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은 다정하지만 내성적이어서 호감이 있는 이성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한다. 반면에 클레멘타인은 솔직하고 충동적이어서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서로 반대 성향에 끌려 둘은 연인이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처음에 좋았던 바로 그부분 때문에 여자는 남자가 지루하다고 하고 남자는 여자가 교양 없고 헤프다고 하며 서로에게 실망하고 상처를 주고 헤어지게 된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불같이 사랑하던 시절의 클레멘타인은 오렌지색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싸우고 헤어진 뒤 클레멘타인이 근무하는 서점에 찾아간 조엘은 그녀가 파란색 머리를 하고 자신을 처음 본 사람처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놀라고, 기억을 지워주는 의료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가 벌써 그의 기억을 지운 것이다. 괴로운 조엘도 화가 나서 기억을 지워주는 뇌과학 사업체 ‘라쿠나(잃어버린 조각이라는 뜻)이라는 곳을 찾아가서 그녀에 관련된 기억을 지우게 된다.
조엘은 최근부터 과거까지의 기억을 지우는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그녀와 보낸 시간을 다시 한번 되살리며 모두 기억하게 된다. 뇌에 새겨진 기억들을 불러내 보니 서로가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소중한 기억들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던 조엘은 괴로워하며 삭제에 저항하지만 결국은 모두 사라지고, 마지막 기억을 지우는 장면에서 클레멘타인은 조엘의 귀에 처음 만났던 바닷가 “몬타크”를 속삭이며 사라져간다.
다음날 아침, 그녀의 기억을 모두 지우고 일어난 조엘은 출근을 위해 기차역에서 기다리다가 이유 없이 충동적으로 몬타크행 기차를 타고 바닷가에 가고, 거기서 해변을 걷다가 파란 머리의 발랄한 여성을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클레멘타인. 그들은 과거 어디선가 서로 만난 듯한 기시감을 느끼며 대화하고 호감을 가지고 연애를 시작하려 한다.
한편 라쿠나사의 직원인 메리는 회사 대표인 나이 많은 정신과 박사 하워드에게 호감을 갖고 짝사랑하고 있다. 그녀가 동료들과 함께 조엘의 기억을 지우는 작업을 하다가 문제가 생겨 박사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어 그가 왔는데, 그녀가 갑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박사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뒤따라온 박사의 아내에게 그 장면을 들켰는데, 알고 보니 메리는 과거에도 유부남인 그를 사랑하다가 괴로워하며 그의 기억을 지웠다는 것을 동료로부터 듣고 알게 된다.
메리는 결국 누구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에 관한 기억을 지워도 또다시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라쿠나사에서 기억을 지운 모든 내원자들에게 인터뷰 녹음 테잎을 보내서 그들이 어떤 기억을 왜 지웠는지 알게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처음 만난다고 생각하는 상대와 시작하려던 조엘과 클레멘타인도 보내준 테잎을 듣고 그들이 처음 만나는 것이 아니며, 왜 헤어졌으며, 서로의 어떤 점을 싫어하는지를 같이 듣게 된다. 둘이 절망하면서 헤어지기로 하는 순간, 괴로워하던 조엘이 클레멘타인을 붙잡고 그들은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
자기에게는 없는 성향을 가진 상대방에 다시 반하고 사랑하다가 시간이 가면서 또 질리고 상처주고 결국은 헤어지려고 결심할 것이다. 그러다가 이 사람과의 사랑 없이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또다시 시작할 것이다.
무한 반복이다. 니체는 이것을 ‘영원회귀’라고 말했다. 다음 기회에도, 또 그다음 생에서도 인간은 똑같은 삶을 살 것이다. 그러니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이 구원이다.
그렇다고 지금 만나는 사람에 무조건 노력하라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도 조엘의 자료를 가지고 있는 라쿠나사의 남자 직원이 클레멘타인을 좋아해서 그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자료를 보고 외워서 조엘의 말과 행동을 따라 했지만 클레멘타인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 대상이나 노력해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순수한 마음을 비추는 영원한 햇살같은 사람이 있다. 조엘에게는 클레멘타인이 그렇고 메리에게는 하워드 박사가 그런 사람이다. 그사람을 사랑한다면 때로 상대방이 지겨워져도, 한심하게 보여도, 세상의 도덕이 그들을 지탄해도, 함께 사랑하며 보낸 시간들로 충분히 그것을 초월할 수 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무한루프를 돌다가 이번 루프에서는 어느 순간 멈춰 섰다. 라쿠나사는 영화적 장치로는 기억을 지우는 회사지만 사실은 역설적으로 과거를 기억하며 자신을 들여다보는 행위를 의미한다. 기억을 지우려면 역설적으로 먼저 어떤 기억이 있는지 모두 떠올려야하고 그 기억들이 그들의 사랑의 역사이다. 녹음테이프에서 의사에게 상담받을 때 했던 상대에 대한 불평들을 떠올리고 듣는 행위는 무의식에 있던 부정적 감정을 의식화하는 과정이다.
사랑에는 좋은 순간만 있지는 않다. 좋은 기억들과 부정적 감정을 총체적으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조엘이 지울 때 저항했던 기억들이 붙잡고 싶은 부분이라면 라쿠나사에서 박사에게 했던 상담내용은 부정적 부분인데 두 조각을 다 합쳐야 사랑이 된다. 라쿠나라는 단어가 잃어버린 조각이라는 뜻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흔히 사랑에는 좋은 것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관계에는 부정적인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영화에서는 의료기관에 가서 상담하고 기억을 지워버리는 장치를 썼지만, 실제에서는 심리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비난의 감정을 억압하고 무의식에 가둔다. 그것들이 에너지가 쌓이게 되면 폭발하기도 해서 파국을 맞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에서 녹음테이프를 돌려주고 듣게 하는 행위는 무의식안에 있는 부정적 감정을 의식화하는 작업의 은유이다.
보이는 부분에다 잃어버린 조각까지 합쳐야 완전한 모양이 된다.
만일 부정적 부분이 너무 치명적이라면 다시 시작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영원히 붙잡고 싶은 핵심적인 기억 부분이 크다면, 순수한 마음속을 비추는 영원한 햇살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사랑이다.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그들이 순수한 시절, 처음에 바닷가에서 둘이 만났던 강렬한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마음속의 영원한 햇살이다.
영화에서 보여준 녹색에서 주황색, 파란색으로의 클레멘타인의 머리 색깔 변화처럼 이 두 주인공은 세 번의 만남과 이별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몇만 번을 반복해도 둘은 항상 몬타크 바닷가에서 다시 시작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