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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Sep 11. 2023

영화는 내가 사는 멀티버스다

내 세계를 확장하는 것들

영화 '시네마 천국'

나는 21세기 대한민국에 사는 여성이다.

내가 현대에 태어나 이 나라에서 받은 교육과, 태어난 원가족과, 내가 꾸린 가정이 나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쳤다.

나의 시공간은 '지금, 여기'로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공간적인 확장은 여행을 통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고, 시간적인 제약은 역사 공부를 통해 확장되었다고 볼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도는 지극히 제한적이고 별로 실제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여행은 그저 관광객으로의 구경 뿐이고, 역사는 문학과는 달리 나에게 그저 사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제한된 나의 세계를 넓히는 가장 방법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친한 친구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세계에 나를 이입하는 일이다. 그들에게 받은 영향은 아주 크지만, 사교적이지 않고 내향적인 내 기질상 아주 친한 친구는 말 그대로 많지 않다는게 문제이다.

     

그다음으로 내 사고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쉽고 좋은 방법은 독서이다.

언젠가 정세랑 작가가 티브이 프로그램에 나와서 책을 읽으면 인생을 여러 번 살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몇 시간만 투자하면 작가가 오랫동안 힘들게 창조한 세계에 들어가서 나도 살 수 있다. 어쩌면 작가가 몇 년에서 몇 십 년까지 투자해서 애써서 만들어낸 세계를 이렇게 쉽게 맛볼 수 있는 것이 고마움을 넘어서 미안할 지경이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책은 밑줄 치는 펜의 색을 다르게 해 가며 여러 번 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들쳐 보기도 한다. 또 서점에훑어보고 마음에 드는 책은 빌리지 않고 구입해서 봄으로써 저자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기도 한다.(책에 밑줄 치는 습관 때문에 빌려볼 수 없기도 하다.)

책속의 세상은 다양해서 다른 시대에서 살아볼 수도 있고, 다른 나라에서 살 수도 있고 심지어는 미래에도 가볼 수 있다. 환경을 진지하게 걱정할 수도 있고, 정의란 무엇인가 고민해 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방법중 나에게 가장 영향을 크게 준 방법은 영화를 보는 것이다.

영화가 나온 지도 100년이 넘었으니 세상엔 진짜 좋은 영화들이 많다. 영화는 원작도 중요하지만 감독의 방향이 중요하다. 책은 저자가 홀로 고군분투하여 세계를 창조하는 반면, 영화는 감독의 지휘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 제작에 참여한다. 자주는 못하지만 가끔씩 쿠키 영상이 재미있다고 하여 엔딩 크레딧까지 보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보면 영화 한 편을 만드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노력한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긴 세월 동안 제작한 작품을 나는 그저 극장에서 혹은 집에서 두 시간 남짓을 보면 되는 것이다. 가끔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를 볼 때도 있지만, 그럴 때에도 창작자들의 노고는 백 프로 인정한다.

책은 읽는 사람의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반면, 영화는 감독의 상상력에 의존하는 편이다. 그래도 숨겨놓은 의미를 찾는 미션은 관객이 수행해야 한다. 가끔씩 추상적인 것을 특별하게 시각화하는 감독의 대단한 상상력과 능력을 감탄하면서 본다. 물론 그 반대도 있기는 하지만.


내가 영화 좋아하는 것을 아는 친구들이 나에게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고 물어볼 때가 있는데, 거짓말이 아니고 나는 지금 현재 리뷰글을 쓰고 있는 영화가 가장 좋다. 처음에는 영화를 그냥 보고, 재미있다고 생긱되는 영화는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제대로 집중해서 보면서 의미를 생각하고, 다음에는 글을 쓰는데   동안은 그 영화가 가장 대단해 보이고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끝나고 현실로 돌아와서 살다가 다른 영화를 시작하면, 변심해서 다른 그 영화가 또 최고가 된다. 확실한 것은 그 작업에 푹 빠진다는 것이고, 그동안은 그 영화의 세계에 들어가서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일이 끝나면 그 영화의 영향으로 생각이 조금 달라져서(부디 성숙한 방향이기를) 현실로 돌아온다.

     

‘천일야화’의 셰헤라자데이는 죽지 않기 위해 매일밤 남편인 왕에게 끊임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는 마치 망하지 않고 다음에 투자를 또 받기위해고 죽기 살기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마인드처럼 보인다. (또는 브런치에서 어떻게든 좋은 글을 써서 독자들에게 어필하고싶은 내 모습같기도 하다.)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샤리아 왕은 이야기가 재미없으면 가차 없이 아내를 죽여버릴 사람으로, 그는 재미없는 영화는 투자비도 못 거두고 망하게 하는 관객들의 대표나 마찬가지이다.(나도 열심히 써도 어떤 글은 반응이 싸늘해서 실망할  때도 많다.)

1001개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샤리아 왕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내를 죽이기는 커녕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그동안에 자식을 셋이나 두게 된 것이다. 관객들이 좋은 영화를 보면서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인생에서 의미 있는 결실을 맺는 것과 다.

     

보통 예술에서 멀티버스 하면 대표적으로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처럼 과거에 선택하지 않아서 더 이상 발전시킬 수 없었던 '가지 않은 길'처럼 아쉬운 세계들이나, ‘닥터 스트레인지 2’처럼 현실의 자신이 처한 것과는 다른 환경과 가능성이 있는 세계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있어서 멀티버스란, 내가 현실에서 벗어나  때때로 거기 빠져 살면서 나의 삶의 경험을 확장시키는 세계인데, 그것이 바로 영화이다.

즉, 영화는 나의 멀티버스다. 나는 영화라는 세계에  들어가 빠져서 살다가, 한층 달라져서 현실로 돌아오고는 한다.

이처럼 친구들과 책과 영화는, 나를 제한된 경험만을 해야 하는 한계를 가진 존재에서 초월하게 해서 나의 세계를 넓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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