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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이 Oct 08. 2024

다정한 뒷모습

병원에서 만난 노부부의 뒷모습

다정한 뒷모습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다정했다. 할아버지는 한마디 한마디를 천천히 느리게 말했다. 또박 또박 국어책 읽듯이 할머니에게 검사 결과를 설명해 주었다. 영상의학과 진료실 앞에서 아내와 나는 MRI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사 시간 까지는 삼십 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아내는 성당 책자를 꺼내 읽고 있었고 나는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검사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뒷자리에 걸음 거리가 조금은 불편하신 두 분이 앉으셨다. 그렇다고 뒤돌아 볼 수도 없어서 그냥 어르신들이 검사받으러 오셨나 보다 생각하고 있었다. 의자 간 거리가 가깝다 보니 속삭이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목소리 성량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할아버지의 다정한 목소리에는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뜸북 담겨 있었다. 뒤돌아 보지 않았는데 두 분의 얼굴이 목소리 만으로 선하게 그려졌다. 때론 사람은 목소리만으로 모든 걸 알 수가 있다. 현재를 표현하고 담아내는 목소리에 그 사람이 지닌 마음이 있기 마련이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CT결과를 꼼꼼리 설명해 주고 있었다.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였다. 아마도 별것 없는 일상의 대화도, 무겁고 힘든 대화도, 날씨이야기와 손주이야기도, 된장찌개만으로 저녁식사를 하면서도,  할아버와 할머니는 두 눈을 마주 보며 저렇게 다정한 목소리로 일상을 나눌 것이다.


" 병원에서 진료비 계산 안 하고 보낼 것 같아 어림없지"

" 가서 진료비 계산하고 가자고"


할아버지 목소리는 작은 흔들림도 없었다. 목소리에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는 듯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부축해 주었고 그렇게 두 분에 뒷모습이 내 시야로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집으며 오른발을 절뚝거렸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옆으로 서서 할아버지의 손을 찾아 더듬는 듯했다. 지팡이를 집지 않은 할아버지의 왼손을 찾아 할머니의 오른손이 움직였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손을 다정히 잡으셨다. 그러니까 그 다정한 모습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한두 걸음 뒤에서 걸어오시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왼손을 조용히 잡았다. 순간 할아버지의 왼쪽 어깨는 할머니 쪽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마치 부모님이 어린아이의 손을 잡듯이, 첫 데이트에서 남자와 여자가 손을 잡듯이, 단체소풍을 나온 아이들이 손을 잡듯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두 손을 꼭 잡고 천천히 병원 복도를 걸어갔다. 나는 그렇게 멀어져 가는 두 분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난 아내를 툭 건드렸다.


아내 역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두 분이 나누는 대화를 들은 듯했다.


"참 보기 좋다"

"저렇게 늙어야 되는데"

"목소리가 너무 다정하다 꿀 떨어지겠어"


나만 느낀 느낌이 아니었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하며 멀어져 가는 노부부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참 다정한 뒷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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