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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작정고전소설읽기 Sep 21. 2024

공백

6번째 주제

1부)


1)


 마치 등대처럼 불빛이 듬성듬성 나타나있는 소치동. 그곳에서 오늘도 공부 중인 전석이는 시계가 자정을 넘겨도 계속 공부한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 오로지 있는 것은 "d-10"이라는 타임어택. 무조건 이번에는 상위권을 찍는다는 생각, 그리고 꼭 성공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있다. 그의 생각을 멈추게 하는 2시를 가리키는 종소리. 그때가 돼서야 그는 일어나서 책가방에 책들을 넣고 집으로 간다. 

방금 전까지 조용했던 소치동은 어디 가고, 그 어두컴컴한 밤하늘은 어디 가고, 온통 차들이 북적북적거리면서 부모는 학생을 찾으러, 학생을 부모를 찾으러 인산인해를 이룬다. 전석이는 곧장 부모님의 흰색 승용차에 타서 그 자리에서도 오늘 외워야 하는 영어 본문 문장을 외우면서 시간을 보낸다. 집을 가서도 계속되는 그의 공부. 졸아도, 공부에 집중이 안되어도 그는 계속 외우려고 한다, 그의 책상 앞에 있는 포스트잇 "자면 꿈을 꾸지만, 공부를 하면 꿈을 이룬다"라는 글귀는 그를 더 채찍질하게 만든다.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쓴소리를 해야 하는 자는 자신이라는 것을 알기에.. 새벽 4시까지 이어진 그의 공부는 그가 스터디 플래너에 일기를 쓰면서 마무리된다.

'할 수 있다. 나는 해낸다. 충분히 이룰 수 있다'

"그래 할 수 있다! 나, 이전석, 충분히 해낼 수 있다!"라는 외침으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2)

학교에 가서도 계속되는 공부. 그는 학교에서도 집중을 하면서 공부를 한다. 잠이 와도 허벅지를 꼬집으며 아니면 스탠딩 책상에서 잠을 깨면서 그는 최대한 공부를 한다. 그가 이렇게 강박이 있을 정도로 공부를 하는 이유는 이 시험이 자신의 첫 시험을 만회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험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중요하다고 했던 1학년 내신을 만족스럽게 만들지 못해서 2학기 내신은 꼭 성과를 보인다는 마음가짐으로 여름방학과 2학기를 보내고 있다. 무조건 성공한다는 마인드와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는 그의 공부 방식. 매시간마다 공부를 하면서 공부시간을 기록하고 매일매일 공부한 것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하루를 점검하고 일기를 쓰면서 오늘 잘한 점, 반성할 점 이런 것을 어떻게든 뽑아내면서 최선을 다해가면서 살아가는 삶. 이렇게 노력만 한다면 그는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시험이 다가올수록 한편으로는 희망이 한편으로는 걱정이 들었다. "내가 성과를 드디어 보여준다"는 확신이, "내가 설마 안 좋은 결과를 보이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라는 것이 없었다. 무조건 그냥 앞으로 미친 듯이 달리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약한 생각을 하면 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다시 자신에게 쓴소리를 하면서 정신을 차리고 시험을 기다렸다.


2부


1)

"소원 고등학교 기말고사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라는 글귀가 걸린 월요일.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떨리는 마음 없이, 들뜬 마음으로, 오늘이 드디어 내 성과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면서 반으로 들어가 시험을 준비하는 전석이. 학생들은 하나 둘 모이면서 반은 꽉 차고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시험 시작을 알린다. 그가 가장 노력을 많이 하고 가장 많이 준비한 영어시험. 동시에 가장 아쉬움이 많았던 영어시험. 1학기때 1 등수 차이로 등급이 한 단계 내려갔던 거 때문에 이번에는 후회라는, 아쉬움이 없도록 미친 듯이 외웠다. 그냥 모든 지문을 다 외운다는 생각으로 전석이는 다 외웠고 그렇기에 자신감이 있었다 '무조건 이것은 내가 승리한다'라는 자신감.

"삐... 삐... 삐!"

