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임신했다. "또다시"

허아른 괴담록

by 허아른


아내가 임신을 했다. 이미 8개월째다. 배가 눈에 띄게 나와 있다. 예전이라면 기뻐했을 것이다. 그래, 아내가 처음 임신을 했던, 그때라면.


첫 아이는 임신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유산하고 말았다. 아내도 나도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임신 직후의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큰 트라우마가 되지는 않았다. 적어도 두 번째 유산을 했을 때만큼은 아니었다.


두 번째 임신은 꽤 빨리 알아차렸다. 첫 번째 유산을 겪은 후, 아내는 임신에 집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원래 아이를 반드시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생기면 낳고, 아니면 말지 뭐."


딱 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유산을 한 번 겪은 후에는, 상실감 때문인지, 아니면 아이를 못 가지는 몸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반드시 임신을 하고야 말겠다는 욕망을 품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임신 테스트기를 썼고, 한 달에 한 번은 산부인과를 갔다. 임신 착상에 좋은 음식이라는 게 따로 있는지 그전에는 몰랐다. 어쨌거나 아내는 그런 음식들만 고집했다.


당시에는 나도 절박한 심정이 되어 아내를 도왔다. 전염되었다고 해야 할까. 아내의 절박함이 나에게도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절박함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하지만 노력이 언제나 보답받는 것은 아니다. 아내는 또다시 유산하고 말았다. 임신 4개월째의 일이었다.


나는 엄청난 충격과 실의, 그리고 절망에 빠졌다. 나는, 말이다. 아내의 태도는 그것과는 달랐다. 분명히 강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분노에 가까웠다. 이를 가는 것에 가까웠다. 그쯤부터 나는 슬슬 두려워했던 것 같다.


아내가 세 번째 임신했을 때, 나는 어떤 기묘한 사실을 깨달았다. 같은 날이었다. 두 번째 임신을 알게 된 날과, 세 번째 임신을 알게 된 날은.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


세 번째 임신 기간 동안, 아내는 거의 편집증 상태가 되었다. 히스테릭해졌다. 임신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집안에서 치웠다. 하루 종일 인터넷 검색을 하며, 조금이라도 나쁘다는 증거가 나오면 가져다 버렸다. 그것들을 저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5달을 채 버티지 못했다.


네 번째 임신했을 때, 아내의 광기는 더 심해졌다. 그녀는 혹시라도 내가 태아에게 안 좋은 짓을 하지는 않는지 감시하기 시작했다. 의부증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런 의부증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회사에서 점심을 먹을 때, 밖에서 회식을 할 때, 누군가를 만날 때도 꼭 사진을 찍어서 보내게 했다. 그런 나날들이 지긋지긋하다기보다는 무서웠다. 정말, 무서웠다.


그리고 끝끝내 그녀는 유산하고 말았다.


아내가 다섯 번째로 임신했을 때, 나는 그녀에게 진지하게 임신중절을 권했다. 정말로 무서웠기 때문이다. 점점 심각해져 가는 아내의 광기보다도, 그 지치지 않는 임신 자체가 무서웠다. 그러니까 아내가 네 번째로 유산할 즈음에, 나는 이미 불임 수술을 했기 때문이다. 아내의 임신이 두려웠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그 날짜가 되었을 때, 아내는 나에게 임신 사실을 알려왔다. 다시 병원에 가서 확인했지만, 불임 수술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내의 외도 따위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아내 뱃속의 아이는 계속 다시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유산되었을 때부터 태어나기 위해 계속 재도전을 해왔던 것이다. 어떻게든 태어나기 위해서, 오직 그것만을 목적으로.


나는 아내에게 모든 것을 말했다. 불임 수술을 한 사실도. 하지만 아내는 눈도 꿈쩍하지 않고 그렇게 대답했다.


"상관없어. 뭐가 태어나든지. 내 뱃속에 있는 게 뭐든지. 어쨌거나 나는 낳고 싶어."


마치 아이를 낳는 것이 삶의 목적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처럼. 8개월째에 초음파 검사를 받았을 때, 나는 눈을 의심했다. 이상한 게 들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평범한 태아의 모양이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로 아기일 뿐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이 실존한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 더 충격이었다. 저 아기는 이번에는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모르겠다. 내가 뭘 원하는지.


아기가 태어나길 바라는지, 다시 유산하길 바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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