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돌아본다는 것

생각을 위해 잠시 멈추어 서다

by 와와우

절망이 지나간 공허 속에 새롭게

피어난 것들


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

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去 然)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잠시 멈춰 설 수 있어야 한다. 호흡을 길게 내쉬고는 섬광처럼 내리치는 깨달음의 끝을 잡고 질문을 던지며 답을 얻는다. 이 순간 인간은 두 가지 길에 서고 있다. 하나는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것이다. 사유를 한다는 것이 생각을 거닐게 되는 경우는 객관화된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경우이지만 자기변병의 길에 들어서는 순간은 상념의 연속성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자신이 내린 답에 의심을 갖게 되는 상념의 회오리는 잡념이 되고 심연 속으로 향한다. 이렇게 스스로가 답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 이유와 변명은 결국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것도 익숙해지면 자신이 만든 틀 안에 갇히게 된다.


남을 비판하는 경우 그러한 판단은 자신이 거울에 비치는 모습에 근거하고 있다. 자신에게서 보이는 사실이 상대는 더하다는 의미로 다가가게 된다. 결국 자신이 만든 자신만의 창을 가지고 남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객관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세상일에 대하여 어떠한 사실을 보게 된다는 것도 모든 것이 자신에게서 비롯된 인식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은 비판적인 태도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 역시도 정도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고 삶의 노력을 수반해야 하는 문제이다.


사유를 한다는 것도 하나의 습관이다. 자기변명이 습관이 되면 이것도 사유를 하는 것이라 착각을 한다. 사람이 생각을 한다는 것이 과거를 추억하며 생각에 잠기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추억에 대한 기억도 감정을 흘려보내지 못하면 병이 된다. 아련한 추억을 흘려보내듯 사유는 생각을 거니는 것이다. 자신이 객관화된 상태에서는 자신을 다독거릴 수 있으며 보편적 세계에 다가서는 창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자신에 대한 객관화는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고 반복되는 시도에 의해 직관적 경험을 만들어 간다. 반복되어지는 자신을 향한 정당화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삶의 노력이다.


올바르게 사유한다는 것이 단순히 노력을 통한 기술적인 면만을 말하고 있지는 않는다. 지금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향한 마음자세에 달려있다. 현재의 삶의 모습이 자신의 사고방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사유와 현재의 실천을 위한 노력의 반복을 통하면 생각의 모습도 변해갈 수 있다. 나는 어린 시절 배웠던 호연지기의 이상이 이런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보다 넓게 바라보고 이해와 포용을 실천하려는 마음의 자세이다. 그것이 웅대한 꿈을 꾸고 권력과 명예를 쟁취하여 남들이 알아주는 삶의 성공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웅대한 꿈은 보편적인 우주적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었고 이를 나의 우주에 품고자 하는 마음에 있는 것이었다. 인간이 종국에 닿고자 하는 ‘범아일체’를 말하고 있음이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한다. 사람 간에 이루어지는 대화가 상대의 마음에 귀기우리지 못하고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대화를 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생각만을 말하려 한다.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우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 말의 의도를 읽으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때론 생각 없이 남에 말을 들어주고 호응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설득하는 방법이 될 수가 있다.


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을 살피다 보면 상대방의 뻔한 말을 끊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요즘 내게 생긴 버릇 중에 하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말 중에 끼어드는 것을 싫어한다. 말이 길어지다 보면 말하는 도중에 자신의 의도를 잊게 되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강한 경우도 있다. 또한 자신의 과시를 위해 과거지사를 나열하거나 자신의 지식을 펼쳐 놓으려는 의도 역시 그러하다. 입이 근질거린다는 것이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경우만은 아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마치 대화를 기 싸움처럼 말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경우도 있다.


유연하게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은 사유의 결과이다. 젊은 시절 밤을 새워 친구와의 온전한 대화를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화의 희열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말을 되새길 수 있어야 하고 그 말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다면 이는 성공한 대화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끄러움도 사유와 겸손의 결과이고 자신을 돌아보는 지표가 되기 때문에 그로 인한 자책까지는 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이를 모르고 자신의 말에 스스로 도취되어 있는 경우가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대부분은 자신의 말에 대해 자기합리화를 하며 살고 있다. 나 역시 그렇지 않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이다.


자신의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 지인들의 비웃음을 살 수 있다는 사실로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의식을 하는 것은 공동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아무도 없는 자연 속에 혼자 살아가는 이조차 자연을 의식하고 살아간다. 이것은 인간이 무엇인가와 함께해야 하는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남에 대한 의식이 자기의 과시나 스스로의 존재를 알리고자 하는 의도가 항상 숨어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듯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전달하는 행위조차 자신을 들어내는 수단에 그치는 경우가 흔하다. 신은 그런 이유로 무심히 뱉는 말에 부끄러움을 갖게 하는 이유를 사람에게 부여한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의 행복은 그 크기만큼 불안함도 함께 한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인간의 존재 의미를 찾으려고 하였다. 이를 통해 에로스를 규명하고 쾌락주의를 치장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인문학에 대한 인식론의 시작이 되었고 칸트와 니체를 거치며 현대 철학사의 여러 개념을 만들었지만 결국 인간의 행복이라는 감성적인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한 셈이다. 자유와 평등이란 상충된 현실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고 하지만 개인이 추구하는 행복감에서 느끼는 충만한 감정을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행복한 만큼 불안함이 함께하는 이유는 인간의 욕심 때문이라 하지만 그 자체의 불안정에 있다. 인간의 행복이 감정의 문제로 국한되어 인간의 한계성이나 감정의 기복과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종류의 인문학은 궁극적인 가치가 존재하고 있으리라는 인간의 인식에서 출발하였고 개인과 모두의 행복을 논하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식을 나열하는 것도 허세나 자랑에 불과한 것이 되기 쉽다. 내 주변에는 엄청난 흡입력을 가지고 지식을 흡수할 수 있는 뛰어난 천재성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꽤 있다. 나도 그러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가끔은 있지만 습득된 지식은 사유를 위한 재료와 같은 역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터넷이 발달하고 온갖 정보가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경우조차 전문가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가 흔하여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도 인간이 사유가 필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정보의 올바른 선택이 대두된 것이다.


정보의 선택은 자신의 취사선택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나열된 정보의 통합적 사고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원리적 접근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지식이 그러한 것이지만 단순한 지식의 나열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현대 뇌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는 생존을 위해 도망가고 먹이를 쫒기 위해 운동능력을 발전시키며 진화하였다고 말한다. 생각을 위해 인간의 뇌가 진화하고 발달했다는 오래된 이론을 뒤집는 가설이다. 그러나 인간이 사유를 한다는 것은 단순한 생존을 위해 생각하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인간의 생각이 지식을 터득하고 이를 나열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면 현대 뇌 과학자들이 제기한 생존방식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은 인간이 사유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보편적이고 우주적 세계에 다다르고자 하는 노력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사람을 포함한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이해와 통합적 사고를 향한 인간의 의지를 포함하고 있다. 결국 인간이 자신을 올바르게 돌아보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삶의 노력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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