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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하였으나 이미 충만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

by 글짓는 날때

"이것들이 누굴 병신으로 아나"

형오 형이다.


"사실이잖아"

내가 춘숭에게 말했다.


"그러게요. 모르지 않잖아"

춘승이 내게 말했다.


둘은 새삼 몰라서 묻는 것이냐는 표정으로 형오 형을 바라보았다.


"해튼, 니들은 잡히면 죽는다."

형호 형을 처음 만났을 때 그랬듯이 날듯이 쫓아온다.




형오 형은 춘승과 마찬가지로 같은 회사에서 만났답니다. 저와 춘승은 기획자로 일하고 있었고 형오 형은 웹 개발자였죠. 형오 형과의 첫 만남, 그 형의 첫인상은... 멋있었어요.


어느 해 겨울이었나. 춘승과 저는 회사 옥상에서 새롭게 합류하는 개발자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하며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남자고 여자고 일만 잘하면 좋겠다. 아니다, 퀄리티 보단 소통이다. 그래도 술정도는 마셔야 하지 않겠냐. 사람은 말이 통해야 한다. 아무렴 어떠냐 사람만 올바른 면 됐지 등등.


그때였어요.


['덜그럭. 턱! 덜그럭. 턱! 덜그럭. 턱! 덜그럭. 턱!']

찬란하게 빛나는 은빛 알루미늄 목발을 양쪽에 짚고 유난히 빛나는 갈색빛깔의 머리와 함께, 보통이면 다리가 들어 있었을 바지자락 하나를 휘날리며 말보로 레드를 손가락에 끼운 체 걸어오는(?) 아니, 휘날리는 바지자락 때문인지 흩날리는 갈색 머리 때문인지 마치 날아오는 것 같은 남자를 보았죠,


"반갑습니다. 형오입니다."




카리스마 그 자체였어요.

춘승과 전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죠.

'저 사람 무조건 우리 과다. 무조건 친해져야 한다. 저 정도면 종교다. 신앙으로 삼아야 한다. 내일도 늦다. 당장 오늘 저녁에 한잔 한다. 그 집이다. 친해지기엔 그 집 만한 곳이 없다.'


"아, 근데 취하면 어떡하죠? 집에 갈 때 괜찮으실라나?"

춘승에게 물었어요.


"참, 별걱정을... 봐봐요. 우린 두 개. 저분은? 세 개! 누가 더 안정적이겠어요?"

"아하~!, 역시...응?"


카리스마에 비해 마음을 잘 열어주는 사람이었고, 저 날 이후로 지금까지도 계절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형오 형은 어릴 때 트럭에 치어 다리를 읽었다고 합니다. 접합을 하기엔 절단 부위의 손상이 너무 컸고 치료 후 보조기구를 하기엔 남은 부위가 너무 짧았다고 하더군요.


어릴 땐 다 그렇듯이 적지 않은 놀림을 당했는데 그냥 무시했다고 합니다. 아니 그래도 덤벼라도 보지 그것들을 그냥 뒀냐고 물었더니, 그런 것들을 신경 쓰기엔 걷는 게 너무 바빴다고 하네요. 역시 멋진 형.


나이가 들었고 남들만큼 배웠지만 배운 만큼 쓰이지 않음을 알았다고 해요. 뭐라도 해보자라는 생각에 열심히 뛰었다고 하더라고요.


['뛰었다고?, 아... 우리한텐 날아서 왔지, 인정!']


처음엔 봉제공장, 다음은 전자부품 생산업체. 어디에라도 쓰일 수 있어 기뻤지만 자신의 다리상태론 앉아있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동그란 작업의자에 앉아 있는 게 너무 힘든 거야. 이러다간 다리병신이 아니고 앉은뱅이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생각했어. 좀 시간이 걸려도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일하는 직업을 찾자.

그래서 다시 공부했고 개발자가 된 거지. 마침 여기처럼 편견 없는 회사가 있어서 덕분에 너님들도 만난 거고. 그냥 이 정도야. 여기 박대표도 멋있더라고. 얼마 전에 플젝 하나 드랍했자나. 원래 내가 투입되기로 했는데 그쪽에서 장애인은 좀.. 뭐 이런 식으로 얘기했다나 봐. 박대표가 그날로 애들 다 빼고 그대로 드랍했다고 하더라고. 그런 새끼들하고 일 안 해도 된다고 했다나"


"그냥 돈 안된다고 드랍했다던데. 형 때문에 그랬겠어. 사람 멋있긴 한데 좀 순수한 맛이 있네"

"형 단가 무시했다가 쌘 거 보고 네고 들어와서 그냥 깐 거야. 마침 다른 쪽 플젝도 있고"


카리스마 있고 착하디 착한 순수한 형오 형.

지금도 누구보다 안정적이고 빠르고 튼튼한 세 개의 다리로 힘차게 달려가고 있지 않고... 사실 오래전부터 좋은 차를 몰고 다닙니다. 비 맞는 게 싫어서 일찍 샀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날인가 비 맞는 게 싫더라고. 다리 하나 갖고 갔으면 팔하나 줘도 되잖아. 근데 갖고는 가도 주진 않더라고. 그래서 지붕 달리고 네발 달린 걸로 진작에 하나 뽑았지. 이왕이면 빠른 걸로. 이번에 캠핑 가는 건 내차로 가자"


"역시. 멋있어"



춘승과 나는 질풍 같은 속도로 날듯 달려오는 형오 형을 바라보다 뛰기 시작헀다.


"저 양반 다리가 셋이라 빠르다는 걸 잊었네요"

"그러게요. 속도가 줄질 안내"

"아이씨. 그게 아니고 배고프담서... 다리는 세 개나 있는 양반이 굼뜨니까 우리가 후딱 텐트친 거지. 아니 형, 그 초합금 무쇠다리는 좀 내려놓고"




epil.1

올해도 만나지 못해 미소 한 번을 못 본 형오 형을 오랜만에 춘승과 함께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소원했던 거 아니냐며 머리를 넘기며 멋쩍게 웃는 형.

어떤 이는 상실하여 부족하다 하지만, 이미 충만하여 부족하지 않다고 말하는 멋진 사람.


notice.

마음과는 다르 게 어떤 분께는 이글이 불편하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네가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저 사람이 너 같진 않을 거야'라고 걱정하실지도 모르죠.

지당하신 걱정이지만 전 이 글을 형오 형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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