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을 키운 강아지의 죽음은 우리집에서 금기어였다. 특별히 성탄이 얘기를 하지 말자고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누구도 입 밖으로 떠난 아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성탄이가 살던 집은 창고로 치워졌고 아이가 좋아했던 방석과 장난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10살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성탄이의 죽음을 이야기 한다. 성탄이가 즐겨 먹었던 살코기 캔의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이때까지만 살아도 좋았잖아."라고 말하고, 푸른 하늘의 양떼 구름을 보곤 "우아~ 우리 성탄이 닮았네!"라고 말한다. 철부지 아들이 기억을 소환하면, 우리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아이와의 즐거웠던 시간을 추억하고 이내 슬며시 미소짓기도 하는 것이다. 강아지 음성 번역기로 녀석을 속 마음을 읽었던 시간, 우리의 예상을 벗이났던 첫 마음은 "귀찮아! 저리 가!"였다. 성탄이의 부재는 슬프기도 하지만 사실 함께여서 행복했고 즐거웠던 날들이 훨씬 많았다. 애견팬션에서 즐거웠던 하루, 몸집에 맞지 않는 옷을 입히고 깔깔거렸던 시간,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들과 달리기 시합을 했던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날들, 아득한 기억이지만 손 내밀어 잡으면 꼭 손에 쥘 것만 같다.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운다고 했던가. 녀석의 빈자리를 보며 우리는 지금 이 순간과 마음, 찰나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아들의 건강한 애도 덕분에 가끔 집을 나서며 "언니 다녀올게!"라고 말한다. 슬프면 슬프다고 보고싶으면 보고싶다고 그리우면 그립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건강하고 밝은 애도의 첫 시작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