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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저녁엔 배가 너무 고파요”

– 본능이 건강을 망치는 순간들

by 유찬규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선생님, 전 아침엔 입맛이 없는데, 저녁만 되면 너무 배고파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답합니다.
“당연합니다. 그게 바로 몸이 보내는 생존 본능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이 본능이 건강엔 별로 좋지 않다는 겁니다.”


우리 몸의 본능, 그건 사실 ‘절약 모드’입니다

밤새 잠을 자는 동안, 우리 몸은 아무것도 먹지 못합니다. 말 그대로 ‘공복 상태’죠. 그런데도 아침이 되면 곧바로 허기가 밀려오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우리 몸이 스스로를 절약 모드로 전환했기 때문입니다.
“당장 연료가 부족하니까, 에너지를 아끼자!”
이건 진화적으로 매우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런데 이 절약 모드는 아침 식사를 거를 때도 계속 작동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습니다.

기초 대사는 떨어지고,
몸은 지방을 더 잘 저장하게 되며,
하루 중 가장 늦은 시간대에 폭식 충동이 몰려옵니다.


아침을 거르고 점심을 대충 때우면, 저녁은 ‘폭식 예약’

많은 사람들이 아침을 건너뛰고 출근합니다. 커피 한 잔으로 버티고, 점심도 서둘러 마무리하죠.
그러다 하루가 끝나갈 무렵,
온몸에서 신호가 밀려옵니다.


“이제 진짜 배고프다.”
“오늘 제대로 먹은 게 없어.”
“피곤하니까 뭔가 좀 더 먹자.”


이게 단순히 습관이 아니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건 호르몬의 작용입니다.


호르몬의 이중성 – 렙틴과 그렐린이 당신을 저녁 폭식으로 몰아간다


렙틴: 포만감을 느끼게 해주는 호르몬.


그렐린: 식욕을 자극하는 호르몬.


문제는 이 두 호르몬이 하루 중 저녁에 가장 불리한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겁니다.
저녁 시간이 되면 렙틴은 줄고, 그렐린은 올라갑니다.
즉, 똑같은 식사를 해도 저녁엔 더 배가 고프고, 덜 포만감을 느낀다는 것이죠.

게다가 스트레스까지 겹치면?
호르몬은 아예 통제를 벗어납니다.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은 혈당을 올리고, 인슐린 저항성을 키우며, 결국 살이 찌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버립니다.


본능이 가는 대로 먹으면 건강은 기울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한 가지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그럼 나의 식습관은 지금, 본능이 끌고 가는 대로 움직이고 있는가?”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바쁘게, 저녁은 푸짐하게.
이게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반복하고 있는 본능 기반의 식사 패턴입니다.

문제는 이 패턴이…
→ 대사질환의 출발점이 되고
→ 위장의 피로를 가중시키며
→ 수면의 질까지 떨어뜨린다는 것.


건강한 식사는 ‘본능’이 아니라 ‘리듬’의 문제입니다

건강한 식사는 의지로 버티는 게 아닙니다.
아침을 억지로 먹으라는 말도 아니고, 평생 야식을 끊으라는 말도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해야 할 건, 리듬을 바꾸는 것입니다.


아침을 ‘깨우는 식사’로 받아들이기


점심을 하루의 중심 식사로 삼기


저녁은 정리하듯 가볍게 마무리하기


가능한 한 공복으로 잠들기


이런 리듬은 처음엔 낯설지만, 몸이 적응하고 나면 오히려 훨씬 편안해집니다.


결론 – 본능은 따르라고 있는 게 아니라, 조절하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본능에 따라 살아가지만, 건강은 본능을 초월할 때 시작됩니다.
의지가 아니라 리듬으로,
무작정 참는 게 아니라 예측 가능한 규칙으로 바꾸는 것이 핵심입니다.

늦은 저녁의 폭식 충동이 왔다면,
그건 당신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몸이 보낸 SOS 신호일뿐입니다.
그 신호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하루의 식사 구조부터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이 순간이,
그 변화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건강한 습관 #저녁소식 #아침식사중요성 #생체리듬 #대사건강 #식사패턴 바꾸기


이 글은 『저녁을 줄이고 건강을 되찾다』(교보문고 퍼플) 중 일부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전체 이야기는 책에서 만나보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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