣는 것이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기수는 한참 동안 그 텅 빈 그녀의 납골당 칸을 쳐다보면서 말을 했다. 그가 하는 말들은 다 일상에서 하는 말들이었다, 그러나 그 속 어딘가에는 '진짜로 그녀는 죽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투가 섞여있었다.

"제가 뭘 한 걸까요... 그냥 다시 카페로 갑시다...."

기수는 체념을 한 듯 돌아가자고 말하면서 차를 타러 갔다.

차로 가는 동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5)

"10년 사귀고 결혼하려고 웨딩 촬영 다 하고 준비했어요, 그러고 결혼식이 1주일 남았을 때 경찰한테 전화가 오더라고요... 그녀가 밤늦게 집 가다가 어느 괴한한테 성폭행당하고 그대로 살해당했다고.... 범인은 그대로 도주해서 투신 자살했고요. 그러고 나서 웨딩 사진 한 장은 영정사진으로 쓰고 다른 한 장은 제가 계속 갖고 있어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느낌이었지만 기수는 덤덤했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잃은 말투였고 더 이상 남은 게 없다는 모습이었다.

"그 항상 있는 카페는 데이트하기 전에 맨날 같이 수다 떨고..... 그녀가 죽기 전 저랑 마지막으로 수다 떨었던 곳이에요. 그래서 저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어요. 혹시나 나타날까 봐, 아니 나타날걸 알아서 저는 그 자리에 있었어요."

관수는 모든 것을 다 알고 나니 더욱더 해줄 말이 없었다. 이별이라는 것에 우열을 가릴 수 있겠냐마는, 그가 말하는 모습 그리고 그것을 뱉는 모습을 보니 그의 이별은 어떤 이별보다 더 차갑고 서러웠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카페에 도착했다는 말 한마디만 가능했다.


6) 

카페에 도착해서 내린 기수는 한참 동안 카페 로고를 보며 말을 하지 못하다가 입을 열었다.

"진짜... 자주 여기서 놀았는데 그녀랑 정말 잘 놀았는데.. 더 이상 그럴 수 없네요..."

그가 처음 내뱉는 진심에, 죽음을 수용하는 모습에 관수는 점점 감정이 북받쳐 오르기 시작했다.

"그 죽음을 받아드리기 너무 괴로웠어요... 받아드리기 싫어서 계속 카페에 갔어요 살아있다고 생각하니깐, 그래서 늘 갔어요. 하루 종일 내내 생각나니깐!.. 그런데 오늘 가니깐 알겠어요... 진짜로 죽었다는 것을... 이제 그녀와 함께 했던 것들이 추억으로 바뀐다는 것을요...."

그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떨어졌다.그러고 그는 힘이 다 빠진채로 말을 했다...

"근데.... 추억이라고 하니깐 그녀와 함께 했던 과거들이 그녀처럼 아름다운 기억으로 보이네요....."

라고 말하면서 그는 엎어져서 어린아이처럼 한참을 울었다. 기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차마 일어나라고, 위로해 줄 말이 떠오르지 않아 엎드린 그를 안으면서 눈물을 훔쳤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죠?... 이제.. 진짜로 그녀는 저의 추억이 됐네요..."


그동안 현실을 믿지 않은 그는 처음으로 그녀가 죽은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가 내뱉은 "추억"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체념한 그에게, 그녀와 함께한 기억들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만드는 회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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