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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은희 Oct 04. 2023

작별

넌 내게 최고의 크리스마스야

강아지 성탄이를 만난 건 크리스마스였다. 기쁜 성탄절에 축복처럼 우리 곁에 찾아온 생명. 너무 작게 태어난 아이는 동물병원에서 조차 삶을 약속받지 못했다. "너무 허약하게 태어났어요." 동그란 안경테를 콧등으로 치켜 올리며 덤덤하게 말을 뱉는 수의사가 야속했다. 가족의 걱정과 응원 속에 작은 개 성탄이는 잔병치레가 잦았지만 그때 그때 고비를 넘기며 잘 자라 주었다. 공을 던지면 날쌔게 뛰어와 공도 잘 물어오고 산책과 목욕도 좋아했다. 애견카페에 가면 사회성도 좋아서 처음 만난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놀았다. 학업에 바쁜 나와 바깥일을 하시는 엄마 대신 외할머니가 성탄이를 제일 많이 돌봐 주셨는데 90세를 넘긴 할머니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시도 때도 없이 먹이를 주고 간식을 먹이셨다. 성탄이의 물그릇에 둥둥 먼지가 떠다녀도 더는 깨끗한 물로 갈아주지 못하셨고, 성탄이를 데리고 나가 혼자 돌아오셨다. 그날 이후, 할머니와 성탄이의 외출은 금지되었고 정신줄을 놓은 할머니는 오래 가족 곁에 머물지 않고 홀로 긴 여행을  떠나셨다. 말만 못할 뿐이지 성탄이는 할머니를 그리워했다. 제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고 즐겨 먹던 간식에도 시큰둥 했다. 노년기에 강아지는 1년에 7살씩 나이를 먹는다고 한다. 20년을 넘긴 성탄이는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 자는 시간이 길어졌고 음식도 잘 소화하지 못했다. 엄마는 할머니를 대신해 강아지 한방병원까지 수소문해 다니시며 지극정성으로 성탄이를 돌보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꼭 2년을 더 살고 성탄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떠나는 날, 제가 죽을 걸 알았던 것처럼 맛있게 밥을 먹어 주었고 가족들에게 하나하나 눈맞춤해주며 가슴 깊이 따뜻하게 인사해 주었다. 백내장때문에 눈도 잘 보이지 않는 아이, 킁킁 냄새도 잘 맡지 못하고 근육이 빠져 허정허정 걸었던 성탄이가, 혼자 무지개다리는 잘 건너갔을까. 가족들이 모두 깨어있는 시간에 작별을 고했던 속이 꽉찬 아이, 나의 20대와 40대를 함께 했던 다정한 친구, 속이 상한 날 성탄이의 따뜻한 온기만으로도 푼푼한 용기를 얻었던 날들이 가슴 아프게 떠올랐다. 착한 강아지들은 제 주인이 죽으면 제일 먼저 마중 나온다는데 못난 언니지만 나는 여전히 성탄이의 마중이 그립다. 내 하루를 배웅하고 반갑게 마중해 주었던 순한 내 동생, 이제는 파란 하늘에 대고 안부를 묻곤 한다. 성탄아, 언니 지켜보고 있지? 뒤늦은 고백이지만, 넌 내게 항상! 최고의 크리스마스였어! 날마다 사랑으로 살게해 주어서 참 고마웠어♡ 언니가 먼 길 가는 날도 언제나처럼 꼭 마중나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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