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이야기
오늘 아침 일찍 서면에 볼 일이 있어 지하철을 탔다. 처음 지하철을 탈 때는 두세 번 표를 찍어야 목적지에 다다르거나 반대편 차량을 탔다가 다시 돌아오곤 했는데 이제는 단 한차례의 낙오도 없이 목적지에 도착한다.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의 힘이다. 덕분에 한동안 부산시에게 기부를 많이 했다.
지하철을 타러 갈 때마다 나는 마음이 설렌다. 우선 운전을 하지 않기 때문에 주위 차량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볼 수도 있으며,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나를 가장 설레게 한다. 자동차로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나로서는 이때야말로 사람들 사이에서 세상을 엿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오늘은 지하철 2호선을 타러 갔다. 장산행 노선을 빠르게 살펴 입구를 찾아갔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았고 휴대폰 티머니를 이용해 톨게이트를 지났다. 2호선 탑승구까지 온 후 대리석 벤치에 앉았다. 이 모든 과정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대박! 이젠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많지 않다. 아무래도 휴일 이른 아침이라 그런가 보다. 잠시 후 지하철 차량이 도착했고 입구가 열리자 빠르게 들어가 자리를 골라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주위를 살펴본다. 이제부터 나의 인간 사냥, 아니 검색이 시작된다.
이전 관상을 볼 때처럼 미친 듯이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지는 않는다. 그저 사람들의 얼굴에 비친 분위기, 느낌, 그리고 투영되는 인생을 보는 정도로 끝낸다. 그래도 참 재미있다. 사람마다 보여주는 장면들이 영화보다 더 아기자기하다. 어떤 사람은 휴대폰을 보고, 어떤 이는 눈을 감고 있으며, 또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거나 나처럼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책을 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네. 아, 요즘은 전자책을 볼 수도 있구나. 선입견 경고!
내 앞에 앉으신 연로하신 할머니의 얼굴에서 삶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마스크를 썼기에 하관을 볼 수는 없지만 이마와 눈 속에 비치는 삶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다. 주름이 깊게 파인 이마, 산만한 눈썹, 눈썹 밑의 갈지자 주름 등은 저분의 인생이 순탄치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두 손에 바리바리 싸 들고 계신 음식들. 오늘 자식들에게 반찬거리를 전해주러 가시는 중이실까? 삶의 애환도 부모의 자식 사랑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안쪽에 앉아 계신 중년의 아저씨. 반대편 벽을 보고 계신다. 눈에는 초점 없다. 힘든 일들이 있으셨나 보다. 아직 한 번 더 뛰어볼 수 있는 나이. 아저씨는 최근에 어찌할 수 없는 삶의 벽에 부딪혀 튕겨 나오셨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멍하니 지하철 광고 문구 쪽을 바라볼 뿐 무언가를 읽고 계시지는 않는 듯했다.
건너편의 청년 둘. 열심히 휴대폰을 쳐다보고 있다. 손가락은 끊임없이 신속하게 움직인다. 눈이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필시 게임에 몰입해 있으리라. 그 옆의 연인들로 보이는 남녀 한 쌍. 손을 꼭 잡고 서로 얼굴을 쳐다본 채 말이 없다. 그저 쳐다보기만 해도 좋을 시기이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후후.
삼십대로 보이는 청년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직장 문제? 아니면 취업 준비?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어학공부를 하거나 강연을 듣고 있을 수도 있다. 둥글고 매끈한 이마, 진하고 가지런한 눈썹은 이 청년의 미래가 갈수록 성공적으로 펼쳐질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나는 저 나이 때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었을까? 내 가슴에 열정이 있었을까? 다시 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인생을 선택할까? 적어도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 것 같긴 하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고 있으니까.
"이번 역은 서면, 서면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시간 참 빠르네...
지하철 출구를 나와 목적지로 향하면서 마지막 여운을 즐겨본다.
지하철 이동거리 한 시간.
시간이 아쉽다. 사람들을 조금 더 보고 싶었는데. 저들 속에서 인생을 좀 더 느끼고 배우고 싶었는데.
짧다면 짧은 여행을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고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나를 돌아볼 수 있었던 지하철 여행. 나는 이래서 지하철 여행을 좋아하고, 또 지하철을 이용할 때가 무척 가슴이 설레는 시간이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짧은 시간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간접적으로 인생을 배운다. 남녀노소 모두가 나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해 주는 사람들이다.
스쳐가는 얼굴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인생의 희로애락! 그 안에서 표현해 나가는 위로와, 공감, 희망, 그리고 사랑. 모든 것을 가만히 가르쳐주는 지하철 속 사람들. 이 사람들은 내가 자신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을까? 모든 이들이 오늘 원하는 것 하나씩은 꼭 이루기를 짧게나마 바라본다.