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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짜글이집에서 디스토피아를 맛보다

2025년 네오서울은 내 어린 시절 상상보다 더 어두웠다.

by VioletInsight

2025년 네오서울은 내 어린 시절 상상보다 더 어두웠다.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어쩌다가 남자 넷이 강남역에서 저녁을 한 끼 때워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저희 저녁 뭐먹죠..? 햄버거는 식상하죠?”

“짜글이 어떠세요?”

“오 가보신데 있으신가요?”

“아 그냥 1인분씩 시키기 좋은 데가 있기는 해요”


아저씨들끼리 간단히 해결해야 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망설임 없이 바로 일행이 안다는 곳으로 갔다.


처음 입구에 들어가서부터 눈에 바로 들어온 것은 키오스크였다.


“와.. 역시 한국에서는 짜글이집에도 키오스크를 쓰네”


작년에 외국에서 한국으로 온 내 입장에서는 맥도널드 같은 다국적 프랜차이즈 같은 경우는 키오스크를 흔하게 보았지만, 일반 식당에서 까지는 키오스크를 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짜글이라는 향토음식까지도 키오스크가 침투한 광경에 뭔가 이것이 미래인가? 싶기도 했다.


다양한 분야를 막론하고 높아진 인건비를 신속하게 기계로 대처하는 모습.

역시 빨리빨리의 민족인가.


또 웃긴 것은 음식점의 외관은 또 한국적인 인테리어를 강조한 분위기였다.

뭔가 이질적이긴 했지만.

음식점 안에서는 키오스크에 줄을 서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나는 자리를 잡고 음식점을 둘러보고 있었다.

서빙하는 직원은 없으며, 사람들이 키오스크나 NFC방식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맥도널드처럼 직접 가져가며, 식기 또한 직접 반납하는 시스템이었다.


“뭔가 여기 백화점 푸드코트 같은 느낌이네요.. 아니 대학교 학생식당인가?”

“근데 백화점 푸드코트가 좀 더 나은 것 같죠?”

“네 뭔가 분위기가 그렇다랄까..”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우리는 남자들만 있는 거 아니랄까 봐 각자 말없이 묵묵히 식사를 했다.



어느 정도 다들 배에 음식이 채워지자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어? 저 물레방아 가짠데요?”

“네? 어? 어떻게 아셨어요?”

“물이 나오는 정 반대방향으로 물레방아가 돌아가네요”

“아.. 자세히 보니까 저기 모터가 있네… 전기로 작동 하나 봐요”


본디 물레방아는 수력을 이용해서 곡식을 제분하는 용도로 인력을 대체하는 기계인데,

가게 내부의 인테리어로 쓰이기 위해서 전기로 작동하는 물레방아라니..

뭔가 주객이 전도된듯한 역설적 분위기가 오묘했다.


“%#$% 소다네~”


그리고 주변에서는 일본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름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장소인가 보다.

내부도 1인석과 칸막이가 있는 것이 마치 전형적인 일본식당 느낌도 나고, 테이블 배치라든가 좌석 수를 보면 회전율을 강조한 느낌이기는 했다.


가게를 둘러보니 상주하면서 서빙을 하거나 테이블을 직접 관리하는 직원은 없었다.

테이블 정리도 손님이 하는 구조이며,

아니 애초에 뭔가 패스트푸드 느낌으로 나오기 때문에 딱히 정리하는 느낌도 없었다.

나는 미리 식기를 반납하러 갔다.


그리고 식기 반납구 사이에 어느 직원분이 마스크로 낀 채로 웃으면서 “감사합니다~”라고 해주셨다.

나도 이에 “감사합니다~” 호응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뒤돌아서 음식점 내부의 광경이 펼쳐지자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아 기술 발전이 되어서 사람의 노동력 자체는 줄었지만

음식점의 밝고 쾌적한 곳에서는 모순적이게 기계가 주문을 받고 전기 모터로 작동하는 물레방아가 일을 하네..


반면


덥고 습하고 뜨거운 화구가 있는 주방,

열악한 환경에서 직원은 위생을 위해서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있고,

높은 회전율에 밀려오는 주문 때문에 조리를 쉴 새 없이 하며, 그 많은 설거지는 또 사람이 직접 하는구나.

이것이 바로 기술 발전의 역설인가 싶었다.


노동력을 줄이고 인간을 편하게 하기 위해 만든 기계들이 역설적이게도 사람수는 줄였지만, 사람이 하는 1인당 노동 자체는 늘려버린 셈이다.


기술이 발달하면 극한의 환경에서는 기계가 일하고 사람을 만나는 서비스를 인간이 할 줄 알았는데 사실 시장논리가 적용되면서 반대가 현실이 되었다.


하긴 기술적으로 대체 가능한 인력 비용 보다 기계의 유지보수 비용이 장기적으로는 더 싸니까 그렇게 된 셈이겠지.


정작 같은 강남에 있는 3만 원짜리 프리미엄 햄버거 가게인 '파이브가이즈'는 전부 사람이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생각났다.


나중에는 사람이 직접 해주는 서비스도 빈부격차의 요소로 다가올까 싶었다.


웃기게도 식사를 다 마치고 나서 가게를 나오려 보니, 마치 옛 추억의 누룽지 사탕 마냥 사탕을 직접 가져갈 수 있는 바구니가 있었다.


나는 거기서 사탕을 하나 집고 일행들과 가게를 나왔다.


“식사 어떠셨나요”

“좀 많이 달지 않았나요?”

“강남이기도 하고 외국인들 많던데 그래서 그런 거죠”

“전 디스토피아가 느껴졌네요”

“네? ㅋㅋㅋ 역시 OO씨 답네요”

“아 뭔가 일본말도 들리고 기계도 그렇고, 사이버펑크 느낌도 많이 났어요”

“듣고 보니 그렇네요 ㅋㅋㅋ”


차라리 이런 사이버펑크가 위험하지만 더 낭만 있겠다.


나는 주말 저녁 강남 짜글이집에서 디스토피아를 맛보았다.


내가 어렸을 때 상상했던 2025년은 기계와 총격전을 하며 전쟁을 벌이거나, AI나 아이로봇, 또는 스타워즈의 C3PO처럼 대화하는 로봇이 있었다.


뭐 나름 지금도 기계와의 전쟁이라던가 생성형 AI 생각하면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지긴 한 것 같다.


문제는 좀 더 어른의 사정으로 다가와버렸다.


기계와의 경제적 직업전쟁으로 말이다. 참.. 씁쓸하다.


2025년 네오서울은 내가 어린 시절 상상했던 미래보다도 뭔가 더 현실적인 느낌의 디스토피아로 다가왔다.


음식 자체는 맛있었습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How beauteous mankind is! O~ Brave new world, That already has such people in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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