시험은 시작됐다 빠르게 움직이는 전석이의 움직임. 그리고 문제를 풀면서 느끼는 확신'이건 됐다'라는 확신은 그가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이 미소는 단순히 자만의 미소가 아니었다. 내가 드디어 이뤘다는 노력의 미소였다.


2)

4개월 이상준비한 그의 영어시험은 45분 만에 종료가 났다. 모두들 답지가 올라올 것을 기다리면서 정답을 이야기하는 것을 어렴풋이 듣던 그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됐다'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한 그때, 답지가 선생님 손에 들려져 칠판에 붙여졌다.

84점, 지난번 1학기 기말고사 때 80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약간의 성적 상승이었지만 낙담하지 않았다. '내가 이 정도 틀렸으면 남들도 비슷하게 틀렸을 거야 괜찮아. 나는  충분히 잘했어 이것만큼 더 잘할 수는 없어!'

그러면서, 이제 드디어 자신이 해냈다는 것을, 자신이 드디어 이뤘다는 것을.... 만끽하면서 그는 플래너에 "수고했다 이전석!"이라는 일기를 쓰고 등수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3부)


1)

197명 중 49등, 백분위 75.2.

성적표를 받은 그는 절망, 낙담, 오열 어떠한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에 든 생각은 '이게 꿈인가? 아... 꿈이었으면'하는 당황. 4개월간, 그가 열심히 달렸다고 생각하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떠한 후회도 없었고 아쉬움도 없었다. 그런데 결국 자신이 달렸던 걸음은 제자리였다는 것을 보며 몸이 얼음이 됐다. 모두들 시험 성적으로 이야기를 할 때 그는 자신의 시험점수에 대해 어떠한 것도 말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그가 했던 노력들이 부정당하는, 자신이 했던 지금까지의 자신감이 한순간에 無가 되어 그는 한없이 초라해졌기 때문이다.


2)

집에 와서 바로 침대에 엎드리고 그는 혼자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대체 무엇을 안 한 거지? 아니 대체 내가 무엇이 부족했던 거지? 나는 달렸어. 미친 듯이 달렸어 모든 것을 걸었고 모든 것을 했어,. 나는 진짜 미쳤다고 이야기할 정도 달렸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정도였어. 시험도 잘 봤고 점수도 괜찮았어. 대체 왜? 어째서? 이렇게 노력을 했는데 또 여기서 보다 더 노력을 해야지 올라갈 수 있다고? 내가 여기서 더 달려야 한다고? 뼈를 깎는 고통을 겪으면서 달렸고 달렸는데 여기서 더 뛰라 그러면 나는 얼마나 나를 걸어야 하는 거지? 아니 나는 더 이상 걸 것도 없어. 이미 나는 다 걸었고 모든 것을 잃었어....'

    


4부)


1)

저녁이 돼서도, 밤이 돼서도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무엇이 잘못되고 무엇을 수정해야 하고 하는지 어떠한 것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침대에서 있었던 그는 습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플래너에 공부시간을 봤다.

"0h"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는 분노와 채찍질이 떠올랐다. 지금 이렇게 넘어졌다고 내가 포기해도 될 일인가? 내가 여기서 무너져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에게 채찍을 들었다. 하지만 차마 채찍으로 내려치지는 못하고 머뭇거리는 그. 그리고 그 앞에 보이는 과거에 그가 공부했던 흔적들. "10h,9h,8h....."그는 자신에게 든 채찍질을 처음으로 내려놓는다.

'내가 열심히 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나는구나...'

그리고 이것을 깨닫자마자 그는 홀린 듯 펜을 들어서 플래너를 썼다


2)

"空白"

4개월 동안 평생 쉬지 않고 달렸다는 것을 반성한다는 의미로 플래너에 공백, 아니 여백을 만든다.

늘 하던 자신에게 하던 쓴소리가 아닌 처음으로 하는 위로와 격려는 이렇게 시작했다.

처음으로 이해하는 자신의 마음을 보며 말없이 위로의 한줄을 더쓴다.

'고생했어...'

그는 다 쓰고 책상에 머리를 박으면서 소리 없이 한참을 울었다.

그 울음은 억울해서 분해서 나오는 울음이 아닌

처음으로 자신에게 보여준 위로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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