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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 본질

거룩한 식사

by 둥이

밥한끼 그리고 거룩한 식사

"밥에는 말의 매끄러운 위장이 없다.단순하고 우직하게 주인을 돌보고 생색을 내지 않는다.밥의 힘을 빌지 않은 정신은 빈껍데기다.사실 생의대부분이 밥을 위한 노동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 노동의 절반이 굴욕과 상처속에 이루어진다.(...) 밥은 불가항력의 권력으로 삶의 중심에 있다. 말랑하고 따뜻한 밥알의 본질이 이렇듯 엄흑하다. 그 엄혹한 '밥심'으로 정신의 뼈대가 선다. 건강한 밥심을 업신 여기고 오래 버틴 사람을 보지 못 하였다.한그릇 '밥심'이 '밥모심'이 되어야 하는 까닭을 새삼 깨우친다.

<노혜숙 인연수첩 수필집> 에서


그날 오후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점심을 하기엔 늦은 시간 이였다. 오후 두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식당으로 한 여자가 들어섰다. 여자의 얼굴은 지쳐 보였다. 여자는 눈과 입에 다른 감정을 담고 있었다. 쓸어 올린 머리카락이 다시 내려와 얼굴을 가렸다. 한겨울인데도 입은옷이 얇아 보였다. 일부러 얇은 잠바를 입고 나온건지, 입을 옷이 없던 건지는 알수 없다.

여자는 눌러쓴 모자 안으로 쓸려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다시 집어 넣었다. 앞코가 해어진 단색 운동화가 추워 보였다. 겨울 보다는 여름에 어울리는 신발을 신고 있었고 겨울 보다는 가을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었다. 두 어깨가 많이 추워 보였다.

식당안으로 들어서는 여자의 두손엔 헌책방에 내다팔것 처럼 포장된 책들이 들려 있었다. 어디에 앉아야 될지 잠시 망설이는듯 했다. 자기가 앉아야될 편한 자리 보다는 짐을 둘 적당한 자리를 찾는듯 했다. 까만 눈동자는 정처 없어 보였고 감정을 담아낼수 없는, 감정을 담아내는것 조차 포기한듯한 눈동자였다. 무리에서 벗어난 길 잃은 철새를 연상시켰다. 생기라고는 없었고 매마르고 헐거워 보였다.


" 어서 오세요 편한데로 앉으세요"


사장님은 눈도 마주치지 못한채 목소리로 손님을 안내하고 있었다. 구석 빈자리로 앉을듯 했던 손님은 정수기앞 손님이 자주 드나드는 자리로 걸어갔다. 정수기 앞 작은 공간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제야 두손을 힘들게 했던 책꾸러미가 바닥에 놓여졌다.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진 책더미는 보기에도 무거워 보였다. 남자가 들고 다니기에도 버겨울듯 했다.


의자에 몸을 기댄 여자의 시선이 문쪽으로 향했다. 곧이어 다른 두분의 여자분이 들어와 여자 맞은편에 앉았다.


" 나는 다 돌렸는데 너는 얼마나 남았니"


추위로 창백해진 여자의 목소리가 떨리는듯 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서야 바닥에 무겁게 놓여진게 전단지 라는걸 알게 되었다.

포장된 상태로 보아 인쇄소에서 들고 나온 그대로 인듯 했다.


"못 돌렸어요 "

"밥먹고 돌릴려구요"


그때쯤 수제비 한그릇이 뚝배기에 담겨 올라왔다. 김이 모락 모락 올라오는 뚝배기를 향해 머자를 벗은 까만 뒷통수가 떨어졌다. 그 옆으로

쌓여 있는 전단지의 높이가 빌딩 처럼 높아 보였다.

전단지를 돌려야만 하는 여자의 하루가 고달퍼 보였다. 전단지가 전단지로 보이지 않았다. 일상으로 보게되는 전단지 였것만 막상 저렇게 전단지를 쌓아둔체 끼니를 떼워 살아가는 이 앞에서의 그 종이 자락은 밥알 이나 돈 이나 물물 교환이 가능한 실체로 보였다.

저 많은걸 돌려 밥이라도 먹을수 있을까 아 저게 밥이구나 종이가 아니라 밥 이구나 추운 겨울 길거리를 오가며 낯선 사람들에게 전해주어야 하는 종이가 허기를 달랠수 있는 것이였구나 아파트 현관문에 두세장씩 붙어 있던 출처모를 전단지가 그들에게 밥 한끼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마저도 그렇게 많았던 식당 전단지가 배달웹 플랫폼이 일반화 된 지금은 일거리가 없어서 그일을 생업으로 이어가던 그들에겐 삶의 터전이 없어져 버렸다. 누구에게는 별볼일 없는 종이한장이 또 다른 누구에게는 끼니를 떼우고 한파를 피하고 적게나마 기댈수 있는 소중한 물건이였음을 알게 되었다.


" 어여 먹고 일어나 거들어 줄께"


서로에 기대어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 다워 보였다. 따로 생각해 보진 않았지만 그제서야 그 많던 길거리 전단지가 사라진 이유도 알게 되었다. 코로나도 있었겠지만 배달웹 시장이 크게 성장한탓도 있을것이다.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시기에 한 방송사 인텨뷰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내가 뒤 돌아 생각하니 민주화니 연대니 지역감정이니 뭐 대단히 큰일을 한것만 같아 뿌듯한 생각이 들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제 손으로 밥한끼 만들어 내지 못하는 먹고 사는 문제에서 풀려 나지 못한 서생에 불과 하다는걸 알게 되었고ᆢ 중요한건 먹고 사는 기본적인 문제라는걸 ᆢ"


삶을 존속하게 만들어주는 밥의 힘을 무시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 수단이 무엇이 되었든 밥벌이는 모두 신성한것이다.


거룩한 식사 / 황지우(1952~)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을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 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 세상 떠 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에서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파고다공원 뒤편 순대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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